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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탈을 얻을것인가?







  달라이 라마
  티베트 승왕


해탈을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목표라고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해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네 번째의 신성한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진실한‘도에 관한 진리(眞理)’입니다.
우리가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해탈이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경전에는 해탈의 네 가지 특징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해탈은‘번뇌의 연속체가 완전히 소멸된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해탈은‘진정한 평화’이며, 마음의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완전히 적정한 상태’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궁극적인 만족에 도달했기 때문에‘완전히 만족한 상태’입니다. 네 번째 특징은 깨닫지 못한 존재가 겪는 윤회 과정을 확실히 빠져 나왔다는 의미에서 해탈은‘확실한 탈출’입니다.

해탈을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목표라고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해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네 번째의 신성한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진실한‘도에 관한 진리(眞理)’입니다.
중관학파의 설명에 따르면‘공성’에 대한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깨달음을 증진시킨다는 의미로‘도(道)를 이해해야 합니다. 공성을 직관적으로 깨달으면 즉시‘멸’을 얻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직관적인 깨달음을 얻으려면‘정신을 집중하는 명상’을 해서 기초를 닦아야 합니다.

이 명상은 공성에 대해서 경험적인 지식을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수행자가 그런 경험적인 지식을 얻은 시점을 가리켜‘준비하는 수행단계(加行位, Path of Preparation)’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수행자가 공성을 직관적으로 직접 깨닫는 시점을‘통찰하는 수행단계(見道位, Path of Seeing)’라고 부릅니다.
추론을 통해서 공성을 지성적으로 이해한 것을 기반으로 하여 공성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이 생깁니다. 실제로 그런 기반을 닦지 않고 명상에만 의거해서 공성을 경험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공성을 지성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단계는‘축적하는 수행단계(資糧位,Path of Accumulation)의 일부입니다. 수행자가 해탈을 얻겠다고 진정으로 열망하는 시점이‘축적하는 수행단계’의 입구입니다. 우리는 그 입구를 불교 수행의 출발점이라고 생수행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우리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처음에 시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수행은 계정혜(戒定惠)를 닦는 일입니다. 계는 도덕률, 정은 선정(禪定)또는 명상[止], 혜는 지혜 또는 통찰력을 말합니다. 불교경전은 일반적으로 명상자가 경험하는 변화를 단계별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걸어가는 수행길은 그 사람이 공성에 대해서 점점 깊이 이해하고 깨달아 가는 수행길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을 불교용어로는 ‘지혜의 측면에서 본 수행’이라고 부릅니다. 더욱이‘마음을 집중하는 명상[止]’과 ‘꿰뚫는 통찰[觀]’이 합일된 상태에서 공성을 깨닫는 지혜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지(止)와 관(觀)의 합일을 경험하려면 우선‘지’를 훈련해야 합니다. ‘지’를 훈련하면 우리 몸의 기(氣)를 조절해서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지’를 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를 잘 훈련하려면‘주의 깊은 마음’ 과 ‘깨어 있는 마음’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건전한 생활을 하면서 정신을 집중 할 때 향상됩니다. 그래서 도덕적인 생활이 수행을 하는 데 기본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제 우리는 계, 정, 혜를 닦는 것이 어떻게 서로 관련되는 지 알았습니다.

이제 불교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인 자비심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자비심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자비심은 불교를 받치고 있는 토대입니다. 착한 마음과 이타심을 기르는 수행을 하는 목적은 자비심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고, 우리 마음에 잠재된 자비심을 활성하시키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중생들을 돕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으려는 이타적인 열망을 키우는 것은 깊은 자비심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가리켜‘보리심(菩提心, bodhicitta)을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보리심’이란 무엇일까요? 보 리심을 유발시키는 요소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마이뜨레야는《현관장엄론》에서 말합니다. 첫째는 모든 중생을 향한 진정한 자비심이며, 둘째는 다른 중생들을 최대한으로 돕기 위해서는 내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인식입니다. 정말로 이타적인 보리심을 기르려면 단순한 자비심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다른 중생들을 돕는 과제를 기꺼이 떠맡을 만한 책임감을 수반한 자비심을 토대로 해서 보리심을 길러야 합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