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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을 수목장으로 모시고

공종원
언론인


최근 88세의 장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일로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내 나이 이미 70 중반에 들었으니 그간 가까운 사람들이 수없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은 많이 경험했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시절에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도 어느덧 10년가량 되었다. 내 나이 또래의 동창들이 세상을 떠난 것도 부지기수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가까운 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흔한 일이 되었지만, 그때마다 적지 않게 마음에 충격이 있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고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죽음은 역시 사람에게는 맞닥뜨리기 싫고 또 대처하기도 쉽지 않은 과제인 것 같다. 이번 장인의 죽음도 내게는 무거운 문제들을 남겼다. 우선 그 나이에 이른 노인이 죽음을 예지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장인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날 자기의 직계 가족과 사위까지 모두 불러 점심에 초대했다. 주변에 이달을 넘기지 말라면서 소집을 독촉한 끝에 직계가족을 5월 30일 일요일 점심에 음식점에 모이게 하고 점심을 낸 것이다.
장인은 호주가여서 평생 술을 놓지 않았지만, 특히 은퇴한 후에는 막걸리만을 고집하며 거의 한 병 이상을 마시곤 했다. 이날도 그 연배로는 적지 않은 양인 1병반을 드셨다. 그러면서 근래 이상한 느낌이 있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의 징조를 그렇게 표현했다.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씀도 했다. 가족들은 노인이면 늘 그 정도의 건강이상은 있는 것이 아니냐면서 컨디션을 회복하면 또 오래 사실 수도 있을 것이라는 둥, 금방 돌아가신다고 하던 어떤 분도 그 후 20년을 더 사셨다고 위로의 말을 올릴 밖에 없었다.
장인은 그러면서 늘 그랬던 것처럼 막걸리를 더 사오라고 자식들을 닦달했다. 가족들은 노인의 건강을 걱정해서 늘 그 이상의 막걸리는 아예 준비하지 않곤 했는데 그때마다 장인은 왜 좋아하는 술을 먹지 못하게 하느냐고 역정을 내는 것이었다. 평소엔 지나치게 자상하고 인자하신 분이 술을 자제하지 못하고 자식들과 승강이하는 모습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 일이다. 한데 장인은 이날도 가족들과 헤어질 때까지 술이 부족하다고 상당히 언짢아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세상을 떠나는 이가 가족들과 정을 떼는 절차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5시쯤 나는 처제로부터 장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바로 어제까지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처지에 장인의 갑작스런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노인의 죽음은 대개 갑작스런 일이라는 것은 상식이지만 참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장인은 혼자 목욕탕에 갔다가 탕 속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돌아간 것이었다.
이렇게 갑작스런 죽음이었기에 장의문제도 큰 문제였다. 시신이 안치된 일산의 병원에는 적당한 크기의 영안실이 없었다. 적당한 크기의 영안실이 있는 병원을 수소문하여 시신을 옮기는 일이 선결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화장장을 얻는 일이었다. 서울이나 고양시 주민이 이용하는 벽제화장장에는 이틀 뒤까지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리를 얻으려면 장의날짜를 하루 연장하여 4일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서울 강남에서 영안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100만원을 더 내고 성남의 화장장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남시 주민이 아니면 이런 과징금이 붙는다는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화장장이 부족해 시민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니 한심한 일이다.
병원의 장례식장에는 고인이 다니던 절의 스님이 나와 모든 절차를 돌봐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화장 이후의 장지는 양평의 한 추모원으로 정했다. 장인은 생전에 납골장을 하는 것을 언짢아했다고 한다. 화장한 다음이라곤 하지만 납골호에 넣어 다시 납골당에 안치하는 것은 답답하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의론 끝에 수목장을 하기로 했다.
산림청 산하의 이 추모원은 장지라는 느낌이 거의 나지 않았다. 인근 주민들이 추모원에 가는 버스조차 장례표시가 있으면 통행을 거부한다는 터라 추모원은 보통의 숲이나 한가지였다. 수목장이라도 가족들은 좋은 위치에 있는 잘 생긴 나무를 고르느라고 신경을 썼다. 한데 산림청이 운영하는 추모원인데도 만만치 않은 고가사용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자연으로 조성된 숲속에 가족목을 선택할 경우 15년 사용에 230만원이라니 과도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민간업체의 수목장 비용은 훨씬 더할 것이다. 어떻든 조용하고 공기 좋은 숲속에 장인의 유골을 모시고 나서 가족들이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의 절차는 49재를 모시는 일이다. 마침 장인이 평소 다니시던 일산의 여래사가 댁에서 멀지 않아서 그곳에서 모시기로 했다. 고인이 불보살님들과 스님들의 인도로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기를 기원하며 추모원의 가족목에도 작은 푯말을 붙이기로 했다.
이렇게 장인을 수목장으로 모시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우리 사회의 장의문화가 좀 더 간편하게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장풍속이 국토이용에 차질을 준다고 화장을 하는 것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화장장 시설이 부족하여 장례 날짜를 연장하거나 가욋돈을 더 물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화장하는 우리의 현실은 빨리 고쳐져야겠다. 화장장이나 묘지를 혐오시설로 치부하여 이를 멀리하려고만 하는 우리의 생각도 이제는 고쳐야할 것이다. 뿐더러 우리 불교가 죽음을 처리하는 절차에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사찰이 신도들의 결혼식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쯤해서 비용을 줄이는 49재, 납골묘, 수목장 사업 등 불자들의 장의절차에 적극 나서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