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진정 나의 전생을 알고 싶거든 지금의 나를 면밀히 관하라.
죽음 이후의 삶을 가늠하고 싶다면 현재 나의 행위를 면밀히 살피라.”
- 파드마삼바바의 전언 중에서 -
미국 일정 마지막 날 6월 26일 인디애나폴리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1)는 미국 시장단 연례회의에 앞서 팝가수 레이디가가(30)와 20분간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이 만남이 전 세계 관련 네티즌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당시 인터뷰가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 되면서부터다.
다음 날 중국 외교부는 대변인을 통해 즉각 부정적인 입장의 성명서를 내놓았다. 반면 중국 본토에서는 인터넷 검색 사이트 ‘구글’을 비롯한 ‘페이스북’ 서비스가 활성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이라마, 레이디가가 만남에 중국네티즌들의 분노’라는 식의 언론 보도를 내 놓아 중국 정부의 언론 조작 가능성을 시사 했다.
인터뷰에서 레이디가가는 오늘의 미국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자존감 저하와 자해 그리고 살인 등으로 이어지는 집단 폭력 행위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달라이라마는, “인간이 지닌 마음의 본성이 사랑과 자애”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스스로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 어떠한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고 조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가를 신중히 고민하기”를 바랐다. 이어서 “자신이 속한 조직과 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연대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건강하고 올바른 자존감을 성립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며, “보다 낳은 미래를 만들고 싶다면 본인의 내면을 면밀히 살피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보살필 것”을 당부했다.
다음으로 친절과 용서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질의에 대해 달라이라마는 “잘못을 행한 이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연민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 연민의 위대한 힘은 마음이 항시 명료하고 침착할 때 비로소 그 명쾌함이 드러남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그 어떠한 고난에 처했더라도 희망과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선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바로 화입니다. 불도를 수행하는 이들 사이에서 분노와 같은 악업이 없고 인욕과 같은 수행이 없다고 흔히 말하지요. 본인 스스로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인욕을 해야 합니다. 마음이 겪는 해악을 안다면 어찌 일부러 화를 내고 악을 행하려 할까요.
인도 망명 초기 당시 관용차를 운전하는 직무의 소임에게 실제 있었던 일화가 떠오릅니다. 하루는 차를 정비하다가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답니다. 화가 난 운전자는 일부러 머리를 더 부딪쳤습니다. 순간 일어난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을 스스로가 초래한 것입니다. 화는 마음의 평화를 방해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가 일어나면 제어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수행을 한다고 말하는 이라면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 생겼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사의 마음 다스림을 세속팔법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인도 보드가야 근처 영취산 순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음식이 잘못되었는지 속에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빠뜨나 지역에 도착하고 나서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목에 순간 신발을 신지 않은 가난한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어서 더럽게 얼룩진 옷을 입은 병자를 보았고 순간 마음 한편이 아파왔습니다.
늙고 병들어 몸을 보살펴줄 이 없는 그 노인이 겪어야 할 고통을 관하면서부터 서서히 나 스스로가 현재 처한 고통을 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지요. 생각으로써 충분히 마음의 제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겪는 예로, 마음에 근심이 일어나면 잠을 청하기 힘들만큼 불편해집니다. 그러나 현자는 청정한 마음을 오염시키지 않습니다. 그 해로움을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가 다양한 방편을 통해 긍정의 습을 물들이고 동시에 부정적인 습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더불어 번뇌하는 대상에게 자비심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본성 그 주체에는 화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화는 번뇌로 인한 것이기에 대상에게 화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목숨을 앗아가는 무기를 일컬어 흉기라고 하지요. 그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이 악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번뇌에 기인한 것임을 바르게 사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화를 내는 대상에게 분노하지 않고 인내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혹여 나를 비난하는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을 살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나의 선근을 더욱 증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저는 불교를 정의할 때 종교의 이념을 넘어 마음의 과학이라고 말합니다. 20세기를 겪은 어르신 세대에게 불교는 겁을 주는 수단이었습니다. 사후에 지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여 착한 일을 하게 하는 조력이 되었지요. 우리의 일상은 겉으로 보기에 매우 바쁘지만 실질적으로 무엇에 이익이 되는가 여부에 신중하지 못합니다. 가치 있는 정진력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을 행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방법뿐이 없습니다.
여래의 종성, 불성, 여래장과 같은 붓다의 지위를 자성, 다시 말해 청정신이라고 칭합니다. 본래 우리가 지니고 있다고 논하지요. 존재한다고 여기는 우리의 마음과 생멸하고 혼재하는 여러 가지 의식 가운데 가장 미세한 의식인 정광명만이 붓다를 증득하는 힘으로 이어집니다. 순수 의식의 미세한 법성 그 자체가 자성 청정신이며 붓다의 몸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의식과 마음을 지닌 모든 중생은 붓다의 종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족첸 수행법에서도 이와 같은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 본래가 지니고 있는 잠재적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자량을 쌓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수많은 생의 업과 가운데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지 손으로 꼽을 수 있을까요. 지금 이생에 인간의 몸을 받았으니 얼마나 할 일이 많을까 사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의미 없는 일에 지금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도 기필코 큰 뜻을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정진하는데 힘을 기울여 주세요. 수승한 경지의 행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마치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빨다가 서서히 거친 음식을 목으로 넘길 수 있게 되듯이 수행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이거나 매사에 그 합리성을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도를 지나쳐 무리를 하게 되면 이후에 좌절감을 겪게 됩니다. 할 수 없는 일을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드시 해 내겠다는 마음으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있다면 성사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겠지요. 의미 없는 일에 귀한 인생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번뇌를 이기는 아만이 있습니다. 이 아만은 번뇌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번뇌가 허물임을 알지만 번뇌가 일어나면 실질적으로 제압하기가 어렵지요. 분노와 같은 마음의 불편한 상태가 일어날 때 이어서 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살펴야 합니다. 번뇌의 대치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화의 반대가 되는 자애, 탐심의 반대가 되는 부정관으로 현행하는 번뇌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번뇌의 뿌리를 끊지 못합니다. 때문에 공성의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명상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의 명상은 크게 두 가지, 분석적인 명상과 관상적인 명상으로 분류합니다. 마음이 많이 가라앉아 있거나 마음이 들떠 있으면 혼침 또는 도거가 일어납니다. 마음이 들뜨면 여러 가지 분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환희심을 사유하여 마음을 끌어 올리도록 해야 합니다. 초심자에게 탁월한 명상법으로 호흡 관법을 추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호흡 명상은 내면의 분별을 다스리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집중적으로 명상을 하고자 한다면 적정 처에 머물러 사사로운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더불어 물이 좋고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한 번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오랜 시간 명상을 수행한 가톨릭 신부를 만났습니다. 수행 방식에 대해 묻자, 적정한 처소에서 3년간 차와 빵만을 주식으로 삼으며 사랑과 자비를 수행했다고 답했습니다. 신부의 눈빛은 매우 남달랐습니다. 당시 서로가 형편없는 영어 수준의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내면의 복잡함이 없는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금 중동지역의 분쟁은 종교에 기인한 불행이라고 단언합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살해 하는 것은 마치 동물이 죽음을 맞아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입니다. 지구상 70억 인구의 행복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그 어떠한 작은 고통조차 받지 않기를 원하는 것에는 한 사람의 예외가 없습니다.
번뇌를 바로 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번뇌를 살피고 분석하여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일으켜야 합니다. 고착화된 집착과 이치에 맞지 않는 분별의 뿌리를 무명이라고 합니다. 무명을 끊기 위해 붓다와 보살에게 번뇌를 없애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옳은 방법의 기도가 아닙니다.
붓다가 우리의 번뇌를 대신 닦아주신다고 믿습니까.
나 스스로가 지은 업은 신성한 갠지스 강의 물로도 씻어낼 수가 없습니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가연숙 (보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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