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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써라

현재호
후애마이(Who am I)연구소 소장 / 여래사 거사림회 총무이사 /Blog.daum.net/hyun-jaeho


오늘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속담 하나를 재조명 해보고자 합니다. (다른 나라의 속담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속담은 경전 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보아 단순해 보이는 속담도, 내포하는 의미가 헤아릴 수 없이 깊습니다. 저는 불경을 기반으로 여러 속담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써라’를 발췌해봅니다.
先悟後行선오후행 / 先覺後行선각후행
먼저 깨달은 후에 수행하라.(또는 깨달은 마음으로 수행 정진하여야 한다)
불가佛家에서는 깨달음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또한 깨달음이라는 말에 만감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깨달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정의 되어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한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수행을 하려 하지만 무엇부터 하여야 할지 난감해 하십니다. 좌선? 참선? 선 공부? 아니면 명상? 염불? 송불? 108배? 등등 막연합니다.
그래서인지 ‘실천하는 불교’, ‘생활불교’라는 말도 합니다. 이는 실생활 속에서 불교의 교리를 조금이나마 실천하고자 하는 바람이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세속에서 깨침을 얻자는 취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에 올라 맑은 공기 마시며 토굴 속에서 깨침을 얻어서 무엇 하겠습니까? 내려오면 또 오염될 마음인 것을…. 오염된 늪에서 연꽃이 자라나게 마련인 것이지요.


1. 연잎의 받아들이는 지혜
연잎에 구정물을 떨구어 보신 적 있나요? 구정물이 떼굴떼굴 굴러 떨어질 뿐, 연잎은 절대로 오염되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연잎의 표면은 매우 작은 돌기가 무수히 많아서 물방울이든 이물질이든 연잎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사진 참조) 이러한 비결은 특이한 잎의 구조 때문인데요,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연잎에는 50~100분의 1㎜ 높이의 미세한 돌기들이 촘촘히 솟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돌기들은 만 분의 1㎜ 크기의 미세 돌기들로 구성됩니다. 결과적으로 물방울이든 이물질이든 연잎과 접촉하는 면적은 매우 적어서 연잎은 오염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도 연잎은 오염된 늪에서 자라는 과정에서 ‘오염’의 성질을 잘 파악하였나 봅니다. 그래서 오염을 이겨낼 방법을 찾은 것이겠지요. 이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받아들인 것입니다. 오염 된 물 자체를 뿌리를 통해 받아들인 것입니다. 받아들여야, 성질을 알 수 있겠지요. 그것은 당연한 이치 아닐까요?
자, 이제 우리 생활을 보시지요. 우리가 하루를 살다 보면 나 자신을 자극하는 많은
요소를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그 자극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 자극을 이겨낼 만한 힘이 생기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 자극을 배척하고 원망하며 심지어 싸우기까지 합니다.


2. 받아들이는 연습 ‘인욕바라밀’
육바라밀 수행 중에 ‘인욕바라밀’이라는 것이 있지요. ‘인욕’이 무엇입니까? 참을 인忍 때문인지 많은 분들이 이해하시기를 ‘화’를 내지 말고 인내하고 참는 연습을 하는 수행이라고 입을 모으십니다. 하지만, 약간 다릅니다. 부처님은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마음에 불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 그 자체라고… 그러므로 만일 앞에 있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욕을 했다면, 그것은 부처가 나에게 욕을 한 것으로 여기라고 말입니다. 아마도 내 자신이 부처가 욕을 할 만한 일을 했나 봅니다.
오죽하면 부처가 욕을 했을까? 이것이 인욕바라밀입니다. 인욕이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분석하여 후일을 도모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저 막연히 참는 것이 아닙니다. 자꾸 참으면 병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마음이 좋아지고 품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받아들였다면 ‘인욕’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욕’의 실상을 여실히 이해하여 삶에 접목시킨다면 여여한 마음을 갖게 되시겠지요. 그 여여함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우리는 여래如來라고 합니다. 여래는 부처를 뜻하기도 하니, 더도 말고 인욕바라밀만 완전히 이해하시고 삶에 접목시키면 불성을 찾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3. 선오후행先悟後行 / 선각후행先覺後行
일반적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수행을 한다고 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그것을 일깨워주려 앞선 대사들이 부르짖던 말이 바로 ‘선오후행’입니다. 좋은 말을 나쁜 말로 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모든 불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합니다. 모두 다 옳다고 말입니다.
그 순간! 깨친 것입니다.
깨침이란 마음이 열리고 진리를 기반으로 옳고 그름을 알았다는 것이지, 온몸에서 황금빛을 발하고 육신통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러한 순간순간 작은 깨침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봐도 깨친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명을 즐기고 있는 이유 중에 으뜸가는 것은 바로 두 가지 입니다.
1. 순간 알아챘으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
2. 깨달음을 위해서 수행하여야 한다고 생각 하는 것
뭔지 알아챘기에(선오) 행동을(후행)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수행정진) 자신이 알아챈(깨달음) 것이 확고해지는 것이지(대오大悟), 행동을 해보니 깨닫게 되더라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경전 사이사이 뼈에 박히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의미를 먼저 알아채지 못하고 피를 뽑아 팔만대장경을 사경하고 10년을 잠 안자고 염불을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어 먹으려는 것과 같다고….
생활 속에 작은 깨침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실행하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확고한 믿음과 개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선인들이 이야기 합니다. 깨달음과 수행 또한 인과법을 어기지 않는다고…. 무슨 말이겠습니까, 깨치는 것을 원인으로 수행이 뒤따른다는 선오후행을 강조한 말들 아니겠습니까?


4. 다시 보는 인욕바라밀
理雖頓悟 事非頓除 이수돈오 사비돈제
이치는 단박에 깨쳤으나 버릇을 고치기는 힘들다. …
- 『선가귀감』 중에서 -
이치를 못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들을 때만 고개를 끄덕여서 문제인 것이지요. 이치를 알아챘다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평가를 하여야 하며 냉정하게 자신을 꾸짖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행동을 고쳐 나가고 반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若無忍行 萬行不成 약무인행 만행불성
만약 인욕하지 않으면 어떠한 일도 이루지 못하리라. …
 - 『선가귀감』 중에서 -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속담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채는 순간입니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자고 때린 놈은 서서 잔다’는 속담도 이해되고요. 왜 맞고도 마음
편히 발을 뻗겠습니까? 인욕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아시지요? 뭔가 하나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뿌듯한 마음. 그것이 작은 깨침의 시작인 것입니다.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아라’ 하셨느니라. …
- 『보왕삼매론』 중에서 -
그래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욕’입니다.


5.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써라
항간의 많은 속담 풀이 책에서는 다양한 풀이가 많더군요.
 개처럼 기어라, 그래야 돈 벌 수 있다.
온갖 개 짓(못된 짓)을 하지 않고는 돈 못 번다.
정상적으로는 큰 돈 못 번다.
등 다양합니다.
거의 경전의 가르침과 다를 바 없는 속담에서 이와 같이 비천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인욕바라밀을 아는 우리 불자님들은 이 속담을 조금 다르게 봐 주셨으면 합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강아지. 주인이 아무리 구박해도 끝까지 주인을 지키는 강아지. 주인이 아프면 자리를 떠나지 않는 강아지. 주인이 밥을 안주면 흙을 파먹을지언정 주인을 타박하지 않는 강아지.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 있는 강아지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일까요? 이것이 바로 무정설법無情說法이지요.
강아지처럼 돈을 번다는 것은 다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모두 수용하는 것입니다. 인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우리 사람들도 그와 같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윗사람이 그릇된 지시를 하여도 하극상 없이 묵묵히 실행하는 모습으로 상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이 아름다워지겠습니까? 겨울에는 연탄을 팔고 여름에는 얼음을 파는 가게를 어릴 적 많이 보았습니다. 그와 같은 삶일 것입니다. 그와 같이 교대로 두 개 다 팔면 되는 것이지 얼음장사가 겨울을 탓하고 연탄장사가 여름을 탓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주어진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고 마다하지 않으면 필경 복이 찾아옵니다. (물론 사람 세상에서는 돈을 번다는 의미일수도 있겠습니다.) 이 또한 인과법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인과의 법칙 속에서 자유와 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결과가 있다면 그것을 만들 원인을 행하면 되는 것이거늘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연약하고 애매한 근기根機로 말미암아 결과를 얻을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옆에 두고도 모르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것이 곧 무명無明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자연을 존중하고 진리를 바탕으로 궂은 경험을 달갑게 여긴다면 필경 복을 맞이할 것이니 그 복을 나중에 정승처럼 나누어야 한다는 의미가 바로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써라’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진정으로) 강아지처럼 돈을 버신 분이라면 누가 뭐라 하든 정승처럼 쓰실 것입니다. 그 성품에 돈으로 유세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돈을 잃을 때도 있고, 돈을 좀 만져 볼 때도 있습니다. 주변과의 조화로 돈을 잃은 것이며, 역시 주변과의 조화로 돈을 만져 본 것입니다. 하오니 낙담할 일도 없고 유세 할 일도 없는 것입니다. 인욕 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잃었다면 인욕의 방법을 살펴봐야 할 것이며, 인욕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좀 만져 보았다면 황급히 참회하여 보시바라밀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필경 누군가의 눈물과 맞바꾼 돈일 테니까요.
많은 분들께서 ‘근기根機’에 대한 질문을 보내오셔서 다음호에는 ‘근기’라는 용어의 깊은 의미를 재미있게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