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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불자들이 한국불교 중심이 되길

수실라


저는 중국에 있는 모 대학에서 곧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친 불교적인 성향을 가진 한 대학생입니다. 4년여 간의 유학생활은 저에게 너무나도 지겹고 아프고 많이 슬펐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매 학기 이 생활을 포기하고 싶었고, 매달 아파서 링거를 맞았고, 매주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다 지쳐 잠들었습니다. 이 힘겨운 시간들을 버틸 수 있게 도와주신 구룡사 주지 각성스님께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려야 하나 고민하다 이렇게 월간 『붓다』를 통해 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구룡사와 인연이 닿아 어린이회와 학생회를 다녔습니다. 불교에 큰 관심이 있었다기 보다는 그저 절이 집보다 더 편했고 언니, 형들과 어울려 같이 영화나 뮤지컬을 보며 예술제도 준비하고 여름에는 통도사로,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놀러 가는 것이 좋았습니다. 절에는 자주 왔지만 경전을 읽고 공부를 한다거나 법문을 듣는 것에는 별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각성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는데, 그 전까지 제가 생각했던 지루하고 어려운 법문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재미있고 친근한 법문이었습니다.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시기 보다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을 예시로 드시며 어려서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제가 이해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 뒤로부터 법문 듣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각성스님이 법문을 하시는 날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꼭 구룡사에 법문을 들으러 갔었습니다.
내 나이 18살, 아무 준비 없이 떠나온 중국 유학생활은 저에게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 이 생활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전 버틸 수가 없었고 어리석은 마음에 기숙사 서랍 속에 있는 약들을 모두 꺼내 입 속으로 털어 넣었습니다. 다행히 3일 만에 정신이 들었고, 저를 포기하지 않으신 부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저는 그 감사함을 금방 잊고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더 자살에 대해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방학 때가 되면 한국에 가서 각성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스님께서 법문 중에 “힘들다고 콱! 하면 더 힘든 세상만 옵니다. 힘들다고 콱!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힘든 세상에서 잘 살아갈까 고민해봐야 합니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고 지금 당장 힘들다고 자살을 하면 이 힘듦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상이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부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남은 생 동안 제 어리석음을 잘 닦고 살펴 다음 생에는 조금 덜 어리석은 중생으로 태어나기 위해 기도하고 수행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했습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사람에게는 마장도 안 옵니다. 곧 뭐가 되려고 하니깐, 곧 원이 이루어지려고 하니깐 마장이 막 오는 것입니다.”
법문 중에 각성스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유학생활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셨고 “동그라미 안에 별을 집어넣으려고 하니 얼마나 아프겠습니까?”라는 말씀은 저의 슬픈 마음을 위로해주셨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저에게 따스한 햇볕이고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주는 공기이며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고 갈증을 해소해주는 물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스님 덕분에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어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주저앉아 울기만 하던 아이가 이제는 일어나 스스로 방향을 잡고 걸어갈 만큼 성장했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힘이 되어주신 스님께 이제는 제가 힘이 되어드릴 수 있도록 더 바르게 나아가겠습니다.
또 스님께서는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청년들을 미래 불교의 희망이라고 하지만 저는 청년들이 지금 이 순간 불교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저 또한 20대의 청년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혼자 수행에 정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청년들이 지금 이 순간 불교의 중심이 돼야 한다”라고 일깨워주신 스님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겨 앞으로 대승불교 포교를 위해 힘쓰겠습니다.
각성스님께서도 여태껏 해오신 것처럼 앞으로도 좋은 법문 많이 해주시고 건강 잘 챙기시어 불교의 긍정적인 발전을 위해 오래오래 힘써주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
무사히 유학생활을 마칠 수 있도록 저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신 각성스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