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지혜로운 삶의 원칙
흔들림 없는 경지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것들과 싸움을 벌이지 말라.
그대의 행복은 세 가지에 달려 있는데, 이 모두가 그대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 자신의 의지, 자신이 개입된 사건들에 관한 자신의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자신의 행동.
확실한 행복은 언제나 외부의 조건들과 동떨어져 있다. 외부의 조건들에 무관심하도록 부지런히 연습하라. 그대의 행복은 그대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유창한 웅변, 번듯한 직함과 학위, 드높은 명예, 꿈같은 재물, 값비싼 옷가지 혹은 매끈한 행동거지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현혹되며 속아 넘어가는가.
명사들과 공적인 인물들과 정치적 지도자들과 재력가들. 혹은 지적으로 예술적으로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틀림없이 행복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 그것은 겉모습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짓이며, 결국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 뿐이다.
기억하라. 진정한 선의 알맹이는 오로지 스스로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들 안에서만 찾을 수 있음을. 그대가 이것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둔다면, 그대는 자신과 자신의 성취를 초라하게도 남들과 견주어가며 헛된 시기나 고독을 느끼는 일이 없을 것이다.
지금 그대 안에 있는 최상의 자아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 보려는 열망을 그만 멈추어라. 그것만큼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은 에픽테투스의 말이다. 에픽테투스는 로마시대 로마의 속국이던 그리스의 철학자다. 그는 55년 로마에서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더구나 다리까지 저는 장애인이었지만 훗날 <명상록>의 저자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스승이 된 인물이다.
최근 수행자들의 모임에서 영적 깨달음에 도움이 될 만한 문구들이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최초의 불교경전인 <숫타니파타> 등이 있지만, 이번엔 그리스 스토아철학이 말하는 인생지침서를 소개했다. ‘인류의 스승 에픽테투스가 전하는 최고의 인생 지침서’라는 부제가 붙은 <지혜로운 삶의 원칙>(뜨란 펴냄, 샤론 레벨 엮음, 정성채 옮김)이란 책이다. 이 책은 <숫타니파타>, <채근담> 등과 함께 필자가 가장 가까이 두고 보는 책 중 하나다.
불교의 최대 강점은 모든 이가 외적인 상황과 조건에 흔들리는데 반해 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에픽테투스는 불교의 고승과 유사하다. 그는 상황과 조건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자유로운 주인이 되도록 이끈다. 그 점에선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즉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참되게 한다’는 임제 선사의 선(禪)과도 일맥상통한다.
우리 인간은 현실적 고통과 불행의 원인을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데 너무도 익숙하다. 불경을 읽으면서, 법문을 들으면서도 그런 관성에선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다수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얼마나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동료와 가족들이 매일 가스실로 실려가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던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에서 조차도.
2차대전 때 나치에게 끌려가 아우스비츠 수용소에서 3년간 있었던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생체 실험실이자 시련의 한복판인 나치 수용소에서도, 어떤 사람은 돼지처럼 행동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성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면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외부의 상황이 아니라 자신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에픽테투스가 위대한 것도 그의 철학이 관념에 머물지 않고, 실천적 훈련과 실천적 결단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텍테투스가 다리를 절게 된 일화에서도 에픽테투스의 놀라운 절제와 용기가 베어 있다.
에픽테토스는 네로 황제에 의해 자유인이 된 해방 노예 에파프로디토스의 노예였다. 노예의 노예였다. 그의 이름도 노예를 뜻하는 ‘곁다리로 얻은 사나이’이다. 그의 주인 에파프로디토스는 네로가 죽을 때 함께 곁에 있었던 네 명의 해방노예들 중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주인 에파프로디토스가 에픽테토스를 화내게 하려고 그의 다리를 비틀었다. 그러자 에픽테토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주인님! 그렇게 계속 비틀면 다리가 부러집니다.”
주인은 화가 나서 다리를 더욱 비틀었고, 마침내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에픽테투스는 “거 보세요. 계속 비틀면 다리가 부러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 일화는 스토아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면목을 보여주기 위해 과장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철학적 삶과 일치한다.
어쨋든 그의 주인은 다리를 부러뜨려 미안했던지, 아니면 에픽테투스의 놀라운 정신을 발견했기 때문인지 에픽테토스를 당시의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인 무소니우스 루프스의 학교에서 공부하게 하고,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노예에서 해방된 그는 자유인으로서 로마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네로의 뒤를 이은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철학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해 95년 철학자 추방령을 내렸다. 그러자 에픽테투스는 그리스 북서부 지역인 악티움 만에 있는 니코폴리스로 옮겨 가 그곳에 학교를 세워 철학을 가르쳤다.
에픽테투스는 늘 자유와 노예를 논의 주제로 삼곤 했다. 그가 말하는 자유란 원리상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정신적 자유’를 말한다. 그가 말하는 ‘노예’란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정신적 부자유’다. ‘정신적 자유’와 ‘자신이 자초한 노예’의 대조야말로 에픽테투스의 철학적 화두였다. 그래서 에픽테투스는 자유인 신분을 가진 자신의 학생을 ‘노예’라고 부르곤 했다. ‘지혜로운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현실의 조건보다는 더 나은 조건, 즉 더 큰 집, 더 비싼 차, 더 많은 돈, 더 잘 생긴 이성 등을 추구하며 현실을 불만스러워하고 욕망에 목말라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데 에너지를 소비하고 낭비해버려서 불행해지지 말고, 바로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라고 독려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그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라. 위대한 일은 단번에 창조되지 않는 것처럼. 재능과 소질을 완성하는 일도 그와 똑같다. 우리는 언제나 배워가고 있으며 언제나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도전을 받아들여라. 그럼으로써 우리는 지적, 육체적, 혹은 도덕적으로 더욱 높은 수준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속아 넘어가지 말라.
만일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자 한다면, 스스로를 격하시키게 될 것이며 또 자연스럽게 두각을 나타낼 수도 있었던 분야에서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리고 말 것이다.
신성의 질서 안에서,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특별한 소명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소명에 귀를 기울이고 신실함으로써 그 소명을 따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