
우봉 박형순
한국소림비정권협회 회장, 해등다실연구소장
1980년도 중반에는 전에 없던 이론과 민족주의가 나와 온 국민들, 특히나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단(丹), 기공(氣功), 선도(仙道), 무술(武術) 등이 붐을 일으켰다.
이 시기에 필자는 택견 인간문화재이던 신한승 선생님의 소개로 중국무술을 처음 접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존의 도장문화에 익숙해있던 내 눈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게 비쳐졌다. 그 중에서도 처음 접해본 문화의 하나가 차(茶)였는데, 한 여름의 더운 날씨에도 물을 끓여 차를 우려내 계속해서 마시는 중국 사부님의 모습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이해가 가질 않았다.
처음에는‘중국 사람들은 참 이상하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절로 나고 더운 여름인데 무슨 뜨거운 차야?’라고 생각하며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이러한 행태를 접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한여름의 더운 날 땀이 흥건히 젖어 수련을 하다보면 무슨 차향(茶香)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콧속을 스며드는 향에 입안에 침이 고이고 몸속에서 뭔지 모르지만 요동을 치는 것이 참으로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문득 기억을 돌이켜보니 향의 농도는 달랐지만 당시 중국음식집, 특히 화교(華僑)들이 하는 중국집에 가면 엽차로 내오는 차와 향이 비슷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련을 마치고 도장 문 앞에 서서 사부님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려는데 의자에 잠깐 앉아보라는 것이었다. 긴장된 몸과 마음으로 자리에 앉자 사부님께서 하시는 말씀이“자네, 차(茶) 마셔봤나?”하시는 것이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기에“아니요, 못 마셔봤는데요.”라고 대답했으나, 사실 내가 아는 차라고는 보리차, 대추차, 인삼차, 녹차 등이었으며 앞에 열거한 차와 녹차(綠茶)의 차이도 불분명한 시기였다.
물론 티백으로 된 홍차(紅茶)는 여러 번 마셔 봤지만 사부님이 마시던 차와는 향부터가 달랐다.
그래서 그냥 단답형으로 간단히 못 마셔봤다고 대답했던 것이었다. 그랬더니 무술수련의 금기(禁忌)사항 중 하나가 찬 것을 먹거나 마시는 것이고, 물을 마실 때도 이왕이면 차를 마셔보라시면서 노란색의 사각철통을 보여주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우선은 내가 한 통을 줄 테니 마셔보고 다 떨어지면 중국대사관 앞에 가보면 이런 차를 파니 사서 마시라’는 것이었다.
통을 받아들고 사부님을 바라보니, 차를 끓이고 마시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시는 것이었다. 그래도 미심쩍은지 다시 한 번 차근차근히 설명을 해 주시었다.
그렇게 차를 받아들고 계단을 내려왔는데, 지금도 그 때의 일이 잊혀 지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접한 말리화차(茉莉花茶)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사부님이 말씀하신 대로 물을 끓이고 차를 컵에 담고 물이 약간 식기를 기다렸다가 물을 컵에 붓고 그리고 약간의 기다림 후에 향을 음미하고 후후 불어가며 후루룩 마셨다.
그리고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으면 뭐라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참으로 편안하고 좋았던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좋았다기보다는 처음 접해보는 문화생활과 그동안 옆에서 지켜만 보던 것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과 성취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이렇게 시작한 차와의 인연이 이러한 행태로만 평생 계속되리라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사실 차가 좋아서 계속 마신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사부님의 권유와 무술을 하는 사람이 양생(養生)을 위해서는 차를 마시는 것이 몸에서 노폐물과 필요 없는 지방분을 제거한다고 하신 말씀 때문에 마셨던 것이지 결코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고 안마시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신 것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의 공부차(功夫茶)와는 천양지차의 수준과 이해도였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가장 원시적인 수준의 차문화생활인 이었던 것이다.
물론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녹차를 하시는 분들의 복장과 다구, 그리고 절제된 의식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시로서의 상황에선 나름대로의 최선이었고 행복한 차생활이었다.
그러던 몇 년이 흐른 어느 해 초여름이었다. 선도(仙道)와 무술(武術)로는 후배이나 연배가 나보다 높아 형님으로 부르던 분이 계셨는데, 이 분과 필자는 그 당시 술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어느 날 밖에 외출 나갔다 돌아오신 그 형님이 잠깐 보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어떤 차가 있는데, 술을 마시고 취했을 때 이 차를 마시면 술이 깬다는 것이었다. 당시 내가 알기로도 차가 해독작용이 있어 술을 마시고 차를 마시면 술이 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그러면서 주섬주섬 보따리를 푸는데, 조그마한 쇠 종류로 만든 둥근 원통과 소꿉장난에나 쓰일 것 같은 붉은색의 앙증맞은 작은 주전자,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작은 잔들을 내놓았다. 그러더니 가스 불에 물주전자를 올리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는 동안 꺼내놓은 그 물건들을 나름대로 배치를 하고 나서는 종이에 싼 어떤 덩어리를 꺼내며“너 이런 거 본적 있니?”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 물건을 받아들고 보니 앞에는 붉은색 잉크로 글자를 인쇄 하였는데 거기엔 한자로‘중국차업공사 운남성공사’라는 글자와‘중차패원차’라는 글자가 둥글게 뺑 돌려 쓰여 있었고, 가운데는 차(茶)라는 글자가 있었다. 종이 껍데기를 풀어 헤치니 시커멓게 생긴 둥근 것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이게 뭐에요?”라고 물었다.
그러자“응, 보이차(普?茶)야, 보이차 중에서도 홍인(紅印)이라는 차야.”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당시 차라곤 마리화차만 알던 나로선 고개가 갸우뚱 해질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이런 차도 있었나?”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맛이 궁금하기도 해서 내 손에 있던 차를 얼른 건내며, “이건 어떻게 마셔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시커멓고 딱딱하게 굳은 그 차를 한 웅큼 떼어내더니 장난감같이 생긴 조그만 주전자에 넣고는 펄펄 끓는 물을 부었다. 그리고 이내 조그마한 잔에 따르는데 마치 조선간장 같아서 영 호감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애써 따른 그 찻물을 덜컥 바닥에 쏟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자그마한 둥근 쇠통이 바닥에 버려진 물을 밑에서 받아 모으는 역할을 하는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어 보이기도 해서 진지하게 구경을 하는데, 어느덧 두 번째로 작은 빨간색의 주전자에 부었던 물을 잔에 부은 후 조그마한 대나무 집게로 잔을 집어서 책상에 놓으며“이제 마셔봐.”하는 것이었다.
잔을 집어 들고 곁눈질로 그 형님이 차를 마시는 모습을 훔쳐보며 그대로 따라서 마셔 보았다.
순간 입안에 들어온 차에서 나는 향과 맛이 참으로 고약스러웠다.
퀘퀘한 맛과 처음 느껴보는 반갑지 않은 촌스런 향…. 마시고 난 후에 입안에 남은 쓴맛…. 여하튼 기대 이하의 느낌 이었다.
“아니 이런 차를 어떻게 마셔요?”라고 물으며 잔을 서둘러 내려놓으니, “글쎄, 아무 말 말고 몇 잔 더 마셔봐.”라고 하면서 연거푸 잔에 차를 담아 주는 것이었다.
이것이 필가 처음으로 접한 보이차였고, 훗날 차가 내 인생의 행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줄은 당시로서는 알 수 없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