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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성운(星雲)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고대 중국사회의 인간관계는 현대의 문명사회 보다 ‘화합’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전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예(禮)로써 하는 말들이 전해 왔기 때문에, 언쟁이나 말다툼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만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올해 나이가 몇입니까?”
“고향은 어디십니까?”
“자친(慈親), 자당(慈堂)은 계십니까?”
“무슨 일을 하십니까?”
“모쪼록 가르침을 주십시오.” 


모두 예로써 상대를 대하기 때문에 논쟁이나 말다툼을 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습니다.
불교의 수행처 총림(叢林)에서도 세계 각지에서 온 승려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총림에서 사용하는 말들이 따로 있어 다툼 없이 화합하고 평화로이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상하(上下)’, ‘법호(法號)’, ‘법명(法名)’, ‘은사(恩師)’,  ‘거처’, ‘좌석’, ‘영접’, ‘법상(法床)’ 등의 말과 ‘법문을 청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만학’, ‘대덕’, ‘학인’, ‘자비로써 깨우침을 주십시오’, ‘자비로써 용서해 주십시오’, ‘위엄을 갖추셨군요’, ‘많이 베푸시는군요’, ‘발심을 하셨군요’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총림은 저마다 온 곳도 다르고, 각기 성격도 다르지만 예의바른 말이 있어 논쟁이나 말다툼 또한 쉽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종종 말 한마디에 서로 말다툼하고, 심지어는 서로 때리기도 합니다. 그 원인은 “기꺼이 가르침을 받겠습니다”와 같은 식의 언어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근자에는, 서로 만나면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이름은 무엇입니까?”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형제 중에 몇 째 입니까?”
“무슨 일을 합니까?”
“꼼짝 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질문식의 말투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말을 꺼내자마자 첨예하게 대립하는 형식으로 말들이 날카로워집니다. 그 다음은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아도 짐작이 가실 겁니다.
“기꺼이 가르침을 받겠습니다”라는 말은 아름다운 말일 뿐만 아니라, 다투지 않겠다는 뜻이며 화합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소 가정에서는 부모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님의 가르침으로~”,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사회에서는 “선배와 상사의 가르침으로~” 또는 “친구나 동창, 고향사람의 가르침으로~”라고 말을 합니다.
야단을 맞아야 하는 경우에도 겸손하거나 예의바른 말투 덕분에 상대방은 오히려 당신을  더 많이 칭찬할 것입니다. 말을 배우려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다투려는 의지가 없는 겸손한 말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예를 들면,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등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손님이 오면 “어서 오십시오”라고 말하고, 손님이 가실 때는 “또 오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식사 초대를 받은 경우, “초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차를 마실 때는 “천천히 많이 드세요”라고 말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존함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극한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낌없는 가르침을 바랍니다”라고 말합니다. 만약 모두가 이렇게 예의바르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들을 항시 입에 달고 산다면, 인간관계의 무의미한 논쟁이나 골치 아픈 분쟁들은 모두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말 한 마디로 나라를 흥하게 할 수도 있고,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고운 말 한 마디가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도 있으며,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분쟁을 해결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운 말을 즐겨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