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권
동국대 불교대학 전문연구원
세월호 참사는 침몰사고가 일어난 지 100여 일이 지나면서 점차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져 가는 수순을 밟고 있는 듯하다. 아직 실종자가 10명 정도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진상규명과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세월호 특별법은 표류하고 있다. 사고당시 앞 다투어 선정적으로 보도를 하던 수구 언론들이나 정부는 사고이후의 후속조치나 실질적인 대책에 대해서는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지난 5월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스승의 날 기념행사를 반납한 경희대 교수들의 선언에 이어 연세대 교수들의 자기성찰과 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시국선언이 발표됐다. 이를 시작으로 카톨릭대, 성공회대, 중앙대, 강원대, 청주대, 전남대, 대구대, 경상대, 제주대 등 대학교수들과 학생들의 시국선언이 전국 각지에서 잇따라 일어났다. 이러한 시국선언은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을 해경해체만으로 면해보려는 박대통령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대국민담화문 발표이후 더욱 연쇄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서울대 민교협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이유가 없다”는 주장아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선언문의 말미에서는 “세월호 사건의 뿌리는 지난 정권부터 계속된 무분별한 친기업 규제완화라며, 정부는 제2의 참사를 예고하는 과잉적인 친기업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두는 국정운영”을 요구했다.
사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총체적 부실과 문제들은 이러한 일회성의 시국선언들과 운동으로 척결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각계각층의 비판적이고 자성적인 목소리와 노력들이 총결집될 때, 공익보다는 사리사욕의 추구에 혈안이 된 우리사회의 만성적인 비리구조와 국가차원의 관료주의적 부패구조를 청산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국회의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세월호 국조특위)’가 기관보고 등을 통해 밝혀낸 사고원인과 정부의 상황 대처국면을 보면, 국가안전 시스템이 총체적 부실상태에 놓여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국조특위는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야 간 정쟁적인 대결구도 속에 잦은 파행을 빚는 등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정부나 국조특위에 과연 진상조사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예를 들어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을 포함해 민변 등 사회단체들이 요구해온 조사대상을 확대한 성역 없는 수사, 수사권과 공소권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이 새누리당의 반대와 수구언론들의 왜곡보도 등으로 표류하고 있다. 또한 세월호 선원과 해운업계 관계자 등 139명이 구속됐지만, 진상규명작업은 여전히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 가운데 갈수록 피로감에 빠져 드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수구 언론들은 과거 천안함 침몰사건 등 국가재난의 다른 사례들을 들먹이고, 특별법 제정에 형평성이나 보상문제 등 본질에서 벗어난 문제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예컨대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의 특례입학 등을 거론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유가족들을 두세 번 울리면서 반대를 위한 논리로 강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사회가 간과해서는 안 될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특별법 제정의 본질은 세월호 사고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자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우리사회가 그동안 국회를 통해 지켜본 ‘특검과 국정조사’만으로는 그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기에,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함으로써 유가족에 대한 보상차원을 넘어 사고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담보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과 국가재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종교인모임에서는 참사 100일을 앞두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으로 대한민국을 <안전한 사회>로 만들어주십시오”라는 염원 아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천명했다. 특히 종교인모임은 “이제 대한민국은 경제적 효율보다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더 중요시하고 행복을 중요시하는 나라가 돼야한다”며 “이제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딛고, 유가족의 소망과 국민들의 바람이 들어있는 특별법 제정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삼으라”고 촉구했다.
이에는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스님과 김대선 원불교 평양교구장, 김명혁 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 김홍진 가톨릭 쑥고개성당 주임신부, 박경조 전 대한성공회 서울대교구장, 박남수 천도교 교령, 박종화 경동교회 당회장, 인명진 갈릴리교회 담임목사 등이 참여했다.
또한 지난 7월 23일 참사 100일을 맞아 유가족 등 300여 명이 경기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국회의사당과 서울광장까지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특별법은 속수무책으로 침몰한 세월호와 다를 바 없다. 모두를 위한 진실과 안전을 기약할 수 있는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행진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는 유가족들과 시민, 사회단체회원,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그리고 문재인 등 야당의원 10여 명 등도 함께 참여했다.
이와 같이 우리사회에서 세월호 참사가 갖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사회의 자화상으로 대한민국의 현주소와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국정조사에서 보여준 진상조사의 실태와 정부의 안일한 대응자세는 우리사회가 처한 현실이 매우 심각하고 그리 만만치 않음을 방증한다.
과연 이러한 시대에 부처님이 계신다면 이 시대를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부처님이나 보살은 이 시대를 함께 아파하고, 중생들의 아픔을 자비심으로 함께 나누고 치유하려고 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막연히 함께 아파하는 것만으로 우리사회의 구조적 병폐와 부패구조가 쉽게 청산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과 재난사고들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 혹은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시장경쟁논리의 절대화와 공익보다는 사익추구의 관행에서 기인함을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관행은 불교적 차원에서 보면, 무한 욕망의 추구를 본질로 하는 중생들의 무지 혹은 어리석음에서 출발한다. 어리석음은 실존적 인간이나 우리사회를 종국에는 불행과 파멸로 인도하게 된다. 사실 개인들의 무지 혹은 어리석음에 기인하는 업(행위)들이 모여 공업共業이 되고, 결국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공업이 우리사회의 부패구조와 모순들을 잉태한 근본적인 원인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사람보다는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고 대변하는 무한 시장경쟁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불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패구조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개인이 불교적인 혜안으로 어리석음에 기인하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대승보살의 자리이타 정신과 지혜가 무엇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요컨대 진실로 우리사회가 변모하고,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을 포함한 일체중생과 내가 하나라는 동체대비의 자비정신, 즉 부처님의 지혜와 보살의 이타정신에 입각한 자비의 실천이 그 첫걸음임을 인식해야할 때이다.
‘나하나 쯤이야 어떻게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즉 자기 위주의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들이 모여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인 부조리와 부패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뼈아픈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솔선수범하는 자기의 노력에 덧붙여 자신의 가족이나 주위의 잘못과 부정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방관하기 보다는 함께 시정하려는 노력을 병행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보살의 길이요, 자비의 실천이다.
이러한 통찰은 불교적인 가치 이전에 우리사회 전체를 상생과 화합의 장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인간의 실존적 행복을 보장하는 본원적인 지혜이다. 범국민적 차원에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 아름다운 우리사회, 불국토가 실현되는 그 날까지, 모든 불자들은 자신이 보살임을 자각하고 자비의 실천으로 정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