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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지혜, 명상의 즐거움

지금 여기 스스로 사유하는 자 누구인가
사유란 순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훈련으로 연마되는 것
모두가 바라는 희망이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사유의 지혜로써 제거된 번뇌의 자리에서 피어난다.
-14대 달라이라마 다람살라 법문 중에서-


인간의 역사에서 오로지 나를 위하는 마음은 마치 인간의 본성처럼 강하게 사유되고 존중되어 왔습니다. 종교적으로 불교에서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무게를 가늠케 하는 자량을 증장시키는 것을 수행의 단계를 상향 시키는 척도로 여깁니다. 때문에 나와 마주한 대상의 본성을 바로 보는 지혜를 강조합니다. 불교를 수행하는 이라면 이기심의 허물을 스스로가 항시 살피고 이타심으로 전환시켜 몸소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듭된 사유를 통해 세간의 모순을 볼 수 있다면 그러한 이를 일컬어 참다운 지혜를 행하는 이, 보살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남의 탓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는 스스로 상황의 진위와 정반의 진위 판단을 얼마나 면밀히 하면서 살고 있느냐는 물음과 같습니다. 원망은 절대 타인의 영향이 되어서는 옳지 않습니다. 본인이 처한 상황과 물음에 스스로가 얼마나 의문을 들고 주체적인 사유를 하고 있는가를 깨어있음의 척도로 삼아야 합니다.
궁극의 변화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꾸준한 정진력으로만 가능합니다. 더욱이 번뇌는 집착과 성냄 그리고 무지의 복합적인 덩어리입니다. 이는 공성의 지혜로만 완전히 제거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은 나만을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때문에 스스로 지닌 이기심의 허물을 지속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하는 마음의 근거를 정작 찾으려 하면 그 어떤 기반도 없습니다.
수행을 하는 보살은 선행이 복전과 같음을 잘 압니다. 이 생에 얼마나 연연해하고 있는가. 이는 죽음을 맞이할 때의 고통과 비례합니다. 신·구·의가 붓다와 가까워지도록 조력하는 분이 선지식입니다. 선지식이란 붓다의 가르침을 온전히 가지고 수행하는 이, 수행을 통해 마음을 챙기는 이, 자비와 연민으로 제자에게 법을 펼침에 인색하지 않은 이, 공성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하고 있는 이입니다.
붓다는 바른 그대로의 이치를 직접 실현 하신 분입니다. 붓다는 실상의 옳고 그름을 몸소 보이셨고 이를 법으로 남기셨습니다. 법은 궁극적인 의지처이며 승보는 법우로서의 도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붓다는 당신에게 가피를 손에 직접 쥐어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오로지 법에 의지한 이 스스로가 깨달아 실천해야 할 문제입니다.


일상에서 복덕이 아닌 것을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가.
가장 먼저 선이 아닌 업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아집을 제거하도록 노력하고 잘못된 견해를 제거하여 이기심을 근절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찰나 순간 변화하는 마음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변화하는 마음을 챙겨 보십시오. 비로소 의식이 머무는 바가 그 어디에도 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소중한 내가 정작 지향하는 행복의 척도는 무엇입니까. 무명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경계가 행복입니다.
반면 당신은 얼마나 타인의 고통과 안락을 살펴왔습니까. 세상의 모든 괴로움은 탐·진·치에 의해서 발생되어 왔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각각의 사람들이 사랑과 연민을 헤아리고 서로를 보듬는다면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문제는 궁극적으로 종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더 이상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지 맙시다. 더불어 상대의 안락을 발원해 봅시다. 나의 안락과 타인의 고통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보살의 실천입니다.
우리의 주변에 화를 자주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생을 위함이 아닌 오로지 이생을 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보살의 길에 들어섰다면 절대 대상에게 보복을 하겠다거나 증오심의 감정을 일으키지 말고 항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나를 비방하고 주변에서 나를 능욕할 지라도 그에게 공경심을 내는 이가 바로 보살입니다. 윤회하는 이에게 부귀영화는 덧없습니다. 교만은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내 마음의 성냄을 자비로써 다스림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집착이 생기는 대상이 떠오를 때마다 그 감정을 잘 다스려 끊을 수 있도록 하십시오. 객관의 대상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바깥 대상은 모두 상호 의존할 뿐임을 헤아리는 것이 중관의 수행법입니다. 아름다운 이를 만나면 여름날의 무지개와 같이 곱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환영으로 봐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보살의 수행입니다.



지관의 명상법으로 나의 허물을 살피십시오. 그렇게 해야만 법인 것과 법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번뇌로 인해 삶 속에서 타인의 허물을 지적하지 마십시오. 그 순간 나의 허물이 됩니다.
재물의 탐착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와 시주자에게 연연해하지 마십시오. 더불어 타인이 불쾌할 수 있는 거친 말을 끊도록 항시 유념해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 자세입니다. 수행자의 마음이 번뇌에 흔들리지 않도록 항시 깨어 있으십시오. 번뇌의 습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임을 기억하십시오. 정진을 통해 지어진 모든 선업이 보살의 수행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