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스님
익산 심향사 주지
올해 수능시험이 10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벌써부터 많은 학부모님들께서 가까운 사찰을 찾아 100일 기도를 정성으로 올리고 있고, 비록 여건상 직접 산문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치성을 드리는 부모님들도 계실 것입니다. 수능시험이 인생을 결정짓는 마지막 시험은 아니겠지만 고3 생활을 거쳐 오면서 더 큰 비상을 꿈 꿀 수 있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수능일이 다가올수록 학부모님의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초조하고 조급해지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시험 성적이야 평소에 얼마만큼 노력하였나에 따라 얻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마음 졸일 일도 없겠다 하겠지만, 세상사라는 것이 그처럼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니 부모님 애간장이 다 타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나 우리 아들이 너무 긴장해서 아는 문제도 틀리면 어쩌나, 혹시나 우리 딸이 자신 없어 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나온다면 어쩌나.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면 수능시험을 앞둔 학부모님들의 마음 역시 편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이렇게 가슴 졸이는 순간이 되면 불자님들은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찾게 됩니다. 혹시라도 부모님의 정성이 부족해서 우리 자식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삼천배를 올린다거나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기도를 올리는 부모님들을 볼 때면 부모님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를 빌어 우리 아들, 딸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다보면 학부모님 스스로도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고, 자식의 수능시험에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기도를 드리는 것 자체가 정말 훌륭하고 장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도깨비 방망이는 아닙니다. 만약 기도만 한다고 해서 고득점을 올리고, 기도를 통해서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불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기복신앙일 뿐이겠지요. 만약 기도를 통해서 모든 것이 다 이뤄진다면 지구촌이 진작에 불교로 모든 중생을 개종시켰을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면 세상만사가 아무런 장애 없이 마음먹은 대로 다 이뤄졌을 것입니다.
기도란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는 권능이 아닙니다. 기도란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려고 함에 있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서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생의 업보나 악연 등을 기도를 통해 조금이나마 참회를 하며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그런 업장들을 녹여내어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헛되지 않게,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부처님의 가피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열심히 공부를 하고도 막상 시험장에 들어서면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백짓장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누구나 한두 번쯤은 겪어보았을 법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 현상이 현생의, 혹은 전생의 업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불안해하다보면 생길 수 있는 현상일 뿐입니다. 부모님들께서 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도 내 자식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지요.
그럼 부모님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면 모두가 만사형통이 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장경에 보면 다른 사람의 천도를 위해 기도를 해주면 망자가 얻는 이익은 7분의 1이고 나머지 7분의 6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부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학부모님들께서 밤잠을 줄여가며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올리더라도 그 공덕의 7분의 1만 자녀에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이야 그것이라도 어디냐 하시겠지만 그보다 더 효율적인 기도가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렇게 효율적인 기도가 무엇일까요? 네. 당연하겠지만 학생 스스로가 짧은 시간이라도 직접 기도를 하는 것이 보다 큰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자녀들이 불법을 알지 못하여 그런 기도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자녀들에게 억지로 기도를 권하거나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녀들에게는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방편으로 1분 기도를 권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1분 기도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평소 수업을 시작하기 전이나 시험을 치르기 전 잠시만 틈을 내어 1분 동안 눈을 감고 일념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비록 1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렇게 일심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게 되면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으며, 긴장감을 해소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녀가 아직 부처님의 가피력을 믿지 못한다 하더라도 1분 기도를 통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면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알게 되고 불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긴장이나 불안으로 인해 시험을 망치는 일도 줄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라고 하겠지요.
자녀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하는 학부모님들의 애틋한 마음을 모르지 않으니 학부모님들께서 백일기도를 드리는 것을 막을 수야 없겠지만, 학생 스스로가 정성을 다하여 1분 기도를 드리는 것이 더 큰 효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신다면 오늘 당장 자녀들에게 1분 기도를 권하여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