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다라니 합창단에서 오늘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 음성공양이 이었습니다.
조사어록에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 아니며 물은 물이 아니네. 그러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가르침이 있습니다. 진공묘유眞空妙有라, 참으로 빈 곳에 오묘한 이치가 가득한 도리입니다.
원효 스님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있다고 할까 아니 한결같은 목숨이 텅 비어있고, 없다고 할까 아니 만물이 다 여기로부터 나오네.
그것은 광활한 것이다. 대 허공과 같이 사私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평등한 것이다. 큰 바다와 같이 지극히 공평한 것이다. 그것을 일컬어 도리 아닌 지극한 도리라 하며 그것을 일컬어 긍정 아닌 대 긍정이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목격한 대장부가 아니고서야 누가 언설을 넘어선 대승을 논하고 사려가 끊긴 대승에 깊은 믿음을 일으키게 할 수 있으랴.” 하는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합니다.
지난 5월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회를 마치고 12일 동안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종단에서 부처님의 성도지 부다가야에 분황사를 세우고 낙성식을 하는 자리에 총무원장 스님 등 수십 명의 스님과 불자들이 함께하는 자리였는데, 종단 행사를 마친 뒤 별도로 북인도 히말라야에 우리가 세운 사찰 설산사雪山寺를 찾아 그곳에서 수행 정진하고 있는 40여 명의 스님들을 격려하고 돌아왔습니다.
부다가야에서 설산사를 가려면 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델리로 가서 델리공항에서 4시간을 기다렸다가 다시 1시간 비행기를 탄 뒤, 챤디갈르에서 밤 11시부터 승용차로 달렸는데, 다음날 아침 8시에 설산사에 도착했습니다. 이런 험한 여정의 오지를 가다보니, 인도 성지순례에 만난 인연들이 생각납니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다른 사람의 허물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언젠가는 반드시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되돌아와서 나를 어렵고 힘들게 손상시킬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소리를 듣거든 마치 나의 부모를 헐뜯는 것처럼 여겨라. 오늘 아침에는 비록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했지만, 내일은 반드시 나의 허물을 말할 것이다.” 하는 가르침 생각이 나 소개할까 합니다.
40년 전 인도 성지순례를 하다가 부다가야 수자타 마을에서 전정각산에 가다가 동네 개에게 물려 혼쭐이 났던 일이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해서 바라나시에 있는 병원을 이용해야 했는데,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 자전거 뒤에 사람을 싣고 이동할 수 있도록 개조한 일종의 릭샤를 이용했습니다. 처음 병원에 태워다줬던 그 릭샤꾼은 일주일 동안 병원에만 데려다 준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나와 갠지스 강에 간다고 하면 갠지스강가에 태워다 주고 미얀마 사찰에 가자고 하면 미얀마 사찰에 태워다 주는 일을 다 마칠 때까지 입구에서 빈 수레를 세워놓고 기다리다가 다시 태워주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귀국해서 인연이 끊어지는가 싶었는데, 이듬해에 인도 성지순례를 다시 갔다가 미얀마 절 옆에서 다시 그 릭샤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절에서 나오는데 절 앞에서 릭샤를 세워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황급히 다가와 눈물을 글썽이며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그 인연으로 인도에 갈 때마다 그 노인을 찾아 만나게 되면서 자전거 릭 샤 대신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오토릭샤를 아들에게 두 번이나 사준 인연도 있습니다.
혼자서 인도를 순례할 때는 대다수의 도움을 티베트 사찰과 티베트 스님과 난민, 티베트인들의 도움을 받았었는데, 티베트인이 아닌 인도 현지인, 그것도 천민 계급의 사람과 만나 40년 동안 인연을 이어온 사람입니다. 그 노인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났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자손들이 살아있는 집까지 찾아가 위로를 해주고 비상금으로 그의 아내에게 주고 왔습니다.
『대비바사론大毘婆娑論』에 “어두운 방에 여러 가지 물건이 산재 되어 있다 해도 등불이 없어서 그 어둠에 가리우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눈이 있어도 볼 수 없는 것과 같으니 비록 지혜가 있다 해도 남을 좇아 가르침을 듣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능히 선善과 악惡의 뜻을 분명히 가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처럼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들이 많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화엄경華嚴經』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에서 가르치시기를, “불자여,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하노니, 어떤 중생이 부처님을 보거나 들으면서도 업에 덮여서 믿고 좋아함을 내지 못하더라도, 그 역시 선근을 심게 되어 헛되지 않을 것이며, 필경에는 열반에 들게 되나니,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이와 같이 여래의 계신 곳에서 보고 듣고 친히 가까이 하면 그 선근으로 모든 나쁜 법을 여의고 선법을 구족할 것이다.” 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들으면서도 무명無明에 쌓여서, 무지無智해서 믿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꾸 접하다 보면 선근善根을 심게 되어서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설산사에는 비가 오는데 앞산을 바라보니 눈이 하얗게 덮여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다가야와 바라나시, 델리는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데, 설산사에는 20도 이고 설산사를 품고 있는 산을 넘어가면 영하 20도입니다.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갑니다. 그런 오지인데, 도량에 심어진 나무에는 작은 열매가 빨갛게 열려 있습니다.
설산사에 도착하자 올해 처음 땄다고 하면서 빨갛게 익은 열매를 한 바구니 가지고 와서 앞에 내어놓습니다.
먹어보니 맛도 좋습니다. 상상만으로도 환희롭고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우리 불자들과 설산사를 참배할 수 있는 인연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어떤 불자가 제게 인생이 허무하고 허망하다며 한탄하듯 이야기를 하기에 이렇게 문자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인생이 무상한 것을 알게 될 때에 보리심菩提心도 잃지 않을 것이고, 선근善根과 지혜智慧가 증장 되어서 자비심慈悲心을 발현될 것입니다.”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아니라 노병사생老病死生이니, 늙고 병들고 죽으면 다시 태어날 것을 믿고, 태어나서 다시 올 인연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현생에서 본전치기만 해도 다시 인간 세상에 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은 누구도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하지만 현재를 잘 살면 이보다 나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천당이나 극락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인간 세상으로 다시 와서 다른 사람들의 자양분이 되고 감로수가 되고 비타민이 되고 윤활유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입니다. 가족끼리만 유유상종이 아닙니다.
구룡사에서 함께 더불어 신행생활을 하는 우리가 도반道伴입니다. 현재 함께 하고 있는 우리의 이 회상이 좋은 도량이라고 하는 것을 확실하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법회는 업장業障을 참회懺悔하는 법문이 나와 있는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한 소절을 전해드리면서 법회를 마치고자 합니다.
“선남자야, 또한 업장을 참회한다는 것은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과거 한량없는 시간으로부터 탐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으로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모든 악한 업이 한량없고 가이 없어 만약 이 악업이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끝없는 허공으로도 용납할 수 없으리니, 내 이제 청정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널리 법계 극미진수 세계 일체 불보살 전에 두루 지성으로 참회하되, 다시는 악한 업을 짓지 아니하고 항상 청정한 계행의 일체 공덕에 머물러 있으오리다.’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하여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면 나의 참회도 다하려니와, 허공계와 내지 중생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 나의 참회도 다함이 없어 생각생각 상속하고 끊임이 없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이 없느니라.”
과거 현제 미래의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 법法과 제정한 계율戒律을 모두 받들어 지니고 버리지 아니하므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의 종성種性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과 계율을 잘 받들어 지니고 버리지 아니하면 불법승 삼보의 종성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도 부다가야에 땅을 마련하여 사찰을 건립한 것도, 아직도 철저하게 신분계급이 지켜지고 있는 인도에서 천민 계층인 릭샤꾼의 집을 40년 가깝게 인도를 방문할 때마다 찾은 것도 소중한 인연因緣을 귀하게 여기는 우리들의 정서이기 때문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이 모든 인연에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신 분들이 바로 여기 계신 구룡사와 깊은 인연을 맺은 여러 불자님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함께 하는 도반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소중한 인연因緣 귀하게 여기는 자랑스런 불자로 살아가시기를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