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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드러나는 선한 영향력이 수행이다

달라이라마, 라다크 쉬와첼 방문 특별법회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7월의 라다크는 과거 융성했던 불교 왕국으로 그 시간을 되돌린다. 4만5천여 명에 이르는 불교도와 관계자들이 법석으로 마련된 쉬와첼로 운집했다. 이번 법회를 주최한 설판 제자, 라다크 불교협회 LBA와 라다크 곤파협회 LGA는 법석에 오른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인류의 스승이신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8세)의 증명으로 만다라 공양을 올렸다. 종교 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저는 석가모니 붓다께서 우리 중생을 일깨운 가르침 가운데 ‘37단계의 보리도분법’을 이번 법회의 주제로 삼고자 합니다. 이곳 신성한 불법의 땅에서 우리는 다양한 저마다의 서원을 마음에 품고 모였습니다. 비단 불교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는 전통적으로 서로에게 친절하고 도움이 되도록 하는 현명한 가르침을 제안하며 저 또한 그 방향을 존중하기에 이 자리에 모인 다양한 여러분이 희망하는 바를 존중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서로 분쟁을 일으키지만, 종교 이름으로 그 성스러움 아래에서 싸울 때는 역사적으로 인간은 스스로의 불행을 초래해 왔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종교 간 조화를 실현하기 위해 뜻을 함께하는 리더들과 앞장서 노력해 왔습니다.
여기 라다크에서는 대다수가 불교도라고 미루어 짐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슬림과 기독교도 및 인도의 비불교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울려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전통을 설명하는 다양한 철학적 문화적 생활 방식을 갖고 있겠지만, 결국은 모든 생명 지닌 이들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상생하는 저마다의 다양한 삶의 패턴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예를 들어보면, 이곳 라다크에서 기독교도는 교육과 보건의 분야에서 적극적인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의료적인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앞장서 실천해 왔습니다. 오늘 법석의 주제인 톡메상뽀의 37보리도 수행법은 선한 영향력의 근본 자리 바로 보리심을 발현하는 것과 연관이 깊습니다.
우리가 수승한 가르침을 취하고자 할 때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단순히 기도하는 것으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직접 실천하고자 하는 바를 법으로 여기고 그 방법적 합리성을 논리적으로 헤아려야 합니다. 진언과 같이 일상에서는 해석이 어려운 신묘한 언어들을 단순히 입으로 복창하는 것은 수행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을 매일의 행동으로 적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르침의 진정한 본래 의도와 방향에 주의를 기울여 스스로 공부하고 이해한 바를 삶 속에서 오롯이 수행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현명하게 단계적으로 밟아야 하는가를 알기 위해 오늘과 같은 법석에 동참한 것입니다.
게쉬 톡메 상뽀께서는, 불교적 실천의 많은 측면 중에서 주로 자비심, 이타적인 깨달음의 마음을 발전시키는 수행론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저는 이 가르침을 꾸눌라마 린포체에게 사사하였습니다. 논서의 골자는 자비심과 보살도의 길을 다루는 매우 유익한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자비심 명상을 하는 저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고 그 방법을 내면의 힘으로 키우고자 그 자량을 쌓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이보다 더 수승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이 수행법은 나에게 우주의 끝까지 혹은 그 너머까지 모든 생명 지닌 바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근원적인 용기를 줍니다. 일체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가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강해지면 절로 기쁜 환희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는 나의 신체 건강에 기여하며 마음의 평안을 주고 일상에서 편안한 잠을 취하게 해줍니다.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평화를 지향합니다. 과거 20세기 인간의 역사는 큰 폭력의 시기였습니다. 많은 무기가 사용되어 인류의 죽음과 파괴를 초래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단순히 전쟁을 종식하고자 하는 방안만을 고심해선 안 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일방적인 우리 자신만의 승리와 다른 이들의 패배를 목표로 하는 한,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부디 이 자리에서 사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따르고 있더라도 분쟁하고 분노하는 방식의 해결법은 핑계일 뿐입니다. 하나 된 인류의 존엄성과 진정한 평화를 확립하고자 결의를 이 자리에서 보리심으로 발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