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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아, 경전 속에 길이 있다

정하중
법보신문 기자


지금 한국은 촛불 속에 잠겨있다. 5월 2일 여고생 한 명에 의해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조그만 촛불이 이제는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대한민국이 촛불의 바다 속에 잠긴지는 꽤 오래됐다. 이미 40일도 더 된 6월 10일에는 주최 측 추산 70만의 촛불이 광화문에서 거대한 운하를 이뤘다. 당시의 촛불집회는 전 세계 어디를 뒤져보아도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진풍경을 외신들이 놓칠 리 없다. 덕분에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뿐 아니라 신문보고 인터넷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TV 뉴스를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한국에서 흐르고 있는 거대한 촛불의 강을 알고 있다.

문제는 촛불의 강이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촛불은 두 달을 넘어 세 달째 맹렬히 타오르고 있으며 아직도 그 끝은 요원하다. 정부 당국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촛불은 이미 꺼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7월 5일 광화문에 또 다시 50만(역시 주최 측 추산)의 촛불이 모여들어 그들의 안목에 싸늘한 비웃음을 날려주고야 말았다. 이는 촛불을 주도하는 불순세력 운운하며 시민들조차 촛불을 외면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 삼고 있던 정부 당국자들과 집권여당 관계자들이 뒷목을 부여잡을만한 사건이었다.

도대체 촛불은 왜 꺼지지 않는가. 고유가 세상에 전기세 아끼자고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밤거리를 밝히는 것도 아닐 텐데 자꾸만 거리가 가로등도 아닌 촛불로 밝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 시작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였다. 이쯤이야 이제 모든 시민들도 다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대한민국 언론이라면 이 문제를 안 다룬 곳이 없을 테고, 시민들뿐 아니라 대한민국 불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일 테니 촛불의 원인을 따지는 얘기는 이제 그만 하련다. 단지 혹시나 우리 불자들이 그 사실을 잊고 있을까 우려됐을 뿐이다. 왜냐하면 촛불은 이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와 너무나 동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촛불집회 현장에서‘(장관) 고시 철회’,‘ 광우병 소 너나 먹어’따위의 구호는 진부해져 버린 지 오래다. 7월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거의 들리지도 않는다. 이제는‘독재 타도, 명박 퇴진’이라는 정국 당국자들에게는 불손하기 짝이 없는 구호가 그 자리를 대신 메웠다. 잘못된 정권의 정책과 실책을 꾸짖고 있다.

조롱의 대상에서 경찰과 검찰도 예외는 없다. 그들이 무엇을 그리 잘못했냐고 묻는다면 지난 시간의 기록을 다시 되새김질해보길 권한다. 촛불집회를 과격시위대로 몰고 있는 경찰이 과연 시위대에 의해 먼저 폭행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었는지를 따져보기 바란다.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주장한다면 굳이 시민들에게 내밀 손이 방패 잡은 손밖에 없었는지부터 따져보자. 더구나 그 방패는 기자들의 뒤통수와 카메라에도 날아들었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공권력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최근의 행보를 살펴봤을 때 이해하기 힘든 수사행태를 보이고 있는 검찰도 권력의 남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현 시국을 냉정하게 분해조립 해봤을 때 촛불집회 참가자 측도 그리 긍정적이었던 것만 은 아니다. 믿고 이해해주려 했던 민중의 지팡이가 발등을 방패로 찍고 얼굴을 가격했으니 흥분 하고 분노할 만도 하다. 그렇다고 7~80년대‘빠이’로 불리던 대표적인 시위 아이템인 쇠파이프를 장착한 일부 촛불을 잘했다고 두둔만 하기는 힘들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임을 우리는 오랜 역사 속에서 숱하게 겪어왔다. 촛불들이 참고할만한 경전 구절이 있다. 잡보장경 ' 용왕의 게송 인연' 이야기다.

“원수의 그 힘도 약해질 때 있나니 친한 벗 없어지고 믿을 때 없더라도 그런 이치 살피어 잠자코 즐겨라 / 법답지 않은 사람 탐하고 아끼나니 믿지 않고 부끄럼 없고 충고 듣지 않거든 그런 나쁜 곳에서는 잠자코 즐겨라…믿지 않고 날치어 뽐내기 좋아하고 도리어 거짓으로 사람 미혹 하거든 그런 사람 대해서는 잠자코 즐겨라 / 계율 깨고 흉악하여 염려나 참음 없고 나쁜 법을 행하고 믿는 행이 없거든 그런 사람 대해서는 잠자코 즐겨라”

저항에 대한 얘기는 온데간데없이 무조건 참으라니 현장의 촛불들이 쉽게 이해하기는 힘든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마치 성한 불길에 사나운 바람이 불어 그 불꽃 숲에 붙어 모두 태우는 것처럼 성냄은 불꽃과 같아 남과 자기 태우나니 그것은 극히 악한 해침이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들어도 갑자기행하지 않고 생각하고 헤아려 그 진실을 따지고 그 이치를 밝게 안 뒤에라야 행하나니 이것이 이른바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좀 더 현명해지기를 말하고 있다. 또“위엄으로 사나우면 남이 꺼리고 나약하면 남이 업신여 기나니 그 두 쪽을 버리고 중도를 행하라”는 구절에서도 촛불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하며 호랑이처럼 위엄 있고 사나워라”는 구절에서는 지금까지 보여준 촛불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본래 잡보장경의 이 구절들은 옛날 가시국에 살던 두 용왕 형제의 이야기 속 한 부분이다. 전체의 이야기가 촛불 시국과 그리 맞는 것은 아니 지만 그 속의 구절구절은 혈기왕성한 촛불들이 눈여겨 볼만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국을 해결할 열쇠는 언제나 경전에 있다. 위에 언급한 잡보장경 이외에도 적지 않은 경전에서 현 시국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다만 그 길의 공통점은 정도와 중도다. 명분이 없으면 그 어떤 요구도 대중은 외면하기 마련이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중도의 길 위에 서있어야 한다.

현 시국에서도 돌파구를 말 그대로‘돌파해서’찾아내려는 MB정권에게도 경전 한 구절을 권하고 싶다. 부처님의 경전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아 이명박 대통령께서 즐겨 보실 성경 에서 찾아 봤다. 마태복음 7장 3~5절의 내용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제발 매주 일요일 청와대에서 가지는 예배 시간에 배우는 성경 말씀대로만 이 대통령과 이 행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