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법문 내용과 함께 편집된 사진들은
북인도 히말라야 나닥크에서 대청보사와
심장재단, 종합병원의 활동하는
모습들입니다. 히말라야 설산을 넘고
넘으며(5,600m) 마날리에 와서 설산사에
며칠 머물렀습니다. 이곳은 겨울이면
영하 40~45도까지 내려갑니다.
비구니스님들이 50여 명 살고 있는
사찰이 폭설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홍법문화재단에서 심장재단과 함께
비구니스님 사찰에 복구비를 지원하기로
한 자료 사진들입니다.
정우 합장
우리는 저 세상으로부터 이 세상에 왔습니다. 저 세상으로부터 와서 머물다가 인연因緣이 다 하면 다시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 불자라면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대해서 두려워할 일은 아닙니다.
사찰마다 돌아가신 영가靈駕를 위해 위패를 모시고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정월초하루날 합동제사를 모시기도 하고 우란분재盂蘭盆齋에 49일간 지장기도地藏祈禱를 올리기도 합니다.
인연이 깊은 영가와 유주무주有住無住 고혼孤魂 영가의 천도薦度를 모시는 기도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이라고 하였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나 살아가야 할지 모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신의信義입니다. 그 믿음은 약속約束입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깊은 인연을 생각하면, 서로가 기도 정진하며 잘살아 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은 「텅 빈 충만」에서 ‘10년 동안 사셨던 토굴을 떠나 한 달 반 쯤 다른 곳에 계시다 돌아왔더니 아주 낯설게 느껴지더라.’ 하셨습니다.
“암자를 비워둔 채 산을 떠나 있다가 꼭 한 달 반 만에 돌아왔다. 10여 년 넘게 몸담아 살아온 집인데도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넋이 되어 예전에 살던 집을 돌아보러 온
것 같았다.가끔은 자기가 살던 집을 떠나볼 일이다.
자신의 삶을 마치고 떠나간 후의 그 빈자리가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예행연습을 통해서 너저분한 일상의 집착에서 얼마쯤은 벗어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을 마치고 떠나간 후, 그 빈자리는 우리도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행이라는 예행연습도 일상의 집착으로부터 얼마쯤은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실감할 수 있습니다. 내려놓으면 편안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목이 마르면 물이 담긴 컵을 들고 입을 댔습니다. 목을 축였습니다. 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잔을 내려놓으면 됩니다. 그래야 컵을 잡았던 손이 자유로워집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붙들고 있다가 내가 도리어 붙들려 있습니다. 장애인의 방하착放下着이 그 예라 하겠습니다.
한 스님이 산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비탈길에서 “아이고 나 죽네, 나 좀 살려주세요!” 하는 절박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스님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한 노인이 나무뿌리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서 도와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스님은 매달려 있는 장님의 발밑을 보니 발끝과 땅바닥의 거리는 겨우 한 뼘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영감님 손 놓으세요. 손 놓으세요. 지금 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놓으세요.” 그 노인은 미끄러져온 비탈길에서 손을 놓으면 죽거나 다칠 것을 걱정하며 손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힘에 부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노인의 발바닥이 한 뼘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눈먼 노인은 자탄의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손 놓을 걸, 괜히 고생 했네.” 하더랍니다.
누군가 가까이 가서 “손을 놔도 된다고, 거기가 바로 땅바닥이라고” 말해주었더라면…… 우리네 인생도 어찌 보면 장애인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생명줄로 알고 움켜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끝없는 욕망에 집착해서 놓아버리면 곧 죽을 것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볼 일입니다. 눈뜬 사람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깨친 사람이 보면 별거 아닌 일입니다. 인생을 살아본 이가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그냥 놓으면 될 일입니다. 편안할 일입니다. 자유로워질 일입니다. 그런데 놓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움켜쥐고 있습니다.
30대초 청년시절 혼자서 인도 네팔,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 순례 길에서 만났던 스님이 비상식량으로 먹으라며 주고 간 미숫가루를 열차 안에서 물도 없이 입에 털어 넣고
먹으려다가 숨이 막혀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숨이 턱~ 막히는 순간 10초, 20초의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한국에서 떠나오기 전, 순례길에 쓰라고 스님들이 주셨던 여행 경비는 누가 가져갈 것인가, 통도사 방에 있는 물건들은 누가 정리해줄 것인가, 절에 와서 입은 시주의 은혜는 어찌 갚을 것인가…
그 짧은 순간에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생각들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죽음의 목전에서 그 결심은 지금도 이어지는 인연이 되어 다가오고 있습니다.
30대 청년이 가지게 되었던 염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늙고 병들고 죽으면서도 그 욕심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대만 불광산사의 성운대사님은 “인생人生은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아니라 노병사생老病死生”이라 하셨습니다. 불교적 견해는, 세상을 떠나도 없어지지 않는 것, 태어나 순환하기 때문에 노병사생老病死生이라고 하였습니다.
태어나 늙고 병들기 마련이며 병이 들면 죽게 되고,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은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자비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엘리트는 많아도 리더는 적다는 말이 있습니다. 엘리트는 자신을 성공시키는 사람이지만, 리더는 다른 사람을 성공시키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일관계를 보면서 대한민국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모두가 엘리트인 집단이 아니라 스스로 리더가 되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윤활유가 되고, 비타민이 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 불자들이 앞장서서 그 일에 노력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