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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결사는 육근청정운동부터

미산스님
상도선원장

‘자성과 쇄신을 위한 5대 결사’ 중 그 두 번째 문화결사를 주제로 법문한 미산스님은 “문화결사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맑고 조화롭게 가꾸는 ‘육근청정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산스님은 “생명성을 가진 존재들은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며 “종단이 5대 결사를 추진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본다면 본래 생명성의 특징인 위없는 행복함을 함께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어 “우리는 1,700년 동안을 이어온 소중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밝힌 뒤 “불국사나 해인사 등 종교적 장엄물은 원각심이 발현된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본래 부처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전통문화를 제대로 지키고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계승·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특히 “그간 우리는 전통문화로 인해 관람료를 받고 국가의 문화재 보수지원을 받는 등 편하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전통문화의 진정한 의미와 정신을 어떻게 현대사회에 구현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곧 문화결사”라고 지적한 뒤, “△맑고 아름답게 △맑고 조화롭게 △맑고 향기롭게 △맑고 담백하게 △맑고 활기차게 △맑고 훈훈하게 등의 여섯 가지 청정운동을 통해 전통의 창의적인 재해석과 불교음악 발전, 사찰음식 확산, 수행운동 전개 등 구체적인 실천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스님은 끝으로 “여섯 가지 맑음과 조화로움의 육근청정운동이 곧 문화결사의 방향”이라며 “이러한 슬로건을 늘 마음에 새기고 실천할 수 있도록 종단에서 하나하나의 실천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이날 법문 요지>


원각경 보안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법문이 나옵니다.
『선남자여, 원각의 청정한 성품이 몸과 마음에 나타나되 중생들의 종류에 따라 반응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청정한 원각이 실제로 신심 자체의 모습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이 때문에 허깨비 같은 꽃은 멀리하지 못하니, 이름으로 내가 신심을 허깨비같은 티끌이라 하는 것이니라. 허깨비 같은 티끌을 떠난 자를 포살이라 하니, 티끌이 다하고 경계가 사라져 티끌이 없으면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느니라. 선남자여, 이 포살과 말세 중생이 모든 것이 허깨비임을 증득하여 허상을 여위었기 때문에 모나지 않는 청정함을 얻느니라. 가없는 허공은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이니라. 깨달음이 막힘없으니 드러난 마음도 청정하리니, 마음이 청정하니 몸의 대상이 청정하고, 몸의 이식이 청정하니 안근이 청정함이니라. 안근이 청정함으로 안식이 청정하고, 안식이 청정하므로 듣는 대상이 청정하다. 들음이 청정하니 이근이 청정하고, 이근이 청정하니 이식이 청정하느니라. 이식이 청정하니 각진이 청정함이니라. 이와 같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도 모두 청정 하니라.』


부처님은 모든 생명(생명성을 가진 중생들)은, 유정물이든 혹은 무정물까지도 포함해서 모두 이 청정한 마음 원각심에서 나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청정원각심(淸淨圓覺心)을 선문에서는 중도자성(치우침이 없는 본래성품)이라고 합니다. 이 치우침이 없는 본래의 성품에서 모든 삼라만상이 벌어져 나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부처님, 특히 대승불교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존재되어 있는 모든 것들은 그 본래의 존재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존재 목적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이 바로 불교가 향하는 길입니다.
이 생명성을 가진 존재들은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자 합니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특징이 곧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기원적인 특징입니다.
오늘 우리가 조계종에서 제시한 자성과 쇄신을 위한 5대 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궁극적으로 본다면 본래 생명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 위없는 행복함을 함께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원각경 보안장에서는 이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계시고 이 청정성을 어떻게 삶 속에서 구현해 낼 것인가를 우리들에게 수행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의 방식을 좀 더 철학적으로 나눈다면 존재방식과 표현방식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존재방식이라는 것은 본래 맑고 밝고 청정한, 본래 행복한, 본래 최상의 행복을 갖추고 있는 모든 존재의 고유성을 자각해서 그 모든 존재의 고유성을 나타냄으로 해서 살아가는 것을 삶의 표현방식이라고 합니다. 삶을 표현할 때는 무엇으로 표현합니까? 몸으로, 말로, 뜻으로, 마음으로 표현합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입니다.
종교를 하나의 문화현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리 종교는 아니다. 우리 종교는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고 세상의 모든 존재를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으니까 우리하고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역시 종교는 문화현상이라고 이야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현상이라고 표현할 때는 삶의 표현 방식으로 종교가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와 문화는 땔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1,700여 년 동안 많은 거룩한 장엄물과 건축물을 만들어오셨습니다. 대표적인 국보급 사찰이 어디입니까?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통도사, 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해인사, 승보가 모셔져 있는 송광사 등 삼보사찰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거기가면 스스로 고개가 숙여지고 신심이 나고 부처님께 끊임없이 예경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납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 건축물 혹은 종교 장엄물을 통한 우리 본성, 자성, 청정성, 원각심을 발현시키게 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런 것들은 전부 표현된 것들입니다. 그래서 삶의 표현 양식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표현된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본래 부처님의 청정한 마음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쉽게 이야기하면 문화라고 합니다. 또한 구체적으로 물질화된 것을 문화재라고 합니다.
불교는 1,700여 년 동안 아주 소중한 민족 문화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현대 사회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현대 사회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놓은 문화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고 또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종교성을 드러내고, 이 종교성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금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 이웃 종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불교의 여러 가지 문화재나 여러 가지 활동들을 폄하하고 몰이해를 통해서 비판하는 것들은 근원적으로 불식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스스로가 자성하고, 이것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우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잘 지켜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과 함께 더 중요한 것은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고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이 청정해져야 만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고, 또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불교가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색깔을 보고 형상을 봅니다. 귀로는 소리를 듣습니다. 코로는 냄새를 맡고 혀로는 맛을 봅니다. 또 몸으로는 감촉을 느끼고 마음으로는 모든 것을 분별해서 압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육근이라고 했고, 감각의 대상을 육경이라고 했습니다. 육근과 육경 사이에는 인식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세상이 이와 같이 많은 존재현상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눈을 통해서 보지만, 원각청정의 자성심으로 볼 수 있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맑고 아름답게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문화결사는 육근청정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눈입니다. 눈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보는데, 볼 때 좋은 것을 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몸이 정화됩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몸과 마음이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둘째, 원각청정 자성심의 귀를 통해서 듣게 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셋째, 원각청정 자성심의 코로 냄새를 맡게 되면 온 공간이 청정해지고 향기로워집니다.
넷째, 원각청정 자성심의 혀로 음식을 먹게 되면 속이 맑고, 편안하고, 담백해집니다.
다섯째, 원각청정 자성심의 몸으로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여러 가지 행법들, 절이나 좌선 등을 제대로 하게 되면 몸이 맑아지고 활기차집니다.
여섯째, 원각청정 자성심의 마음으로 부처님의 거룩하신 가르침을 어떻게 사람들과 나눌 것인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훈훈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맑혀서 세상을 참으로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눈으로 보는 문화결사를 해야 합니다. 그 슬로건은 ‘맑고 아름답게’입니다.
앞으로 불사를 할 때는 맑고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의 정서와 감성, 색감에 맞게 창의적으로 해야 합니다. 전통이 소중하다는 것은, 전통을 새롭게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귀로 듣는 문화결사를 해야 합니다. 그 슬로건은 ‘맑고 조화롭게’입니다. 우리에게는 불교음악이 있습니다. 음악은 지구촌 사람들을 3~4분 만에 하나로 집중시켜 줍니다. 마이클 잭슨이 노래를 하면 세계의 젊은이들이 3~4분 만에 한 마음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음악문화를 놓치고 있습니다. 우리 불교음악이 조금 발전했다 하더라도 지금의 불교 음악 가지고는 안 됩니다. 종단 차원에서 듣는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꼭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셋째, 코로 만들어 가는 문화결사를 해야 합니다. 그 슬로건은 ‘맑고 향기롭게’입니다.
코로 만들어 가는 문화가 무엇일까요?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맑아집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향입니다. 우리 불교문화 중에서도 향과 관련된 많은 문화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스님들이 좋은 향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새로운 문화운동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코로 향을 맡으면 우리의 무의식을 자극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이러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서 시민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선도해 나가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넷째, 혀로 만들어 가는 문화결사를 해야 합니다. 그 슬로건은 ‘맑고 담백하게’입니다.
요즘 시대는 먹거리가 굉장히 중요한 웰빙시대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문화부에서 사찰음식에 관한 많은 연구를 하고, 캠페인을 벌여서 이 결사는 더 발전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의 담백성이 현대인들의 몸을 정화해 줍니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 당뇨, 고혈압, 각종 암에 걸려서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교가 가지고 있는 좋은 자산들을 이제 대중들과 공유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다섯째, 몸으로 만들어 가는 문화결사를 해야 합니다. 그 슬로건은 ‘맑고 활기차게’입니다.
현대인들의 몸은 많이 혼탁해 있습니다. 그래서 각종 암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암은 탁한 세포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몸을 맑게 하기 위해서는 절을 많이 해야 합니다. 108배나 좌선을 1~2시간 하고 나면 몸이 굉장히 맑게 정화되고 몸의 감각들이 열립니다. 그 활발해진 몸으로 인해 모든 일을 의욕적으로 할 수 있고, 특히 봉사활동 등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몸의 문화결사입니다.
마지막으로  뜻으로 만들어 가는 문화결사를 해야 합니다. 그 슬로건은 ‘맑고 훈훈하게’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원각청정심을 바로 드러내는 것이 뜻입니다. 원각청정심을 구체적인 삶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부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던 지혜와 자비를 항상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문화결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여섯 가지 맑음을 통해 여섯 가지 조화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름답게, 조화롭게, 향기롭게, 담백하게, 활기차게, 훈훈하게. 이것들은 모두 조화로움을 묘사하는 형용사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섯 가지 조화로움(six harmony)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육근 청정 운동(six pure six harmony)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문화결사의 구체적인 방향입니다.
이 문화결사의 여섯 가지 슬로건을 마음속에 늘 새기고 이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종단에서 하나하나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을 마련해 주시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