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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원리

승한 스님
북한산 중흥사


행복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넝쿨째 열려있는 그 행복을 따고 못 따고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행복에도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구현具現행복과 지족知足행복과 초월超越행복이다.
구현具現행복은 ‘우리가 앞으로 이루어나가야 할 행복’이다. 꿈 소원 희망 소망 건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구현행복이 있기에 우리는 날마다 새 꿈과 희망을 갖고 힘차게 일어난다. 추구해나갈 행복이 없다면 그 사람은 이미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다. 하루하루 음식이나 축내는 식물인생에 불과하다. 가만히 돌이켜보자. 지금 자신의 인생이 식물인생인지 아니면 꿈과 희망으로 빛나는 ‘활活인생’인지.
지족행복은 ‘이미 있고 이미 이룬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다. 기존旣存의 행복과 기성旣成의 행복이 그것이다. 
눈 귀 코 입 공기 물 햇빛 등이 기존의 행복에 해당된다. 이미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이것들은 값어치로 따질 수 없다. 만약 내 얼굴에 눈이 없다고 생각해봐라. 눈앞에 아무리 천하절색과 찬란한 보물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내 얼굴에 귀가 없다면, 코가 없다면, 입이 없다면, 손발이 없다면, 공기가 없다면, 햇빛이 없다면, 물이 없다면…… 한 가지 당 줄잡아서 100억씩만 친다 해도 우리는 이미 몇 천 억대가 넘는 재산을 소유한 부자들이다.
기성의 행복은 말 그대로 우리가 노력해서 이미 얻은 행복들이다. 학력, 재산, 가정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옛날에는 초등학교만 제대로 나와도 면장을 했다. 또 우리 당숙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일자무식이었다. 자기 이름도 잘 못썼다. 그래도 자식 6남매를 잘 키워서 대학교까지 보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우리는, 과연 어떤가. 초등학교를 나오고, 중학교를 나오고,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교를 나오고, 아파트가 있고, 자동차가 있고, 냉장고가 있고, TV가 있고, 귀여운 아내와 자식들이 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인가.
초월행복은 ‘(세속적인) 행복을 초월해버린 행복’이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해탈이고, 열반이고, 나 없음이다. 내가 허공이고, 내 마음이 허공이고, 내 경계가 확 트인 대지인데 거기에 무슨 세속적인 행복이 따로 존재하겠는가? 나의 대지에서, 나의 허공에서, 나의 바다에서 자라고 날고 헤엄치는 모든 것이 다 걸림이 없는데 나 밖에서 따로 구할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우리가 ‘이미 있고 이미 이룬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지족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앞으로 이루어나가야 할 행복(구현행복)’에만 너무 치우친 삶을 산다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씨앗이다. 탐·진·치 삼독심도 바로 거기서 비롯된다.
내가 지도하는 한 수련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 삼중고의 성자 헬렌 켈러를 예로 들며 그에 비하면 말하고 보고 듣기도 하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하고 물었다. 20여 명의 수련생들은 하나같이 그렇다며 지금까지 너무나 그것을 모르고 살았다고 공감을 표해왔다. 그런데 60살 먹은 한 사업가만 유독 그것이 왜 행복한 일이냐고 따지고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행복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럼 당신이 지금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는 것이지 자신에게는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지금 당신이 교통사고가 나서 실명을 했다고 하면 어떻겠냐고? 그 말끝에 사업가의 항변은 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신은 사업상 해야 할이 많은데 부인 손길에 끌려 여기까지 왔다며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물론 장을 진행하는 동안 사업가의 마음이 점차 열려 그날 저녁 장부터는 많은 눈물을 쏟으며 자신이 지금껏 헛세상을 산 것 같다고 눈물바람을 했다. 그 사업가에겐 ‘앞으로 이루어나가야 할 행복’ 그래서 ‘충족되어야 할 행복’만 있었지 ‘이미 있고 이미 이룬 행복’에 대해서는 너무나 눈이 멀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업가 같은 행복가치관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벌고,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거느려야 행복하고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하며 인생을 고속도로처럼 질주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과속을 하게 되고, 중량을 더 싣게 되고, 끝내는 대형사고가 나 건강도 잃고 가족도 잃고 끝내는 죽기까지 하는 것이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먼저 지족행복에 눈뜬 사람들이다. 이미 있고 이미 이룬 것에 만족하며 살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있고 이미 이룬 행복을 충분히 누리며 나아가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평화롭고 차분하다. 아우토반처럼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대신 주변 풍경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건강, 사업, 가족사, 꿈, 희망 등 앞으로 이루어나가야 할 구현행복을 하나하나 추진해나가니 하는 일마다 즐겁고 기쁘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추구해나가니 하는 일도 힘들지 않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이처럼 크다.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행복에 충분히 눈뜨고 감사하며 한발 한발 느리게 나아갈 때 시야가 넓어져 넝쿨째 열려있는 행복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질주하는 자동차는 시야가 좁아져 앞밖에 못 보듯이 이미 있고 이미 이룬 행복은 보지 못한 채 아직 보이지도 않는 행복만을 찾아 내달리는 사람은 이미 있는 보물도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행복의 비결은 간단하다. 우선 자기가 이미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이미 이룬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눈, 귀, 코, 입, 손발, 월셋집, 전셋집, 자전거, 자동차, 컴퓨터, 냉장고, TV, 스마트폰, 중졸, 고졸, 대졸, 아내, 자식, 직장 등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그 바탕 위에서 앞으로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과 희망과 소망을 향해 나아갈 때 행복은 저절로 굴러들어온다. 그래서 『법구경』에 ‘무병최리 지족최부 후위최우 이원최쾌(無病最利 知足最富 厚爲最友 泥洹最快 건강은 가장 큰 이익이고 만족은 가장 큰 재산이다. 믿고 의지함은 가장 귀한 친구이며 열반은 최고의 평화이다.)’라는 말도 나오지 않던가.
이처럼 이미 있고 이미 이룬 지족행복에 눈뜨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초월행복에도 눈뜨고, 끝내는 초월행복의 행복을 만나기 위해 부단히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으며 수심해 나간다. 마음의 평화와 해탈이야말로 행복의 극치이며 우리 인간이 끝내 추구해나가야 할 지상목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돈도 벌고 고시공부도 하고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하고 사업도 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의 본질은 아니다. 행복의 본질은 마음의 평화다. 기분 좋은 삶이다. 아무리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들어가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어도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고 기분 좋은 삶이 되지 못한다면 그 삶은 불행한 삶이다.
행복의 본질은 또 ‘우리 모두’에 있다. ‘나 혼자’만의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니다. 자기 술버릇으로 인해 온 가족이 고통 받고 있는데 나 혼자만 술 마셔야 기분이 좋다고 술을 마시면 그게 기분 좋은 행복일 수는 없다. 또 우리 가족만 행복하다고 기분 좋은 삶일 수는 없다. 사회와 국가와 인류가 범죄와 기아와 전쟁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데 우리 가족만 행복하다고 사는 삶이 기분 좋은 삶일 수는 없다.
행복의 동심원은 넓을수록 좋다. 한 가운데 나를 중심으로 우리 가족, 우리 이웃, 우리 사회, 우리 민족, 우리 국가, 우리 이웃 나라, 전 세계 모든 국가, 모든 인류로 행복의 동심원이 점점 커져나갈 때 나의 행복도 극점에 달한다. 그게 바로 살아있는 ‘활活열반’이고 ‘활活해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