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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기도 - 나와 남이 함께 좋은 일
최승천 / 조계종출판사 편집부장

우리나라처럼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이 큰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나라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일생을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고, 사람에 대한 평가를 실력과 능력보다 학력(學歷)에 의존한다는뜻일 수도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에서는“입시지옥을 없애고, 학력으로 차별받는 일을 없애겠다”며 갖가지 교육 개혁 방안을 내놓았지만 그 정책이 단 한 차례라도 성공하여 국민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켜 준 적이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매년 2학기가 시작되고 입시가 가까워지면 전국의 사찰과 성당, 교회에서는‘대입 합격 발원 기도’가 이루어진다.
 
평소 기복 신앙을 비판하거나 심지어 경멸하기까지 했던 사람들도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이 기도 대열에 빠지지 않는다. 유명한 학자가 쓴 책에서, “기복 신앙과 입시 기도를 비판하였었지만 막상 내 자식이 고3생이 되자 나도 모르게 절에 가서 기도를 드리게 되더라”는 고백을 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본래 다니던 절이나 교회에서 하는 입시 기도에 동참할 뿐 아니라 심지어 기도영험이 있다는 전국의 유명 기도처를 두루 찾아다니며 “제발, 우리 아이가 좋은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게 해주세요!”라며 간청하기도 한다. 자력 종교이든 타력 종교이든, 종교인은 자신의 소원(所願)과 서원(誓願)을 담은 기도를 드린다.

기도 없는 종교는 생각하기 어렵다. 아니 존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의 수행으로 깨달음을 성취하기로 서원한 우리 불자들의 기도는 절대 유일신을 믿고 모든 것을 신(神)의 결정에 맡기는 타력 종교의 신도와 달라야 한다. 불자가 기도를 할 때에는 너무 기복적이 되지 않아야 하며, 혹 신비적인 가피를 기대하지 말고 돈독한 신심으로 열심히 정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할 때 입시 기도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게 된다. 입시기도 동참자는 이 기회를 통해 자기 마음을 닦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이해심을 넓히게 되며, 불교의 가르침을 접하게 될 것이고, 또 그것을 계기로 불교교리를 배워 참다운 불자로 성장해 갈 것이다.

자식 입장에서도 마음이 안정될 수 있을 것이고, ‘나를 위해 저렇게 지극 정성을 바치는 어머님을 생각해서
라도 더욱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며, 나아가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야겠다’는 발심을 하게될 것이다.
 
입시기도에서 드러나는 자식을 향한 어버이의 지극한 마음은, 자식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고 정성스런 어버이의 마음은 곧 중생을 향한 부처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도가 개인 소원을 비는 데에서 머물지 않고 이렇게 부처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가는 인연이 될수 있기에, 자력 종교인 불교에서 타력적으로만 여겨지는 기도를 용납하고 권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가 이런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해서 자기 자식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를 하는 것은 불자들에게 맞지 않는다. 혹시라도“다른 절의 입시생들은 다 떨어져라. 다른 집 아이는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아이만 불보살님 가피력으로 좋은 성적을 내주세요”라고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아플 때 “불보살님의 자비심으로 살려 주십시오!”라며 간절한 기도를 드릴 뿐“다른 사람을 대신 아프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드리지는 않는 것과 같다. 설사 그런 기도를 드린다 해도 불보살님께서 그와 같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기도를 들어주실 리 없다.

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자식을 위한 입시기도를 드리면서 혹시라도‘내가 아이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데, 아이가 이것을 몰라주면 어쩌지?’라며 상을 내며 괜한 걱정을 하거나 아이에게“엄마 정성을 봐서라도 좋은 대학에 합격해야 한다”고 드러내놓고 압박을 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자식을 위한 기도가 오히려 자식을 불안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입시를 망치거나 앞날을 해치는 나쁜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자식을 위한 입시 기도를 드리면서‘이 땅에서 지금과 같은 학력(學歷) 차별과 입시 지옥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대승적 발원을 할 수만 있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내 자식이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면서, “제발 다른 아이들은 이런 입시지옥에서 고통을 겪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라며, 타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심에서 우러나는 기도를 드렸으면 좋겠다.
 
자식을 둔 어버이라면 아무리 부처님 경전을 많이 읽고 수행 정진해왔을지라도‘내 자식 잘되게 해달라’는 이기적 마음을 버리기 힘들고 따라서 무조건“이기적 기도를 그만 두세요. 남을 위한 기도를 하세요”라며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남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라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깊은 뜻을 이해한다면, 내 자식뿐만 아니라 남을 위한 기도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남을 위한 기도’를 통해 오히려 나에게도 좋은 결과가 생길 것이다.

열반하신 성철스님께서“남을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주창했던 것은 결코 자신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과 상생에 대한 강조였을 것이다.
 
앞으로 대학입시 기도를 드리는 불자들은 관세음보살의 자비심과 보현보살님의 대원력을 모범으로 삼아 내 아이와 함께 고생하고 있는 모든 입시생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서도 진심으로 정성껏 기도를 드리는 멋진 불자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