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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사랑의 위대한 힘

매트릭스 3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매트릭스>의 완결편인 3편 레볼루션은 기계와 인간의 최후 대결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을 쫓아내고 세상을 지배한다. 소수의 인간들은 우주의 전함에서 외롭게 항쟁한다. ‘독립 투사’들이다. 기계세상인 ‘매트릭스’의 입장에서 보면 ‘반란군’ 또는 ‘저항군’, 또는 ‘테러집단’일 것이지만.
3편은 가상 세계에서 펼쳐진 1, 2편과 달리 중간계와 현실세계가 펼쳐져 우주전쟁이 벌어진다. 주인공 ‘네오’역의 키아누리브스와 ‘네오의 사랑’ 트리니티역의 캐리앤 모스, 독립군의 대장인 모피어스역의 로런스 피시번, 네오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매트릭스의 수호자 스미스 요원 역의 휴고 위빙 등이 펼치는 전투장면은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웅장한 스케일을 과시한다.
인간들은 매트릭스의 감시망을 피해 지하 깊고 깊숙한 곳에 시온이라는 비밀도시를 만들어 숨어든다. 성서 속에 등장하는 최후의 도시다. 그러나 시온마저도 센티넬이라는 기계군단에게 장악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시온의회에서 의원들은 방위군 대장에게 “인간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방위군 대장은 “가능성은 없다”면서 “2시간 뒤면 기계군단에 의해 시온은 파괴되고 인간은 멸망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적을 믿는 모피어스에게 물어보라”고 말한다.
모피어스는 ‘네오가 세상을 구원해줄 그’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사나이다.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고, 남자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했던가. 네오는 모피어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불가능한 꿈에 도전한다. 네오는 기계세계를 움직이는 메인 도시로 가서 메인 컴퓨터를 파괴하겠다고 한다. 시온을 벗어나려면 전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방위군 대장은 이곳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기계군단의 공격에 박살이 나고 말 것이라며 전함을 내줄 수 없다고 말한다. 자기 판단대로라면 바위에 계란치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설사 바위에 계란 치기라고 하더라도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그런 항거라도 해보기 위해 나서는 정신력의 소유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한 전함을 가진 여전사 니오베다. 니오베는 네오에게 자신의 전함을 내주겠다고 한다. 네오는 그 전함을 타고 불가능한 싸움에 나선다. 물론 그의 사랑 트리니티가 네오와 함께 한다. 네오는 “혼자 가겠다”고 하지만, 네오를 사지로 혼자 보낼 트리니티가 아니다.
시온 안에선 그래도 절망적인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네오가 좀 해보려다 기계군단의 공격에 전함이 파괴되던지 아니면 전진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분위기다. 하지만 모피어스는 말한다.
“네오는 신념대로 행하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포기하기 전까지는 ‘불가능’은 없다. 포기하지 않은 불굴의 정신으로 네오는 시온을 나선다. 하지만 미처 전함이 제대로 궤도에 접어들기도 전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저항군 내에서 평소 트리니티를 사모했던 베인의 몸속에 기계인간의 고수 스미스요원이 복제해 들어와 있던 것이다. 매트릭스는 컴퓨터 세상이므로, 복제하면 겉인 하드웨어가 어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건 내부의 소프트웨어는 ‘복제품’일 수 있다. 따라서 베인도 겉모습은 ‘저항군 베인’이지만 그는 이미 네오의 적 스미스요원인 것이다. 전함 안에서 베인은 트리니트를 유인해 좁은 기계실에 가둬버리고, 네오의 제거에 들어간다. 네오는 베인과 싸우는 과정에서 베인이 전기선을 눈에 갖다 대는 바람에 두 눈이 새까맣게 타 두 눈을 잃게 된다. 인류의 유일한 구원의 희망이었던 네오마저 눈을 잃게 됐으니 인류의 희망마저 암흑으로 변한다. 하지만 절망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희망은 있는 법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인류의 마지막 희망의 보루로서 세상을 구해야한다는 열망을 버리지 않은 네오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그가 눈을 잃은 가운데서도 시력 너머의 초능력적인 시각을 얻게 된 것이다. 네오는 트리니티에게 “이 빛을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우주누리에 가득한 영광(靈光)을.
육체적으로는 이미 장애가 되었지만 육안을 넘어선 광안(光眼)을 얻은 네오는 기계도시에 도착해 스미스요원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스미스요원은 “생명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줄 아느냐?”고 네오에게 묻고 자답한다.
“바로 죽음이야.”
그러므로 네오도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류에 대한 자비와 사랑, 구원의 희망을 안고 싸우는 네오는 결국 불가능해 보이는 스미스와의 싸움을 승리한다. 그래서 포기와 죽음만이 예고됐던 인류를 부활시키고 생명을 잇게 한 것이다.
매트릭스가 눈을 잃은 가운데서도 다시 부활한 것은 마치 ‘현대판 심청전’을 보는 듯하다. 필자는 심청전엔 ‘깨달음의 과정’이 감춰져 있다고 본다. 심봉사의 심(心)은 마음이다. 즉 마음이 어두운 사람이다. 즉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상처와 환경, 고정관념, 편견, 신념, 업습의 장막에 가려 사물과 상황을 바로보지 못한다.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가족도 이웃도 사회도 공동체도 바로 보지 못하고 오직 자신 속에 갇혀 살며, 자신 밖에 모른다. 그러니 심봉사는 끼니도 잇기 어려운 처지이면서 오직 자신의 눈을 뜰 욕심으로 공양미 300석을 바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심청은 심봉사와 부녀관계로 나오지만 깨달음의 세계에선 중생과 불보살처럼 다르다. 심청(心淸)은 ‘마음이 맑은 이’다. 마음에 장애가 없으므로 여실지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체중생이 나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바로 보게 된다.
자신 속에만 갇혀 있지 않기에 가족과 사회와 공동체와 세상을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다. 심청은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인당수의 인당이란 두 눈 사이로, 심안을 집중시키는 명상처다. 그렇게 깊은 명상세계에서 자아를 몰록 던졌기에 그는 결국 연꽃 속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심봉사,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까지 모두 눈을 뜨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자비와 사랑의 위대한 힘이다.
우리는 너무 가족중심적인 삶, 가족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심청전이 가족을 위한 희생에서 나아가 더 큰 세상을 위한 희생과 자비의 개념으로 확대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전개과정은 자신을 던져 결국 ‘눈을 뜨지 못한’ 세상 사람들을 구한다는 구원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네오가 자신을 던져 인류를 구원한 것처럼.
세상이 이기적 욕망으로 뒤덮여감에 따라 지구촌과 인류에게 무슨 희망이 있느냐는 소리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자비와 사랑의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포기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희망은 있다.
박노해가 <사람만이 희망이다>란 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서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