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텃밭농부

농사는 살리는 일이다. 식탁에 오르는 밥과 반찬, 빵, 고기, 식사 후에 즐기는 과일, 약이 되는 식물을 생산해내니 먹여 살리는 일임에 분명하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지만 몸을 가진 존재이므로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생각하고, 번식할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농업을 일러 생명을 받드는 일이라고 한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세상의 가장 근본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인간의, 인간중심적 생각이다.
밭에서 사는 동식물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인간이 살기 위해 짓는 농사로 인해 수많은 동식물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들판과 야산이 논밭으로 바뀌면서 거기에 살았던 동식물은 자기의 땅에서 쫓겨난다. 아메리카 대륙의 북에서 남에 이르는 곳에 살았던 선주민이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에 의해 쫓겨난 것과 똑같은 일을 당했고, 당하고 있는 중이다. 호주와 뉴질랜드, 아프리카에서도 선주민은 자기의 땅에서 쫓겨났다. 이런 참혹한 사태를 제국주의자들은 ‘개척’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불렀으며, 이같은 행위를 위대한 역사로 기록한다. 농사를 짓는 것을 그곳에 살다 쫓겨난 동식물의 처지에서 본다면, 쫓겨남이 아닐까.
그러나 생태의 시각에서 본다면,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의 생태적 특성에 따른 행위이다. 인간이 생명의 유지와 번식을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어떤 존재이든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태계에서 죽임과 살림은 맞물려 있다. 농사는 죽이고 살리는 생태계의 한 활동이다.

텃밭이 여물어간다
8월의 텃밭은 왕성한 생명활동을 펼치는 공간이다. 봄에 심었던 작물이 한창 여물어간다. 토마토, 옥수수, 참외, 가지, 오이, 들깨, 고추, 강낭콩은 먹을 것을 내주고 있다. 밥상이 풍성해진다. 쥐눈이콩과 작두콩, 수세미, 참깨는 꽃을 피우고 있다. 더덕과 생강, 땅콩은 흙 속에서 몸통을 불리는 중이다.
무등산 수박도 자라고 있다. 모종 두 개를 얻었는데, 한 개는 가지가 잘려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남은 한 개의 모종에서 세 줄기를 키우고 있다. 7월 초순에 암꽃이 피었다. 수박은 암꽃이 수정한 후 45일이 지나야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달 중순이 되면 맛을 볼 수 있다. 벌써부터 입맛이 다신다. 씨앗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기대했지만. 계속 내리는 비에 그만 낙과하고 말았다.
옥수수는 6월초부터 일주일 간격으로 네 번을 심었다. 일찍 심은 것은 한 차례 수확의 기쁨을 얻었다. 간격을 두고 심는 것은 늦게까지 순차적으로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마토도 곁순을 잘라 심으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하면 9월 중순까지 수확이 가능하다. 고사리는 작황이 좋지 않다. 지난 4월에 뿌리 10kg을 사서 심었다. 뿌리의 마디마다 순이 올라온다고 했는데, 올라온 순이 듬성듬성하다. 옮겨 심은 내 텃밭에서 몸살을 겪나보다. 내년이 되어야 고사리 꺾는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벌레들도 한창이다. 노린재는 콩을 좋아한다. 꼬투리에 침을 꽂고 즙을 빨아먹는다. 노린재의 공격을 받은 콩은 여물지 못하거나 생채기를 남긴다. 무당벌레는 가지를 유독 좋아한다. 무당벌레가 지나간 가지의 잎은 구멍이 숭숭 뚫린다. 열매의 껍질은 나무의 거죽처럼 거칠어진다. 담배나방의 애벌레는 3cm 정도의 크기인데, 잎과 가지에 길게 달라붙어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고추 열매에 구멍을 뚫고 들어간다. 어떤 놈은 가지를 공격한다. 가뭄이 들지 않았는데도 고추 가지가 시들하다면 이는 영락없이 담배나방의 소행이다.
온갖 꽃이 피었으니 벌이 윙윙거리고 나비가 펄럭인다. 거미는 멋진 줄을 쳐놓고 대기 중이다. 내 발길에 개구리가 놀라서 펄쩍 뛰는데, 나도 깜짝 놀란다. 날벌레를 먹는 개구리는 뱀을 불러온다. 내 텃밭에는 뱀도 있다. 촘촘한 먹이 사슬이 형성된 것이다. 화학에 기초한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으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두더지는 온밭을 헤집고 다닌다. 지렁이가 있으니 두더지가 있는 것이다. 두더지는 지렁이와 굼벵이를 먹이로 살아간다. 밭에 두더지가 있다는 것은 화학 비료와 농약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두더지는 작물을 직접 해치지 않을 뿐더러 때로는 물 빠짐을 좋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밭에 이로운 것은 아니다. 가뭄이 타는 밭에서는 두더지가 파놓은 굴을 따라 물이 빠져나가 피해를 입힌다. 특히 나무의 경우는 말라죽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 과수원에 큰 피해를 준다. 이런 경우에 두더지는 아주 해로운 동물이 된다. 다행히 나의 텃밭은 가뭄이 타지 않는 곳이어서 두더지는 유익한 존재이다.

가난해지는 농촌, 누가 먹여 살리나
농업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일이지만 기여도만큼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대접이란 소득을 말한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하다. 농사를 지어 벌어들인 수익이 년 1천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농가의 비중이 70.3%에 이른다. 5천만 원 이상은 7.9%다. 이는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나타난 수치다. 농사를 지어 살 수 없으니 겸업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겸업농 비중이 40.2%에 이른다. 매우 비정상적인, 위태로운 상태이다.
농가소득은 농사를 지어서 얻는 농업소득과 공사장 잡부, 택시 운전, 공공근로, 여기에 농촌을 떠난 가족들이 보태주어 생기는 농업외소득으로 크게 구분하는데, 2022년의 농업소득은 949만 원이었다. 농업외소득까지 합친 농가소득은 4,615만 원으로,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소득 6,414만 원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농사꾼이 농사를 지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농정의 실패에 다름 아니다.
농부들은 계속해서 농토에서 박탈당한다. 앞에 언급한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농림어가 인구는 265만1천 명으로 2015년 292만3천 명에 비해 27만2천 명(-9.3%) 감소했다. 가구 수로는 5년 사이 5만2천 가구가 줄어들었다. 이런 수치가 아니어도 농어촌을 지나다보면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허물어져가는 집이 마치 농촌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농어촌은 고향이다. 그런 고향이 황량하기 그지없는 풍경이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농촌과 농민에 대한 도시민들의 생각이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서 펴낸 ‘2022년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도시민들은 농업과 농촌을 안정적인 식량을 공급해주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후에도 그런 기능을 수행해주기를 바랐다. 또 농업인이 공익적 기능 증진에 기여하고 있는데도 이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상당수의 도시민은 농업·농촌의 기능 유지를 위해 필요할 경우 조세 부담을 더 질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면 여전히 어지럽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1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패권을 잡으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나라 간 경쟁이 격화되면 식량의 확보가 관건이 된다. ‘식량안보’라는 말에 무게감이 실린다. 식량이 무기로 바뀌기 때문이다. 경쟁국 또는 적대국으로 나뉘어지며, 자유롭던 식량의 거래는 단절되던지 아니면 가격이 급등한다. 식량 중개상들은 세상이 어지러운 때를 돈벌기 좋은 조건으로 생각한다. 나라 간 경쟁이 격화되면 돈을 주고도 식량을 사올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일이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 세계의 상황을 보면 위태롭다. 안정적인 식량의 생산지로서의 우리의 농업·농촌의 중요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