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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닌 불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통도사 주지
   구룡사 회주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온통 다 번거롭게 보입니다. 반면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세상 또한 맑고 깨끗해 보입니다. 또 가까운 이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덩달아 좋고 가까운 이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더불어 힘들게 마련입니다. 하물며 스스로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이며, 스스로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또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세상이치인데, 중생심(衆生心)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기에만 집착(執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각자가 겪고 있는 행복과 불행, 기쁨과 즐거움, 고통과 괴로움은 누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자작자수(自作自受)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며 자승자박(自繩自縛)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 곳에만 집착을 하고 거기에만 온통 정신이 매몰되어 결국에는 일을 그르치고 마는 것이 중생들의 삶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불자(佛子)라면 한 곳에만 집착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더 나아가서 ‘옷깃만 스쳐도 지중(至重)한 인연(因緣)’이라고 했듯이,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이들을 돌아볼 수 있는 변별력(辨別力)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가까이 지내는 이가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쁘듯이, 항상 그러한 마음을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기쁨과 즐거움도 고통과 괴로움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무지(無知)함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번뇌(煩惱)가 동반합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마음속의 번뇌는 결국 고통과 괴로움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통도사(通度寺)에는 열두 법당이 있습니다. 매일 각 법당마다 불자들이 함께 동참하여 기도를 올립니다. 대부분의 불자들은 각자의 인연과 소원하는 바에 따라 기도를 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불현 듯, ‘그래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부처님은 아니 나투시는 몸이 없으시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華嚴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불자들이여, 모든 중생이 병에 붙들리기도 하고 늙음에 시달리기도 하며 가난함에 쪼들리기도 하고 재난을 만나기도 하며 법을 어겨 형벌을 받게 될 적에 믿을 데가 없어서 매우 두려워하는 이들을 내가 구제하여 편안케 하고,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법으로써 중생들을 섭수하여 모든 번뇌와 의심으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과, 근심과 걱정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뵙고 법보시(法布施)를 항상 행하고 착한 업(業)을 부지런히 지으며, 여래(如來)의 청정한 법의 몸을 얻어 반드시 변하지 않는 자리에 머물러 지이다’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정신머리 없다’고 할 때 머리를 콕콕 쥐어박습니다. 또 자신의 말뜻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마음이 답답해지면 가슴을 칩니다. 이렇게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정신은 머리에 있고 마음은 가슴에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정신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신과 마음은 나뉘어져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머리로만 살수도 없고 가슴으로만 살 수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정신이 함께 잘 조화롭게 쓰여 질 수 있을 때, 후회 없는 삶, 고통과 괴로움을 겪지 않는 삶, 불행한 인생을 살지 않고 복된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의 행동과 삶을 들여다보면, 한번 머릿속에 생각을 담아 놓으면 온통 거기에만 모든 신경이 집착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분별하고 시비를 가릴 틈이 없어서 결국 변별력이 상실되어 앞뒤 분간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의 지혜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이 늙음에 시달리기도 하고, 가난함에 쪼들리기도 하고,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고, 또 국법의 벌을 받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가듯이, 시간의 굴레에 끌려가고 있는 현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해주신 것입니다.
중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힘든 일들이 있을 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결국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과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번뇌, 망상 때문에 늙고 병들고 죽는 근심과 걱정, 고통과 괴로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의심과 번뇌와 망상을 버리면 됩니다.
집안에 입시생이 한명 있으면 온 식구가 입시생이 됩니다. 심지어 집안에서 텔레비전을 없애버리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텔레비전 보면 아이들도 나와서 보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을 아예 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아프면 부모님도 또한 아픕니다. 그러한 마음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요,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속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선업을 부지런히 짓고 부처님의 맑고 깨끗한 법의 몸을 얻어 반드시 변하지 않는 자리에 머물러지기를 발원하셨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경(涅槃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불자들이여, 보살이 보시를 하는 것은 명예나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남을 속이기 위해서도 아니니라. 그러므로 보시를 했다고 교만한 마음을 내거나 은혜 갚기를 바라서도 아니 되느니라. 보시를 할 적에는 자신을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받을 사람을 가려서도 아니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올바른 일은 스스로 마음을 내서 하는 것이 으뜸입니다. 그런데 그게 여의치 않으면 상대가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해야 될 일이 있다는 것도 아셔야 됩니다. 그리고 가르쳐주기 위해서 행동하거나 말을 해야 되는 것도 있습니다.
기도를 하든, 시주를 하든, 보시를 하든, 교만한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이 자식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옛날 우리네 어버이는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조건 없이 허리띠 졸라매고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시래기밥, 무밥, 고구마밥 먹어가면서 자식을 가르쳤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습니다. 단지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고, 잘 살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런데 요즘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어머니도 어려서부터 자식들을 열심히 학원에 보냅니다.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 학원 보내고 교육시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대들라치면 곧바로 나오는 말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그럴 수 있냐’ 고 합니다.
그런 어머니는 이미 자식을 위해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푼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어머니는 본인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하기 위해서 들들 볶은 것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하는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를 하고, 시주를 하고, 보시를 할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교만한 마음을 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을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받을 사람을 가려서도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시인 전호성은 ‘상처’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빗방울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눈 오는 날에는 눈송이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눈, 비 그치면 햇살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상처를 받기로 하면 모든 일이 온통 상처라는 것입니다.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대로, 눈 오는 날은 눈 오는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대로 상처가 있답니다.
따라서 그런 상처 받지 말고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면서 기도해야만 합니다. 또 힘들고 어려울 때 불보살님의 가피와 위신력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그런 기도와 정진을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