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지난 7월호에서 불교 내에 등장하는 각 종파들의 다양한 ‘주장(宗)과 목표(趣)’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했다. 이런 논의를 ‘종취론宗趣論’이라 하는데, 이때의 ‘종宗’이란 궁극적 주장이라는 뜻이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교의 궁극적 주장은 무엇이고, 목표는 무엇일까요? 모든 것이 ‘인연’임을 주장하여 ‘해탈’을 성취하자는 것이 불교의 목표이지요. 결정론도, 우연론도 아닌, 인연에 의해서 결과가 생긴다는 이론, 소위 ‘인연설’이다. 브라만이나 어떤 신이 원인이 되어 우리의 삶이 결정된다면 이는 잘못된 원인 대기로서 ‘사인설邪因說의 오류’에 빠지고, 이유 없이 저절로 그렇다고 이유 대기를 하면 ‘무인설無因說의 오류’에 빠진다. 불교는 ‘인연설因緣說’을 주장한다.
세상 사람들이 ‘무인설의 오류’에 빠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사인설의 오류’는 종류도 다양하고 사례도 많다. 죽은 조상이 어찌해서, 신이 어찌해서, 사주팔자가 어찌해서. 세상 정치도 그렇다. 결과는 있는데, 그 결과를 초래한 가깝고도 강력한 원인대기를 잘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정 지역 부동산 값이 오른 결과에 대한 원인 진단, 실업자가 늘어난 결과에 대한 원인 진단, 경기가 더러운 결과에 대한 원인 진단, 세상이 아픈 결과에 대한 원인 진단. 인과 관계를 잘 못 짚고 손을 대어서 가져오는 손실은 막대하다.
2.
불교는 ‘인간의 본성(human nature)’ 내지는 자아(自我 ego, self, the conscious)를 논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인연설因緣說’을 주장하는데, 이 경우 ‘인연설’은 크게 네 종류의 문맥에서 사용된다. 첫째는 인연이기 때문에 생·노·병·사의 ‘윤회’의 결과가 있다. 둘째는 인연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공空’하다. 셋째는 인연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假’이다. 넷째는 인연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중中’이다. 그런데 석가 부처님이 입멸하신 뒤 각 제자들은 인연설의 해석과 적용에 차이를 드러냈다. 그 차이를 화엄종에서는 모두 ‘10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① ‘나’와 ‘나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이 실재한다.
② ‘나’는 인연법에 따르는 무상한 존재이지만 ‘나를 이루고 있는 소요들’은 ‘경우에 따라’ 실재하기도 한다.
③ ‘나’는 인연법에 따르는 무상한 존재이지만 ‘나를 이루고 있는 소요들’은 시간적으로 ‘현재’에만은 실재한다.
④ ‘나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 중에서 색·수·상·행의 5온蘊은 ‘현재’의 순간에는 실재하지만, 12처處와 18계界는 ‘현재’의 순간에는 인연으로 생긴 무상한 존재이다.
⑤ 언어나 사유로 표상된 세계는 인연법에 따르는 무상한 존재이지만, 그것들로 표상되기 이전의 상태는 영원히 실재한다.
⑥ 모든 존재는 단지 이름만 있지 실재하지 않는다.
⑦ 모든 존재들은 인연에 의한 것으로 무상하지만, 의식의 활동성만은 실재한다.
⑧ 일체의 모든 존재는 물론, 의식의 활동성도 무상하다.
⑨ 하나의 ‘진여’가 다양한 ‘번뇌’와 인연 관계를 맺으면서 ‘진광眞空-묘유妙有’로 숨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한다.
⑩ 다양한 번뇌 현상(事)들이 서로 무모순적으로 연기하기도 하며, 중심이 원인이 되어 주변이 생기는 동시에 주변이 원인이 되어 중심이 생기기도 하며, 또 그것들이 ‘시간-공간’ 속에서 일체의 현상끼리 서로 중첩적이며 다중으로 한정 없이 인연생기因緣生起한다.
3.
전문으로 하지 않는 출가 내지 재가 불자들에게는 매우 복잡한 이론이다. 그러나 실제로 각 경전 속에 등장하는 ‘연기’ 또는 ‘인연’에 관한 ‘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도 명료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위에 나열한 ‘인연’에 대한 해석 열 가지 중에, ①은 불교의 해석이 아니다. 불교 내부에 잠입된 외도의 설로, 설사 불경 속에 들어있더라도 골라내고 들어야 한다. 밥 짓는 이가 실수로 ‘돌’이나 ‘뉘’를 가려내지 못했다면, 먹는 사람이 골라내야 하듯이 말이다. ②에서부터 ⑥까지는 부파불교시대의 여러 부파에서 내놓은 ‘인연’에 대한 해석이고, ⑦부터 ⑩까지는 대승의 논사들이 제시한 ‘인연’에 대한 해석이다.
부파 중에서 ②를 설명하면서 위에서 ‘경우에 따라’라고 필자는 한정적 표현을 했는데, 번거롭기 때문에 각 경우는 생략하기로 하고 주장하는 부파들의 이름만 소개하면, 설일체유부와 설산부와 다문부와 화지부가 여기에 해당하며, ③은 대중부의 해석이며, ④는 설가부의 해석이며, ⑤는 설출세부의 해석이며, ⑥은 일설부의 해석이다.
대승 중에서 ⑦은 ‘법상종法相宗’ 즉 유가 유식부의 해석이고, ⑧은 ‘공종空宗’ 즉 반야 중관부의 해석이고, ⑨는 ‘여래장如來藏’ 계통 논사들의 해석이고, ⑩은 화엄 즉 ‘법성종法性宗’ 논사들의 해석이다.
4.
독자 여러분들께서 이미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고생한 김에, 인간의 본질 내지는 자아를 설명하는 불교 내의 ‘인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전문 용어로 외워두시기 바란다. 뒤로 갈수록 석가 부처님이 설하신 ‘인연’설의 의미를 더 충실하게 해석한 것이다.
①법아구유종法我俱有宗, ②법유아무종法有我無宗, ③법무거래종法無去來宗, ④현통가실종現通假實宗, ⑤속망진실종俗妄眞實宗, ⑥제법단명종諸法但名宗, ⑦삼성공유종三性空有宗, ⑧진공절상종眞空絶相宗, ⑨공유무애종空有無.宗, ⑩원융구덕종圓融具德宗.
연연에 과한 해석을 둘러싼 불교 각 파의 ‘주장(宗)’을 화엄에서는 위와 같이 10종류로 종합한다. 그러면 이것과 화엄의 ‘5교敎’와는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 지난 5월호에서 다룬 내용을 상기해보자. 5교는 ‘인천교’, ‘소승교’, ‘대승법상교’, ‘대승파상교’, ‘일승현성교’이다.
이들 관계를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의 ‘종宗’이 여러 ‘교敎’를 수용하기도 하고, 역으로 하나의 ‘교’가 여러 ‘종’을 수용하기도 한다. 한편 ‘종宗’은 ‘사람들의 마음(人心)’을 기준으로 나눈 것으로 중생들이 으뜸으로 삼는(宗) 대상이 달라 열 종류로 나누어진 것이고, ‘교敎’는 법을 설하시는 ‘부처님의 뜻(佛意)’을 기준으로 나눈 것으로 권교權敎와 실교實敎의 차이가 있다. 문맥을 잘 파악해서 경전과 논서를 읽어야 한다.
5.
이상은 ‘인연’의 참뜻을 해석해 온 불교 교리의 긴 역사 전체를 시야에 둔 종합적 분석이다. 그러면 좁혀서 『화엄경』에 국한해서 개별적 분석을 해보자. 결론을 먼저 말하면 『화엄경』은 ‘법계·연기·이실·인과·부사의法界·緣起·理實·因果·不思議’를 ‘주장(宗)’한다. 이것은 청량 징관 스님의 설인데, 그 시원은 현수 법장 스님이다. 청량 국사는 네 측면에서 이것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화엄경』에서는 ‘법계’에 관한 이론을 따로 따로 열어서 ‘인과’에 관한 이론을 완성하고 있다. 화엄의 ‘5주五周 인과’인데, 즉 ‘소신인과所信因果’, ‘차별인과差別因果’, ‘평등인과平等因果’, ‘성행인과成行因果’, ‘증입인과證入因果’가 그것이다.
둘째는 『화엄경』에서는 ‘인과’ 이론을 회통하고 완전하게 하여 ‘법계’와 동등하게 하고 있다. ‘교-의敎-義’, ‘인-법人-法’, ‘이-사理-事’, ‘경-지境-智’, ‘인-과因-果’, 이것을 ‘열 가지 사안에 관한 다섯 쌍의 상대 개념’이라는 의미로 화엄에서는 ‘10사事 5대對’라고 하는데, 이 다섯의 상대되는 짝을 각각 상호 ‘인과’ 관계로 설명하여 마침내는 ‘법계’와 등치시킨다.
셋째는 『화엄경』에서는 ‘법계’와 ‘인과’에 관한 이론을 나누어서 드러내고 있는데, 열 가지 의미를 다섯 쌍으로 묶어서 설명한 ‘10의義 5대對’ 이론이다. 다섯 쌍이란 ‘대상(境)’, ‘마음(心)’, ‘수행(行)’, ‘과정상의 지위(位)’, ‘궁극적 결과(果)’이다. 이 다섯 쌍에 각각을 ‘인-과’를 짝지어 10 범주로 ‘법계’를 총괄하고 있다
5대對를 ‘인-과’에 배속시켜보자. 첫째 ‘대상(境)’을 보자. 번뇌 속에 오염된 법계는 우리들이 믿어야 할 대상(所信境)이고, 번뇌에서 벗어난 청정한 법계는 우리들이 체험해야 할 결과로서의 대상(所證境)이다. 둘째 ‘마음(心)’을 보자. 보리심菩提心은 보현행의 근본 원인이 되고, 신심信心·비심悲心·지심智心 등은 세 마음은 보현행을 따라서 일어난 결과이다. 셋째  ‘수행(行)’을 보자. 각각 하나씩 닦아가는 차별적인 수행(行)이 있는가하면, 하나의 수행이 일체의 수행이 되는 보현행도 있다. 넷째 ‘과정상의 지위(位)’를 보자. 수행에 대비하여 하나하나 결과를 맺는 항포위行布位가 있는가 하면, 하나를 수행하면 일체를 증득하는 원융위圓融位도 있다. 다섯째 ‘궁극적 결과(果)’를 보자. 수행을 통해서 ‘점차로 깨달음을 키워가는(修生)’ 경우도 있고, 반면 수행을 통해서 ‘본래의 깨달음을 드러내는(修顯)’ 경우도 있다.
넷째는 『화엄경』에서는 ‘법계’에 관한 이론과 ‘인과’에 관한 이론을, 때로는 이 둘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법계’니 ‘인과’니 하는 관념 자체를 아예 지워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를 열 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법계’니 ‘인과’니 하는 발상도 따지고 보면 결국은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한 ‘도구’이고 ‘방편’이고 ‘수단’이라는 것이다. 언어와 사유에는 그 속에 관통하는 논리 내지는 문법이 있게 마련인데, 이것을 도구로 사용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과 관계 맺는다. 그런데 목적을 성취하고 나서는 과정에서 사용한 도구를 버리고, 다시 구도를 더 잘 만들어서 목적 성취를 제대로 하고, 이러기를 반복하여 ‘도구’와 ‘목적’에 대한 상호 반성적이며 변증적인 노력을 해가는 것이다. ‘종
宗’은 ‘도구’이고, ‘취趣’는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