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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변화에 따른 능동적 대처를

김한수ㅣ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지금 나의 휴대전화 전화번호부에서‘스님’을 입력하면 60여개의 법명이 떠오른다. 지난 4년간 일간지 종교담당 기자를 하며 맺은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검색하다 보면 만났던 때의 대화내용은 물론 주변 풍경과 날씨까지 요즘 말로‘동영상’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똑같은 분위기는 거의 없었다.

그 분 들로부터 받았던 감동의 내용도 각기 달랐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비좁은 버스 타고 이동하는 고단한 여정(旅程)에서도 중국의 선종의 역사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애쓰던 스님, 수십 안거(安居)를 성만한 눈빛 푸른 수좌스님, 사회복지사업에 매진하던 스님, 대중포교에 여념이 없는 스님, 속세인들의 고통을 템플스테이로 풀어주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분, 생명과 평화를 대중들에게 나눠주고 스스로도 받기 위해 3년이 넘도록 전국을 걷고 또 걷는 스님, 간화선으로 중생들의 마음을 닦아주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전국을 순례하는 노(老)선사, 많은 이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승가의 기본이기에 계율(戒律) 지키기를 촉구하는 율사(律師) 스님, 비구니로서 벽을 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분, 일반인들도 따기 어려운 외국 유명대학의 박사학위를 너끈히 받아온 학승(學僧), 인도와 미얀마로 고행에 가까운 수행여행을 떠난 스님, 후배 수좌들을 최
하 3년 무문관에 넣어주고 온갖 뒷바라지를 마다 않은 80대의 노스님….


 우리 불교는 말로는 잘 베풀고,
절에 찾아오는 이에게는 비빔밥도 아낌없이 주고 있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노력이 부족한 듯하다.
이제는 한국 불교의 위상과 크기에 걸맞은
실천과 활동이 필요한 때이다.


이렇게 다양한 분들이‘한국불교’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 휴대전화 속의 스님들 이름을 넘기면서‘이래서 한국불교를 통불교라고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새삼 머릿속에 떠올랐다.

불교에 관해서는 또 다른 좋은 기억이 많다. 4년 전 문화부 내에서 종교담당을 맡게 된 후, 불교 경전을 들추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여시아문(如是我聞)’구절 때문이다. 논어도, 성경도 모두가‘공자 가라사대’ ‘예수께서 이르시되’라고 성인의 말씀을 직접 화법으로 옮기고 있는데 불교는 왜‘나는 이렇게 들었다’고 경전을 적었을까.

알려진 대로 불경이 결집된 과정이야 다른 종교의 경전 결집과정과 다르지 않다. 성인의 사후(死後)에 제자들이 모여서 스승의 가르침을 정리한 것이다. 그것도 모두가 합의한 내용만 경전으로 결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옮겨도 상관없을 것을 굳이‘들었다’고 표현한 데서 나는 종교로서 불교의‘자세’와‘태도’나아가 ‘세계관’같은 것을 느꼈다.

‘우리 스승님이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우리 제자들의 스승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들었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겸손한가. 지금 아브라함에서 비롯된 유대교,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 이슬람교가‘하느님’혹은‘하나님’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의 오류가능성을 배제하면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분쟁, 심지어 전쟁을 겪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더욱‘들었다’는 표현은 감동적이었다. 그 표현 속에 이미 스승의 말씀 그대로가 아닌 제자들에 의해 해석됐다는 점, 그리고 그 해석마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부처님은 돌아가실 때 “내가 아니라 법에 의지하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이런 감동을 안고 만나는 불교는 또한 하나의‘종교’라기 보다는 우리 민족에겐‘생활과 문화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사찰 안에 당당하게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산신각’‘칠성각’등 무속신앙의 흔적을 비롯해, ‘그산의 그 높이에 그 절이 없었다면’하는 생각을 하면 아찔한 명찰(名刹)들의 엄숙한 아름다움, 불교 신자 여부를 따져 묻지 않고 누구나 맞아주는 사찰과 불자(佛子)들의 모습에서‘우리의 생활문화’를 읽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교를 불교답게 해주는 것은 역시‘수행’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대통령이 와도 내다보지 않는다’는 봉암사 납자들의 결기와 자부심에서,‘ 자동차도 휴대전화도 모두 남 주고 왔다’며 3년 결사를 위해 대자암 무문관에 들어가던 이름 모를 수좌, 깨달음 하나를 위해 손가락을 소지공양한 스님 등을 만날 때면 종교담당기자라는 직업이 복에 겹다는 생각을 하곤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종교의 역할이 영적(靈的)으로 대중을 이끄는 동시에 자비행(慈悲行)이 따라야 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불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사회봉사가 너무 약하다는 느낌이다.

물론 불교도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몇 년 전 연말‘불교신문’1면에 실린 한 노숙자의 코멘트는 아직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노숙자는 자신들을 찾아온 스님과 기자에게“지난 몇 년 동안 신부, 목사, 수녀님은 많이 봤어도 스님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주위를 둘러보면 천주교,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수많은 병원을 비롯해 노숙자와 미혼모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비해 불교의 기여는 너무 미미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조 500년 동안 늘 빼앗기기만 하고, 풍족했던 적이 없었던 탓일까. 아직도 우리 불교는 말로는 잘 베풀고, 절에 찾아오는 이에게는 비빔밥도 아낌없이 주고 있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노력이 부족한 듯하다. 이제는 한국 불교의 위상과 크기에 걸맞은 실천과 활동이 필요한 때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불교계가 시대변화에 대한 준비가 충분한가 하는 아쉬움과 우려도 마음 한 구석에 있다. 21세기는 어쩌면‘종교의 위기 시대’인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젠 20세기의 성역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 같다.
이젠‘속세 따로 종교계 따로’라는 사고는 설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과거엔 종교와 종교인이 사회의 발전을 선도했지만 사회의 변화속도는 이제 종교와 종교인이 따라가기도 버거워 보인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과연 종교와 성직자들이 일반 대중을 선도하고 있다고 자신하기엔 노력이 더욱 필요한 것 같다.
성직자를 대하는 신자들의 눈매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비리의 경우에는 가차 없는 비판이 가해지곤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불교를 비롯한 대부분 종교는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가거나 적어도 뒤쳐지지 않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 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고령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주5일제는 국내여행의 수준을 넘어 해외여행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계는 경제적으로는 어떻게 살아남을 지, 성직자는 어떻게 충원할 지, 변화하는 사회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지 등에 대한 비전이 부족한 것 같다. 불교계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막연히‘물질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영적으로 허전해하고 그래서 종교를찾게 돼있다’는 기대감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방법은 본분으로 돌아가 죽기 살기로 수행하는 수행자가 많아지는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인물이 늘어나야 할 것이다. 1600년을 이어온 전통의 우리 불교는 최근의 어려움도 잘 헤쳐 나가리라믿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