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현대불교신문 편집국장
소통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 권력과 시민사회, 세대, 남녀, 부를 둘러싸고 한시도 쉼 없이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남북관계는 6.25 한국전쟁 이후 60년이 넘도록 긴장을 이어오고 있다. 남북 간의 군비 경쟁은 국민들의 살림살이에 깊은 주름살을 남겼다. 우리만 하더라도 정부예산 중 교육부 다음으로 가장 많은 부분이 국방비다. 남북관계의 사회적 긴장을 비용으로 환산한다면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를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소통이 사회적 과제가 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갈등이 없는 사회란 없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시대에서는 소통이란 용어 자체가 아예 통용되지 못했다. 상명하복이 사회를 짓누르고 있었으니 금서목록처럼 ‘불온한’ 단어였다. 1987년 이후 제도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진척되면서 사회적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근래에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의 촛불을 끄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소통하겠다”고 말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소통이 자주 얘기되는 사회는 곧 불통의 사회다. 세종시, 4대강, 천안함, 이 세 단어가 최근 한국사회의 불통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종시는 원안이냐 수정안이냐를 놓고 지난해 가을께부터 우리 사회를 갈등하게 했다. 이 대통령은 2007년 대통령후보 자격으로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그러다 느닷없이 수정안을 내놓았으며, 충청권은 벌집을 건드려놓은 것처럼 요동쳤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정치는 신의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원안 추진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내에서 친이-친박계로 나뉘어 논란이 이어졌다. 권력투쟁 양상까지 치달았다. 올해 들어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 지방선거를 맞았다. 대전, 충남, 충북 등 세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들은 모두 ‘세종시 원안 고수’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됐다. 이제 국회에서 원안이냐 수정안이냐를 결정하게 된다. 정부가 내놓은 수정안이 부결됨에 따라 정부기관 9부2처2청이 세종시로 옮기는 일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수정안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행정력이 분산된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이후로는 행정 효율화를 위한 보완책이 마련되면서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위한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연구에 집중할 것이다.
이명박정부에서 유독 소통이 회자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실용주의에 기인한다. 로티는 실용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탁견을 내놓았다.
“실용주의자들은 진리 추구란 단지 행복 추구의 한 종(種)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인간 존재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 신념의 추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용주의자들은 거창한 물음이란 다음과 같은 실천적인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존재들이 서로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충분히 동일한 것을 원하도록 그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김용준 ‘로티의 종교관’, <지식의 지평> 4호, 191쪽)
즉, 진리를 행복의 하위개념으로 설정하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진리조차도 수단화한다는 비판이다. 실용주의는 한때 철학사조의 한 흐름으로 인식되었으나, 지금은 하나의 방법론이다. 나아가 배금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의 실용주의는 물질만능과 어우어지면서 효율성으로 포장된다.
4대강 사업은 실용주의와 결합된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홍수 예방, 수자원 활용, 수질 개선이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취지다. 수만 개의 일자리도 만들어진다고 정부는 선전했다. 취지야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처럼 강바닥을 준설해 6~10m의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보를 세우고, 강폭을 넓혀 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전문가들의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강물을 보를 세워 막으면 수질이 악화되며, 홍수는 본류보다는 지천에서 많이 발생했으며, 본류와 함께 지천의 유입수를 관리함으로써 수질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나아가 생물자원의 파괴, 강을 중심으로 수천 년의 시간과 함께 형성된 역사와 문화의 유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공사 속도가 빨라지면서는 깊은 한숨소리가 되어 흐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실용주의는 배금주의와 맞물리면서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전도된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다. 4대강 사업에 매몰되는 가치, 즉 강과 더불어 사는 뭇 생명에 대한 존엄성, 강이 만들어낸 마을, 그 마을의 사람들이 누대를 거쳐 오면서 만들어낸 역사와 문화는 흙탕물에 흘러가버리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보며 종교인들이 4대강 사업 반대에 나선 것이다. 이명박정부가 4대강 사업의 취지로 내세우는 홍수 예방, 수자원 활용, 수질 개선이 설사 달성된다고 할지라도 강이 낳은 역사와 문화의 유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홍수 예방, 수자원 활용, 수질 개선을 위한 전문가들의 우려를 정부와 그 관계자들이 만든 계획안보다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이런 자세가 있지 않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은 불통의 사회를 만드는 사업이 되고 말았다.
정부의 정책 추진은 여론의 지지를 획득할 때 비로소 성공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어떤 정책에 대해 국민의 50%가 반대, 30%가 찬성, 20%가 모른다고 할 때 이 정책의 추진은 가능할까. 반대 여론이 찬성하는 쪽보다 많아도 반대하는 측의 운동 역량에 따라 쉬울 수도 있겠으나,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은, 여론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정부 정책을 공세적인 방향에서 설명하면 반대 여론이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여러 수단을 동원해 국민들을 설득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자칫 이 과정에서 언론을 장악하려들고, 공권력을 동원해 무리수를 두면 설명과 설득을 국민들은 압력과 압박으로 느낀다. 이런 상황이 되면 정부는 신뢰의 위기에 처한다. 국민과 권력은 소통의 길이 막힌다. 국민과 권력은 사사건건 갈등하고 대립한다.
천안함 칠몰 사건은 우리 사회의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가 있었다. 외국의 전문가까지 참여해 조사한 결과이니만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였음이 분명해보인다. 조사결과 발표 후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가 조사결과 발표를 믿으며, 20%는 믿지 못하겠다고 응답했다. 언론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40%정도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사결과에 대한 의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군당국자가 고소 고발하는 일은 신중치 못하다. 검찰도 ‘근거 없는’이라는 단서를 달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조치들은 정부를 믿어달라는 의도와 달리 자칫 펜을 빼앗고 입을 막으려는 강압적인 사회분위기를 만든다.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를 무색케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극도로 경색됐다. 전쟁을 불사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전쟁불사론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국민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의 긴장으로 인해 들어가는 비용보다 평화를 유지하는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난 6월 17일 종교인들이 남북정상회담을 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종교인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남북의 정상이 만나는 일”이라고 밝혔다. 527명의 종교인들이 이 성명에 동참했는데, 소위 보수·진보·중도로 불리는 종교인들이 한 목소리를 냈다. 우리 사회의 양심을 대변하는 이들이 종교인일진대, 이들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청와대에도 울려퍼지길 기대한다.
많은 국민들의 말에 귀를 활짝 여는 것, 이것이 소통의 지름길이다. 6.2지방선거는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현명하고 냉정한지 우리 스스로도 놀라지 않았는가. 선거는 갈등과 대결을 풀어내는 방법을 일러주고, 맺혔던 응어리를 푸는 살풀이와 같은 것이다. 선거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안다면 이미 소통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