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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기도를 올리는 마음가짐과 자세

이시종
칼럼리스트


구룡사와 여래사를 비롯한 통도사 포교당은 물론 전국의 모든 사찰에서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을 앞두고 수능기도에 돌입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견주지 못할 만큼 교육열이 높다. 그렇다보니 매년 2학기가 시작되고 수능고사일이 가까워지면 전국의 사찰과 성당, 교회에서는 ‘대입 합격발원기도’가 이루어진다.
본래 다니던 절이나 교회에서 하는 입시기도에 동참할 뿐 아니라 심지어 기도영험이 있다는 전국의 유명 기도처를 두루 찾아다니며 “제발, 우리 아이가 좋은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게 해주세요!”라며 간청하기도 한다.
자력 종교이든 타력 종교이든, 종교인은 자신의 소원(所願)과 서원(誓願)을 담은 기도를 올린다. 기도 없는 종교는 생각하기 어렵다. 아니 존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의 수행으로 깨달음을 성취하기로 서원한 우리 불자들의 기도는 절대 유일신을 믿고 모든 것을 신(神)의 결정에 맡기는 타력 종교의 신도와 달라야 한다. 불자가 기도를 할 때에는 너무 기복적이 되지 않아야 하며, 혹 신비적인 가피를 기대하지 말고 돈독한 신심으로 열심히 정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할 때 입시 기도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게 된다. 입시기도 동참자는 이 기회를 통해 자기 마음을 닦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이해심을 넓히게 되며, 불교의 가르침을 접하게 될 것이고, 또 그것을 계기로 불교교리를 배워 참다운 불자로 성장해 갈 것이다. 자식 입장에서도 마음이 안정될 수 있을 것이고, ‘나를 위해 저렇게 지극 정성을 바치는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도 더욱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며, 나아가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야겠다’는 발심을 하게 될 것이다.
입시기도에서 드러나는 자식을 향한 어버이의 지극한 마음은, 자식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고 정성스런 어버이의 마음은 곧 중생을 향한 부처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입시기도와 같은 확고한 서원(誓願)을 가지고 기도를 올릴 때는 ‘무엇인가를 반드시 이루어야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현우경(賢愚經)≫에 보면 서원에 대한 다음과 같은 법문이 나온다.
『그 때 벽지불은 허공에서 신통 변화를 나타내었다. 즉 몸에서 물과 불을 내고 큰 광명을 놓았다. 대신은 그것을 보고 한량없이 기뻐하면서 곧 서원을 세웠다. “그대는 내 은혜로 말미암아 목숨이 구제되었습니다. 나로 하여금 태어나는 세상마다 부귀하고 오래 살며, 뛰어나고 특별하기를 수천만 배나 되도록 하고, 내 지혜와 덕이 서로 같게 하소서.”』
그렇다면, 서원을 세우면 그 원이 과연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일까?
무언가를 성취하려면 원이 있어야 하겠지만, 원을 세운다고 하여 반드시 이루어진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어떤 일이 이루어지려면 다양한 요인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에 서원이라는 하나의 요인만으로는 그 서원의 성취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모든 경전에서 서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입장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
업인과보설(業因果報說)은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의 궁극적인 원인이 내 마음, 내 의지에 있음을 밝혀주는 불교의 기본 사상이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운명이나 신, 우연 등을 세상사의 원인이라 주장한 외도(外道)들을 논파하며 알려준 진리이다. 그에 입각하면, 모든 업(業), 즉 행위는 의도(意圖)가 그 근본이 되며, 의도적인 행위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과보가 따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발원 역시 강력한 의도를 행하는 것이므로, 그에 상응하는 과보가 반드시 따르게 마련이다. 서원은 성취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은 열 가지 원을 세운 보살에게 ‘결정정각(決定正覺)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 10대원 중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붓다를 향한 예배와 찬탄, 그리고 공양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도의 모습이다. 기도는 불제자의 입장에서 행하는 또 다른 발원인 것이다. 기도는 원(願)을 간절히 희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심히 기도를 하면 된다. 그리고 기도를 함에 있어서 털끝만큼의 의혹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식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를 하는 것은 불자들에게 맞지 않는다. 혹시라도 “다른 절의 입시생들은 다 떨어져라. 다른 집 아이는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아이만 불보살님 가피력으로 좋은 성적을 내주세요”라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아플 때 “불보살님의 자비심으로 살려 주십시오!”라며 간절한 기도를 드릴 뿐 “다른 사람을 대신 아프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드리지는 않는 것과 같다.
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자식을 위한 입시기도를 드리면서 혹시라도 ‘내가 아이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데, 아이가 이것을 몰라주면 어쩌지?’라며 상을 내며 괜한 걱정을 하거나 아이에게 “엄마 정성을 봐서라도 꼭 좋은 대학에 합격해야 한다”고 드러내놓고 압박을 가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자식을 위한 기도가 오히려 자식을 불안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입시를 망치거나 앞날을 해치는 나쁜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자식을 위한 입시 기도를 올리면서 ‘이 땅에서 지금과 같은 학력(學歷) 차별과 입시 지옥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대승적 발원을 한다면 더욱 바람직한 일이리다. 내 자식이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면서, “제발 다른 아이들은 이런 입시지옥에서 고통을 겪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라며, 타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마음이 우러나는 기도를 올렸으면 좋겠다.
자식을 둔 어버이라면 아무리 부처님 경전을 많이 읽고 수행 정진해왔을지라도 ‘내 자식 잘되게 해달라’는 이기적 마음을 버리기 힘들고 따라서 무조건 “이기적 기도를 그만 두세요. 남을 위한 기도를 하세요”라며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남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라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깊은 뜻을 이해한다면, 내 자식뿐만 아니라 남을 위한 기도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남을 위한 기도’를 통해 오히려 나에게도 좋은 결과가 생길 것이다.
2012학년도 대학입시 기도를 올리는 불자들은 관세음보살의 자비심과 보현보살님의 대원력을 모범으로 삼아 내 아이와 함께 고생하고 있는 모든 입시생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서도 진심으로 정성껏 기도를 올리는 불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