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숙
수필가·문화센터 강사
건강검진의 하나로 우리는 위내시경, 대장내시경 등 검사를 받는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질병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기 위해서 소화기관 깊숙한 곳에까지 기기를 집어넣어 세밀히 살펴보는 작업이다.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는 자체는 나에게 병이 있다면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여 건강한 몸으로 회복하여 보다 오래도록 살기 위함일 것이다. 이토록 신체상의 질병에는 신경을 많이 쓰면서 정작 각자가 지켜야할 양심에 나쁜 암세포가 퍼져있는 것은 아닌지 왜 양심 내시경 검사는 하지 않는 것일까?
기본적인 상식과 도덕, 양심을 저버리고 불법주차, 무단횡단 하는 者들이 수도 없이 범람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라는 말조차 존재하는 정의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모범을 보여야할 정치인, 교육자 기업인 등 많은 직업의 무리 중에 특히 상위 그룹의 종사자들이 양심을 내버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평범한 우리네는 때로는 그들의 양심에 호소를 해보지만,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겉과 속이 다른 행동,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말들을 내뱉기 일쑤다. 자신들의 행동만이 善이요, 상식인 듯 이분법적 논리로 재단하여 상대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이기에 급급하다.
하나의 fact를 두고 보는 관점에 따라 왜 그리 사실이 다르게 평가되어지는지 놀랍기만 하다. 힘있는 자, 더 부유한 자가 하는 행동은 때때로 상식에 어긋난 옳지 않은 행동일지라도 善이라는 이름으로 매우 정당하게 포장되고, 힘없는 자, 덜 부유한 자의 행동은 아무리 상식적이고 옳은 행동을 보여도 비상식적이고 잘못된 행동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건강검진을 위해 자신의 소화기관을 들여다보듯, 양심의 내시경을 각자 점검해 봐야할 시기인 것 같다. 우리가 각자의 양심에 비추어 올바른 행동을 하여 살아가고 있는지 때로는 눈앞에 놓여 있는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양심을 전당포에 맡긴 채 비양심으로 소통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민낯을 들여다 볼 시간이다. 주위 어떤 분은 거짓말이 생활화되어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본인조차 구분하기 어려워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다. 상황에 따라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수시로 변하는 모습이 놀라울 뿐이다.
살다보면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버려야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때로는 작은 것을 버리지 못해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소신과 원칙으로 상식을 저버리지 않고 생활해 나간다면 결코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 누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겠냐마는 그래도 잘못에는 관대해도 자신에게는 철저히 인색한 불의를 보면 나설 수 있는 소신있는 者가 필요한 요즘이다. 건강한 몸을 위해 매년 행해지는 건강검진처럼 자신 양심에 비추어 비굴하게 비상식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지는 않은지 양심 내시경으로 내 양심을 검진해보자. 양심을 좀 먹는 비양심의 암세포는 없는지... 양심의 암세포가 양심을 해치고 있다면 하루빨리 도려내야 새 살이, 새로운 양심이 싹틀 것이다.
“옳게 사는 법은 자기 주변 것을 다 버리더라도 자기 자신만은 버리지 않는 것”이라는 피천득 선생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본질을 지키는 힘은 바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영혼을 팔고 양심을 저버리고, 세상을 얻으려 하지 말고 자신의 양심에 떳떳하게 당당하게 살면서 얻고자 한다면 저절로 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