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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돕고 나누고 함께 하는 공동체

어느 날부터인가.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고, 가을인가 싶으면 겨울이 되어 버리는 인생은 점점 짧은 계절이 되어 다가오고, 산야에 여울지는 풍광을 바라봅니다. 우리들의 무거운 삶에 여름은 중복을 지나, 말복의 입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입추가 되었다고 곧바로 선선한 가을하늘을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더운 날씨가 지속되어야 오곡백과가 제대로 익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기분상에서 분별식심分別識心으로 비추어 보고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이 인생도 그런가봅니다. 입춘은 봄이 오는 문이고 입추는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지만, 처서와 백로가 되어야 산등 넘어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소리로, 가을 문턱을 바라다보는 추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수도권지역의 도시들은 휴가철이라 지방으로 많이 이동을 해서인지 구룡사에서 여래사로 가는 자유로 큰길은 한산한 편이었습니다. 넉넉한 도로에서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모두 다 내 차를 추월해서 지나갑니다.
앞서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시간으로 나타나는 인생의 종착역은 역시 죽음일 텐데, 저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일까?
우리 주변에는 전후좌우도 살펴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가고 있는 인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들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생을 살지 말고 전후좌우도 살피면서 살아가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란분절盂蘭盆節 입니다. 우란분이라는 어원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불안전하다, 불확실 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도 불안전 하다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木連尊者는 출가하여 10대 제자가 되었지만, 어느 날 선정삼매에 들어, 돌아가신 어머니 계신 곳을 보게 되었습니다. 생전에 죄를 많이 지어서 천상에 나지 못하고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의 삼악도三惡道에서 아귀가 되어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께 눈물로 어찌해야 할지를 묻습니다.
“세존이시여! 선정에 들어 비춰보니 어머님이 생전에 살생을 많이 하고 인색하여 아귀의
고통을 받고 있으니 어찌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여름 안거가 끝나는 자자일自恣日 우란분절에 스님들을 청하여 재를 올리고, 그 음식으로 시방의 대덕 스님들께 공양하라. 그리하면 모든 조상들은 구제 받을 것이요, 아귀의 고통에서 벗어나리라.”


여름 안거 기간 중 보름마다 하는 포살布薩은 보살게문을 염송하며 재발방지를 점검하는
의식입니다. 여름안거를 마치는 날, 백중은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자자일입니다.
‘안거 동안 제가 이러한 허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잘못이 있었습니다. 제가 부족한 점이
있었으니 일깨워 주십시오.’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참회의 날이기도 합니다. 백중날, 대중스님들을 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함께 염불하고 간경하며, 어머니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가들을 천도 하였다는데, 이 법회의식은 오늘에 이르도록 이어져 내려오는 우란분절의 유래입니다.
불자 중에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10여년 만에 법회에 오신분이 있었습니다.
후원後院에서 만났는데, 내 손을 붙잡고 눈물바람을 합니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갈 줄 몰랐 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염불소리에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은 야속한 시간이 되어 이런저런 상념을 가지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행복과 불행도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죽음이나 허망한 삶의 모습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사회병리 현상으로 교통경찰보다 치안경찰관이 더 많다고 합니다.
골목길을 다니면서 민생을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인가 싶습니다.
이십년 전만해도 경찰관에게 딱지를 끊기면 대부분은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 했습니다. 다 운전을 하고 다니는데 자기만 재수가 없어서 교통경찰에게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통법규 위반에 걸린 것입니다.
우리들의 죽음도 그렇게 인식하는 이가 많습니다. 모두 다 죽는 것은 인정 합니다,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죽음을 거부하거나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모두가 다 세상을 떠날 것은 인정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이나 내일, 아니 가까운 장래에는 절대 아닐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심지어는 삶의 저쪽 맞은편에 죽음을 던져놓고 피해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먹을 심사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스스로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온통 모 부대에서 일어났던 일들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습니다.
지휘관들은 연대책임으로 보직이 해임되었습니다. 그 방법으로는 부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축소되거나 감춰지게 될 것이고, 보신주의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군인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명예를 생명처럼 지키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부대 지휘관들은 의사와 약사가 되어서 어떤 병사라도 아프면 치료할 수 있어야하고 수술해줄 수 있는 힘과 용기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주변에 반드시 그 사실을 알린다고 하였습니다.
숨기지 않으면 치료할 수 있는 처방과 약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기가 생기면 마음 써서 치료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은 어리석게도 감출
것입니다. 상처가 깊어서 뼈에 사무치면 골수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때는 도려내야
합니다. 수술하지 않으면 계속 썩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 의사와 약사와 같은 지휘관을 집단적으로 배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5천만 입니다. 언론과 방송을 통해서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곳에서 국가와 민족을 지켜야할 군인들은 전체 인구의 1%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백 살을 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분단된 조국을 지켜야하는 젊은이들은 신성한 국방의무를 마쳐야 하고, 자유분방하게 성장해온 그들은 더욱 병영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곳은 국방을 책임져야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국민적 분노를 드러내는 얼굴들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자비보살의 연민심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이번처럼 지휘관들의 책임을 보직이나 해임시키는 것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지휘책임을 묻는다면,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은밀하게 은폐하고 사건을 숨기고 축소시키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언론과 방송에서는 관심병사의 숫자를 군 복무자의 10% 로 적시 하였습니다.


세상은 아무리 작은 문제도 문제 삼으면 문제 아닌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반드시 해답이 있습니다. 최선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개진해볼 수 있는 여건을 말하려 합니다. 당사자들은 부정적으로 받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40년 전, 우리들 세대는 34개월 이상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지금도 몸과 마음이 건강한 복무기간을 1개월만 연장하여도 2만 명의 관심병사가 줄어들게 된다고 합니다. 해군처럼 23개월 복무하면 4만 명이 됩니다.
공군이 24개월을 근무하듯, 육군에서도 복무하게 된다면, 6만 명의 청년들이 군복무대신 공익요원으로 대체근무를 할 수도 있습니다.
온 국민이 걱정하는 관심병사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입니다.
스스로 지원 입대하는 해군과 공군의 복무지침을 적용해 보아도 육군의 모든 지휘관들이 걱정하는 관심병사 문제는 개선되어지고 군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미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금년에는 전후방부대 장병들에게 월동준비용 면장갑 33만 켤레를 보냈습니다. 한겨울 전후방에서 추운겨울에 눈이라도 오게 되면, 군종교구에서 보낸 면장갑을 끼고 쌓인 눈을 치우는 국군용사들의 씩씩한 모습도 함께 그려 봅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