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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茶香이 법향法香 아니겠는가

이서연
시인


일상조차 푸름이 된다면 여름은 푸름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빛의 눈빛이 뜨거울수록 가장 격렬한 기운이 되는 생명의 계절이 아닐까 싶다.
인생도 변화에 반복의 질서가 숨어 있듯이 자연의 순환도 반복 속에 변화의 이치가 있다. 찬란한 듯 소박하고 가벼운 듯 찬란한 그 순환의 이치는 사계절이라는 품종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계절의 한 축에서 삶을 이해하며, 감당하며 순환이치에서 빚어지는 저 빛살 조각 하나도 소중하게 여기는 동안, 뜻하지 않게 그 순수한 마음 자체가 어리석음의 씨앗이 되어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다.
태풍이 어찌 자연의 소용돌이기만 하겠는가. 마음을 휘젓고 가는 소용돌이도 그 이치에서 볼 것이다. 사실 인간이 알게 모르게 짓는 어리석음의 죄는 계산적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지 못한 데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맑으면 다 맑을 것이고, 혹은 내가 푸르다 여기면 푸르기만 할 것이란 착각으로 얻는 상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일체유심조, 마음으로 지어내는 게 맞다. 그러므로 내가 느끼는 맑음을, 나를 투영한 푸름을 그 누군가가 망쳐놓는다고 해서 흔들리고 휩쓸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맑다, 푸르다는 분별자체에 내가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순수한 마음으로 지은 상처가 착각의 그물이 되어 어리석은 업의 독이 될 수 있으므로. 여름잠을 쫓으러 잠시 들린 숲이 있다. 강화도는 원시의 흔적부터 혼란의 역사가 담긴 흔적들로 그 어느 곳도 소홀하게 보고 넘길 수 없는 곳이다. 그렇더라도 조금은 가볍게 무더운 여름의 무게를 느끼고 싶어 고려산에서
산책했다. 하지만 역시, 고려산도 여름빛에 미동하지 않는 진한 푸름의 무게감을 갖고 있다. 그 발 닿는 곳에 자리한 백련사는 고요를 감당할 가슴만 들어오라는 듯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다.


아파서 찾은 불력佛力으로 새긴 대장경
잠시 머물렀던 고려산 도량
존재의 하중을 감당했던 자리 자리에
느티나무 혼불이 굵어지고 있다


그림자조차 깨끗한 비구니 수행처 아니랄까
푸름마저 참선 든 듯 고요
연습 없는 단 하나의 인생에 걸려 있는 ‘나’
뜻 없이 졸 수 없어 고요에 묻혀 본다
          -백련사 느티나무 앞에서-


고구려 장수왕 4년(416) 천축조사가 고려산에서 하얀 연꽃이 떨어진 곳에 지은 절이라 하여 백련사라고 하는데 수백 년 느티나무들이 곳곳에서 혼불처럼 푸름을 피우고 있었다.
사연이 있어 팔만대장경이 잠시 이 절에 머문 적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서 법은 고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지나가는 발자취에도 있는 것이니, 그 어느 곳에서 어느 날 어느 마음으로 잠시 머무는 것조차 인연법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 누구와의 인연에 상처받았다 해도, 그 가운데 인연법 진리를 깨달았다면 깊이 감사할 일이다 여기며 혹여 내 발소리마저 수행터에 방해될까 도량을 대충 돌았다. 크지 않은데 깊이 있는 기운이 느껴지는 건 이 도량을 중창불사한 선사들의 법력 덕인가보다. 역사의 깊이에 단련된 수행자들은 이 정도의 기운에 무엇이 흔들리겠는가. 오로지 완성 없는 인생 모듬모듬에 상처로 흔들리는 내 모습만 산책길에서 초라하구나 싶었다.
백련사 찻집이 꽤 분위기 있었다는 사진작가인 문우다향茶香이 법향法香 아니겠는가의 귀뜸이 있었던 터라 마치 오래전부터 예약된 약속장소였던 것처럼 느껴져 ‘전통찻집 차향따라’ 안으로 들어가 봤다.
깔끔한 분위기는 차를 주는 분의 미소에서 결정된다. 백련사뿐 아니라 고려산을 찾는 객들의 휴식을 위해 마련된 찻집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건 역시 찻집 보살. 자주 들른다는 단골손님들은 마치 자기 집에 보관한 음료를 주문하듯 감주스를 주문했다. 얼린 감을 갈아 놓으니 영락없이 노을빛 주스다. 그분들께 감주스를 내놓으시던 보살이 두리번거리는 내게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쉬어 가도 된다고 했다. 연꽃은 이런 말 한 마디에 핀다.
곳곳에서 연꽃 축제가 열리건만 정작 연꽃과 인연 있는 백련사엔 연꽃이 없다. 그런데 이 다정한 말 한 마디에서 가장 향기로운 연꽃을 발견하게 된다. 우연일지라도, 그냥 순간일지라도 처음 만난 인연이든 지나는 바람 같은 인연일지라도 말을 건넬 때는 연꽃 향 같은 말을 해야 한다. 그게 보이지 않아도 향기를 뿜어내는 연꽃이요, 부처님 법이다.
이런 인연이 어찌 자연의 이치에 없는 인연이겠는가. 잠시, 지난 날 지나가는 어느 바람에게 그렇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솔차를 주문했다.


푸른 바람을 뽑아 담근 솔차는
파도로 씻지 못한 어리석음 풀 때


깊어가는 노을로 익은 감차는
엉킨 채 녹이지 못한 미련을 풀 때


햇살의 미소로 열린 오미자는
꿈속의 사랑을 사랑한 착각을 풀 때


마주할 누군가가 있다면 좋고
없어서 외로움이 더 아름다운 날


여전히 꿈으로 드나드는 님
잔뜩 취할만큼 차를 마신다


심즉불心卽佛, 즉 마음이 부처이듯 다즉법茶卽法, 다향茶香이 법향法香 아니겠는가.
고려산이 진달래 축제로 불타듯 휘청일 때도, 사람 숨소리조차 얼어붙은 날 산사가 눈 덮인 오지가 될 때도 느티나무는 백련사의 여여함을 지켰을 것이다. 그게 그냥 사는 이치니라 하듯이. 그래서 혹시 누군가가 부처님을 대신해 인연 얽힌 법을 풀어서 말을 하라고 하면 “그대가 나라면 내가 그대이니 더해서 할 말이 따로 없다.”고 이심전심일 연화법문을 할 것입니다.
테라스에 놓은 내게 굳이 찾아온 바람 한 줌이 ‘어쩌겠는가 그날 얽힌 것이 인연이었다면 지금 놓는 것도 인연이다’라고 한다.
그래, 이렇게 차 한 잔에 마음만 풀어내면 삼처전심三處傳心하신 부처님의 뜻 저절로 헤아려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