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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에 작지만 큰 변화… 담마 커뮤니티 ‘꿈틀’

이학종
미디어붓다 대표기자


정중동(靜中動)! 한국불교에 조용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나비 한 마리의 움직임이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눈 밝은 이들은 한국불교에 일고 있는 조용한, 그러나 심상치 않은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고 있다.
그 흐름의 배경에는 기존의 시스템 중심의 불교로서는 한국불교의 발전 또는 불교중흥에 한계가 있다는 공감대의 확산이 버티고 있다. 시스템 중심의 불교란, 즉 조계, 태고, 천태, 진각종 등으로 대표되는 종단이라는 구조를 일컫는 말이다.
시스템 중심의 불교는 그 조직이 비대하고, 결성된 지 오랜 시간이 흐를수록 동맥경화 현상이 나타난다. 자연스럽게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로 변하기 마련이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장자 종단인 조계종의 경우를 보자. 조계종은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를 하고 있다. 조직이 비대하다보니 작은 조직이나 청정한 조직에서는 들지 않아도 될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구조를 하고 있다.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데에 조계종은 4년마다 너무나 많은 비용을 사용한다. 총무원장뿐만이 아니라 중앙종회의원, 본사주지, 관람료사찰 주지 직을 선출하거나 임면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문제는 이런 비용이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데 있다. 과거 절집안에 위계가 뚜렷하고 어른 스님들의 목소리가 힘과 위엄을 갖추고 있었을 때에는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던 비용들이다. 생산적이지 못한 곳에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조직에서 변화와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이유다. 한국불교는 최근 이런 공감대 속에 ‘그렇다면 한국불교가 벤치마킹해야 할 불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도심포교에 앞장서고 있는 불광사 부설 불광연구원이 최근 ‘대만불교’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대만불교가 한국불교, 특히 조계종이 닮아가야 할 모델이라는 점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제안한 바 있다. 대만불교의 사찰운영 방법, 교단운영 방법, 신도교육과 사회기여 및 보살행 실천방법 등에 대한 세밀한 조사와 연구가 이 세미나를 통해 제시되었고, 종단이나 주요 사찰의 많은 스님들이 세미나에 참석해 경청하는 모습이 있었다.
또 하나는 유럽불교와 미국불교의 흐름을 주시하는 눈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불교는 불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석가모니 부처님 출현 이후 세 번째의 불교 부흥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불교의 특징은 특정한 스님(담마 마스터)이나 법사(담마 티쳐)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의 활성화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이 이끌고 있는 플럼 빌리지와 같은 형태를 생각하면 되겠다. 유럽전역에 이와 비슷한 성격의 크고 작은 담마 커뮤니티가 수 없이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는 오직 스승의 지도와 부처님께서 남겨주신 담마, 즉 법이 중심이 된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시스템 비용은 거의 없거나 최소한이다.
이런 담마 커뮤니티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제자라는 이념적 연대를 가지고 있을 뿐, 우리가 습관처럼 좋아하는 불필요한 조직의 확대나 통폐합, 관리 등에는 관심이 적다. 저비용 고효율의 원칙을 자연스럽게 지키고 있다. 절을 짓거나 전각을 늘리거나 규모를 키우는 일은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성격의 담마 커뮤니티가 활동하고 있다. 법륜스님이 이끌고 있는 정토회가 똑 같지는 않지만 유럽의 담마 커뮤니티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런 곳에서는 대표자를 뽑기 위해 선거를 하거나 편이 갈려 다투는 모습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어떻게 부처님의 법, 즉 담마를 공부하고 실천하며 이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할 것인가의 화두가 최우선의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다.
미국의 무승가 불교도 주목할 만한 대상이다.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담마 커뮤니티의 특징은 출가하여 삭발염의한 승려가 중심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스님이 아닌 재가자가 담마 커뮤니티를 이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미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격식이나 조건보다는 내용이나 효과에 가치를 두는 미국인 특유의 실용적 경향이 작용했을 것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영역이 꼭 출가자여야 한다는 인식이 이들에게는 거의 없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불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알다시피 지금까지는 수행과 전법에 전념하는 몇몇 재가법사들이 그를 따르는 100여 명 안팎의 소규모 불자들에게 불교를 가르치고 수행을 가르치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마선원 원장으로 주로 소규모 그룹을 대상으로 경전 강의와 금강경 수행법(공관법)을 지도하던 이제열 법사가 지난 7월 7일 ‘법림(法林)’이라는 이름의 대중법회를 열면서 기치를 들었다. 법림은 ‘대승 정법결사’를 표방하면서 방편이 아닌 정법, 경전과 논장에 근거한 법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는 열린 재가불교 단체를 표방하고 있다. 재가법사를 스승으로 하여, 재가법사의 설법과 강의를 통해 정법불교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조직인 법림은 첫 대중법회에서 불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면서 성공적으로 출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주제가 있는 설법과 즉문즉답을 통해 공부하는 불자들의 법에 대한 욕구와 갈등, 고민을 즉석에서 타개해주는 시간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법림은 또한 첫 번째 진행된 대중법회에서 기존의 법회형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다채롭고 재미 있는 법회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법회 참가 불자들로부터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법림법회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법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스텝진들이 각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주로 법사의 개인역량에만 의존했던 기존의 모임이나 단체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시도다. 
특히 법림은 첫 대중법회를 통해 참가한 대중들에게 한국불교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법림은 이날 배포한 제안문에서 “우리는 일본의 기존사찰이 장례불교 위주의 시스템으로 고착되었음을, 그러나 동시에 수백만 회원을 거느린 재가 불교조직이 활기를 띠고 활동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창가학회, 영우회, 입정교성회 등을 거론함으로써 그들이 지향하는 곳이 어느 곳인가를 에둘러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법림의 스승인 이제열 법사를 ‘재가의 선지식’으로 공식 호칭함으로써 승려 중심의 한국불교 기존질서에서 연연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도 주목된다.
한국불교에서 일고 있는, 아직은 작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엇인가 힘차게 꿈틀거리는 변화의 흐름이 어떤 결과를 나타낼 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