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아시아기자협회 운영위원
한국 대학등록금 세계 3위
글로벌 기준에 따라 한국사회를 읽을 수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가 있다. 앙헬 구리아 OECD사무총장은 지난 6월 20일 <한국을 위한 OECD 사회정책 보고서>를 제출했다. 한국을 직접 방문해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OECD에 직접 요청한 것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제출된 보고서를 보면, 마치 정밀 건강 진단하듯이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최근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대학 등록금부터 사교육비, 국민연금, 정년연장, 저출산-고령화, 비정규직, 증세-감세까지 사실상 한국사회의 모든 분야를 분석했다.
우선, 대학 등록금은 OECD 회원국 중 3번째로 비싸고, 정부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비율은 OECD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장학금 비율은 공공교육비의 4.4%로 평균치인 11.3% 보다 2배 이상인 7%포인트나 낮았다.
교육비 사적부담, 공적부담의 3배 이상
학자금 대출비율인 5.7%도 역시 OECD평균인 8.8% 보다 3.1%포인트 낮은 수준을 보였다. 공공부문의 대학 교육비 분담비율도 하락세를 보여, OECD평균인 69%에 미달했다. 특히 등록금 지불에 대해 세금 공제혜택을 받고 있지만, 대학 교육비의 대부분을 가계가 부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같은 수치는 2010년 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비율이 각각 4.4%와 5.7%로 2011년과 같았다. 다만, 대학 등록금 수준은 미국에 이어 2010년 2번째에서 2011년 3번째로 호전된 정도뿐이다.
교육비를 비교해도 교육 경쟁력의 열악한 실태는 다르지 않다. 1인당 교육비는 8천920만 달러로, OECD 평균의 3분의 2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비 부담주체를 보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공적 부담이 20.7%에 그치고, 사적 부담이 79.3%로 사적 부담이 공적 부담의 3배 이상이다.
한국의 세계적인 교육열에 비춰 보면, 교육비 실태는 너무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육의 사적 영역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고, 소득격차에 따른 사교육비 문제와 교육을 통한 계층갈등이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중산층과 서민층은 가계소득 대부분을 교육비와 주거비에 충당하고, 만성적인 가계적자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기업은 돈을 벌어도, 일부 직장인을 제외한, 사회 대다수의 형편은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 여러 가지 경제지표가 웅변하고 있다.
대학생 절반 이상 등록금 아르바이트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생 등록금의 문제는 실제 대학생 생활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7월 5일 전국 대학생 2천 3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 아르바이트 실상(實相)은 명확해 진다. 조사결과 전체의 53.9%가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대답했다. 특히, 조사대상의 19.5%는 등록금 때문에 휴학하고 일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등록금 마련방법은 부모님의 도움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합쳐, 마련하겠다는 응답이 40.8%로 가장 많았다. 다만, 부모님이 전적으로 마련해 준다는 비율은 19.3%였으며, 아르바이트를 통해서만 마련한다고 밝힌 응답자도 12.2%에 달했다.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 보니, 나타나고 있는 사회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조사결과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한 휴학생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마트에서 냉동기 수리업체에서 일하다 질식하는 사고가 발생해 문제의 심각성을 더했다. 실제, 아르바이트를 하려 해도 쉽지 않다. 과외 알바(개인교습)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렵고, 과외 중개업체를 이용해 돈을 들여도 일거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구청과 동사무소 아르바이트는 10:1에 육박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대학생의 신용불량 실태를 보면, 또 다시 한숨짓게 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학자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서울지역 대학생이 4천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2005년부터 올해 4월까지 조사한 결과이며, 학자금 원금 또는 이자를 6개월 이상 연체해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다.
대학생 신용불량자 대학명단도 공개됐다. 국민대가 299명으로 가장 많고, 세종대 293명, 단국대 287명, 동국대 256명, 숭실대 249명, 건국대 240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명문대도 예외가 아니다. 성균관대 235명, 한양대 192명, 연세대 189명, 고려대 187명, 중앙대 175명, 이화여대 133명, 서울대 91명, 서강대 66명 등으로 집계됐다.
학자금 대출자는 서울의 43개 4년제 대학교 학생 36만 3백명 가운데 13.9%인 5만 166명으로, 대출규모는 3천 879억원을 넘었다. 특히, 1천만원 이상의 고액을 대출받은 학생도 4천 574명으로 집계됐다.
구름과자가 되어버린 반값 등록금
대학 등록금 실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여야 정치권은 물론 정부도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예산 타령만 한다. 여권은 지난 10여 년 간 대학 등록금 고지서를 근거로 등록금 폭등에 대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1999년 이후 등록금 인상 현황에 따르면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평균 등록금 인상률은 각각 54.7%와 35%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중-국민의 정부 당시 국공립대와 사립대 등록금 인상률이 각각 33.9%와 29.1%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 등록금 인상률은 각각 3.9%와 4.5%로 집계됐다. 여기에다, 지난 정부에서는 등록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2배 이상 앞질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전(前) 정권 책임론을 거론하더라도, 여권의 진정성에 대한 설득력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제시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전 정권 책임론으로 피해가려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정권 담당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가는 태도가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8월 임시국회에 대한 여야의 생각도 서로 다르다. 시급한 민생현안과 결산처리가 시급한 현안 같은데, 등록금 관련 법안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미FTA 비준안 처리도 현안이지만, 여야 간 합의 처리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실정이다.
등록금 문제에 대한 여야 간 입장 차이는 물론 당정 협의 과정을 보더라도,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한나라당은 당장 반값 등록금은 어렵더라도, 2014년까지 30%이상 낮추는 단계적 접근방법을 제시했다. 저소득층과 차상위 계층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지원책을 마련했다. 교육 연간예산이 2011년 기준 44조3천억원인데,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초중등 교육관련예산을 조정하려 하는 등 결국 아랫돌 빼서 윗돌 올리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9월 중순 내년도 예산안 국회 제출을 앞두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다. 우선 재정건전성을 말하고, 지원명분 확보와 재정 부담 최소화 등을 거론한다. 대학혁신도 얘기하면서, 학부모 부담 완화와 대학의 자구노력 극대화, 지속가능한 재정설계 등을 강조한다. 아직 대학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당정 간의 지원규모와 방식 등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더운 날 치열한 고민들이 오고 갈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지지 공약 가운데 하나인 반값 등록금은 그동안 논의과정을 거치면서 허공속의 구름과자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