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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

한애경
조계종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부단장


우주가 생성되고 파괴되기를 아흔 한 차례나 거듭하기 이전에 데와와띠라는 풍요로운 도시에 수메다라는 바라문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천문학과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을 익힌 그는 스승에게 세 가지 웨다를 배워 통달하고 너그러운 인품과 넓은 학식 그리고 유창한 언변은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남달리 총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메다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세상의 학문으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많지만 그 즐거움들은 쉽게 부서지고 오래 지키기 어렵다. 사람들은 무엇으로도 늙음과 질병과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언제 닥칠지 모를 두렵고 무서운 이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아홉 구멍으로 쉴 새 없이 오물이 흐르는 사람의 몸은 구멍 뚫린 배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병들어 있었으며 평온하고 화사한 웃음을 지어 보이지만 고통으로 신음하면서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병을 치유할 의사는 없을까? 병이 있다면 그 병을 치유할 방법도 있으리라.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안온한 세계는 없을까? 길이 있으리라. 아니 있어야만 한다. 나는 그 길을 찾으리라.’
수메다는 세상의 학문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기 위해 자기 재산을 가족과 친지,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눈 덮인 깊은 산속으로 향했습니다. 세상 밖의 학문을 배우던 어느 날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을 향해 떠났습니다. 교화를 펼쳐 세상을 이롭게 하고 스스로 행복한 삶을 일구라는 스승을 생각하며 오랜 세월 동안 자란 긴 머리카락을 묶어 올리고 낡은 사슴 가죽으로 겨우 몸만 가린 수메다는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어느 날 마을 공회당을 지나가던 중 바라문들의 열띤 토론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높은 단을 만들고 사람들의 질문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하는 이에게 은전 한 닢씩 주기로 하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으며 다들 몇 마디의 질문을 견디지 못하고 차례차례 단에서 내려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메다가 다가갔습니다.
“저 역시 바라문의 아들입니다. 여러분의 논쟁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문이라면 누구든 좋소.”
단 위에 오른 수메다는 공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하고 잎을 물으면 가지와 뿌리까지 설명하는 수메다의 막힘없는 논변에 바라문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오백 냥의 은전을 받은 수메다는 길을 가다가 가슴 아픈 장면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병들어 고통 받는 사람과 굶주림에 허덕이고 질병과 전쟁으로 부모와 형제를 잃은 사람들이 거리마다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중생들의 눈가에 맺힌 슬픔과 공포를 수메다는 미어지는 가슴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은 고통의 수렁이었습니다. 그러다 와사왓띠 왕이 다스리는 빠드마와띠를 지나다가 비단과 꽃으로 장식한 거리는 나라에 무슨 경사라도 있는 듯 성안의 백성들이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물을 뿌리며 길을 쓸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디빵까라 부처님께서 오늘 우리 성으로 오신답니다.”
“부처님이라니요, 부처님이 어떤 분입니까?”
“모르셨군요, 부처님은 완전한 지혜와 덕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가장 위대한 스승, 승리자, 세상의 길잡이, 모든 번민과 고통을 넘어선 그분의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법입니다. 그분의 발길이 닿는 곳엔 재앙과 질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그분의 두 발에 예배하고 공양하면 어떤 소원이든 다 이루어진답니다.”
“부처님에게 무엇을 공양해야 합니까?”
“다른 것은 받지 않으시며 오직 꽃과 향만 공양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 올릴 꽃을 찾아 성안을 누볐지만 이미 사람들이 남김없이 가져가 수메다는 한 송이의 꽃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거리를 헤매던 수메다는 푸른 연꽃이 담긴 화병을 들고 가는 여인을 보았으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여인을 가로막았습니다.
“여인이여, 연꽃을 저에게 파십시오.”
“이 꽃은 대왕님께 드릴 꽃입니다.”
“여인이여, 은전 백 냥을 드리겠습니다. 그 꽃을 부처님께 올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꽃은 대왕님께 드릴 꽃입니다. 팔 물건이 아닙니다.”
수메다는 여인에게 두 번, 세 번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여인이여, 제가 가진 은전 오백 냥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그 꽃을 저에게 파십시오.”
애원하는 수메다의 손길에 여인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습니다.
“그럼, 이 일곱 송이 가운데 다섯 송이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그대의 뜻대로 하리라.”
“저도 부처님을 뵙고 싶으나 그럴 수 없습니다. 제 이름은 고삐입니다. 이 두 송이 연꽃을 제 이름으로 부처님께 올리고 저의 소원을 빌어주신다면 연꽃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그대의 소원을 말해 보십시오.”
“다섯 송이 연꽃을 위해 오백 냥의 은전을 아끼지 않는 당신은 분명 보통 분이 아닙니다. 다음 생에는 제가 당신의 아내가 되게 해주십시오.”
다섯 송이의 연꽃을 얻기 위해 수메다는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마침내 디빵까라 부처님께서 성에 도착하시자 국왕과 모든 백성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향을 사르며 꽃을 던졌으며 수메다도 다섯 연꽃을 던졌습니다.
“저도 당신처럼 부처님이 되게 하소서. 혼자만의 평안은 바라지 않습니다. 고통과 공포가 사라져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하소서. 하늘 위, 하늘 아래 모든 세계에서 중생을 건질 수 있는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하소서.”
수메다는 나머지 두 송이의 연꽃을 던지고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고삐라는 여인이 세세생생 저의 아내가 되게 하소서.”
순간 정적이 감돌며 눈을 뜬 수메다는 자신을 향하고 있는 많은 시선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던진 푸른 연꽃 송이가 부처님의 머리 위에 일산처럼 펼쳐지고 두 송이는 어깨에 드리워져 있었으며 걸음을 멈춘 디빵까라 부처님께서 부드러운 시선을 던지며 수메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놀라지 말라. 그대는 과거 생에 수많은 지혜와 복덕을 쌓은 사람이다. 그대는 오랜 세월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고 청정한 계율로 자신을 바로 세우는 등 수없는 삶 동안 복덕을 쌓으며 고통에 울부짖는 이들을 돌보며 보낸 사람이다. 그런 까닭에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수메다는 감격하여 성스러운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땅이 질척거렸으며 수메다는 옷을 벗어 덮었지만 진흙을 다 가리기에는 부족하여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쳐 남은 부분을 마저 덮고서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이곳을 밟고 지나가소서.”
“사람의 머리카락을 어찌 밟겠는가.”
“오직 부처님만이 그러실 수 있습니다.”
“백 겁의 세월이 흐른 뒤 그대는 사바세계에서 여래, 무소착, 지진, 등정각이 되어 사까무니라 불릴 것이다.”
멀어지는 디빵까라 부처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수메다는 말하였습니다.
‘나는 반드시 부처님이 되리라. 짙은 어둠이 끝나면 태양이 솟아오르듯 나는 반드시 부처님이 되리라.’
깟사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을 때에는 그분의 처소에서 조띠빨라라는 이름으로 청정한 범행을 닦았으며 이 세상의 목숨을 마치고 도솔천에 태어났습니다.
선행을 많이 닦은 이들이 태어나는 도솔천의 사람들은 4유순의 키에 아름다운 외모와 생각만 하면 옷과 음식이 눈앞에 나타나며 인간세계의 사백 년이 하루 낮 하루 밤인 그곳에서 보살은 사천 년의 수명을 누리며 천인들을 교화하고 많은 이들의 존경과 찬탄을 받으며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느덧 늙음이 찾아왔으며 머리를 장식한 꽃들이 시들고 황금처럼 빛나던 피부가 윤기를 잃었으며 먼지도 묻지 않던 옷에 때가 끼고 기쁨을 잃은 눈빛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며 천인들은 보살이 도솔천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울부짖었습니다.
“존자여 더 이상 자비로운 모습을 뵐 수 없고 지혜로운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저희는 어떡하란 말입니까?”
“슬퍼하지 마세요.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도 언젠가는 지고 만답니다. 무상한 삶과 죽음의 거센 물살 앞에서 손을 놓지 못하고 울부짖는 건 애착과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그대들이 누리는 기쁨과 행복 역시 언젠간 그대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것입니다. 그날이 왔을 때 비탄과 공포에 떨지 않으려면 부디 육신의 허망함과 마음의 애착을 잘 관찰하십시오.”
다음 태어날 곳을 수메루 남쪽 잠부디빠로 정한 조띠빨라는 자세한 관찰을 위해 황금색 피부를 가진 신하를 불러 말했습니다.
“그대는 여러 차례 잠부디빠에 태어났으니 그곳의 산천과 나라, 종족과 국왕들을 잘 알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태어나면 좋겠습니까?”
그는 잠부디빠의 강성한 나라인 앙가, 마가다,  꼬살라, 왓지 등 16개국을 추천하였으나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습니다. 보살이 흡족해하지 않자 신하가 잠시 당황하더니 환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제가 잊은 곳이 있습니다. 태양의 종족인 사까, 옥까까왕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 까삘라왓투가 있습니다. 그곳은 히말라야 산록에 펼쳐진 드넓은 평원과 아름다운 숲 그리고 백성들은 너그럽고 화합이 잘 되며 그곳에 청정한 왕족의 숫도다나 왕과 아름답고 온화한 꼴리야 왕족인 마야부인은 여러 생에 많은 공덕을 쌓은 분입니다.”
깊은 선정에 들어 사까족의 혈통과 국토, 시기와 부모가 될 분을 자세히 관찰한 보살은 도솔천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귀신별에 달이 모습을 감추는 밤 나는 사까족 숫도다나왕이 다스리는 까삘라의 마야왕비 태에 들 것입니다.”
한편 깊이 잠이든 마야 왕비는 여섯 개의 이빨을 황금으로 치장한 거대한 하얀 코끼리가 허공에서 내려와 옆구리로 들어오는 신비한 꿈을 꾸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던 왕에게 왕비의 회임은 더없는 경사였으며 숫도다나왕은 네 성문에서 무차회를 열어 굶주린 이들에게는 음식을, 추위에 떠는 이들에게는 의복을 나눠주었습니다. 회임을 한 왕비는 몸이 무거워지거나 피로를 느끼는 일이 없었으며 걷고 서고 앉고 눕는 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으며 도리어 나날이 밝아지고 온화해지는 왕비의 얼굴만 보면 오래 앓던 사람도 병이 다 나았습니다.
기원전 624년 사월 초파일 샛별이 유난히 반짝이고 동쪽 하늘이 파르스름하게 밝아오고 새들이 합창을 시작했습니다. 비단처럼 고운 풀잎을 밟으며 가볍게 동산을 거닐던 마야 왕비는 한 나무 아래 멈췄으며 손을 내밀어 나뭇가지 끝을 잡는 순간 대지가 흔들리고 구름 없는 하늘에서 붉고 푸른 꽃비가 쏟아졌으며 놀란 시녀들이 서둘러 나무 주위로 장막을 치자마자 왕비는 산통도 없이 선 자리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레바퀴만큼 큰 연꽃이 땅에서 솟아올라 아기 발을 받들었으며 천지가 진동하고 삼천대천세계가 밝게 빛나고 사방에서 몰려온 천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홉 마리의 용이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을 뿌려 아기를 목욕시켰으며 하늘에서는 꽃비가 쏟아졌습니다.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난 아기는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당당하게 말하였습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내 오직 존귀하나니
온통 괴로움에 휩싸인 삼계三界 내 마땅히 안온하게 하리라.
거룩하신 부처님
무한한 지혜와 자비의 빛으로 저희들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지난날 무명의 구름에 가리워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지은 잘못을 참회하옵니다.
오랜 세월동안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은 인과의 도리를 알지 못하여 갈 길 몰라 헤매었나이다.
이에 바른 법을 만나 진실한 믿음으로 귀의하오니 그 공덕으로 업보의 무거운 짐을 벗고 해탈의 밝은 빛을 찾아 자비의 품에 들게 하소서.
세간의 등불이시며 온갖 공덕으로 중생을 인도하시는 거룩하신 부처님.
저의 이 기도 공덕을 회향하오니 유정·무정 모든 생명과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행복하도록 한량없는 가피를 내리셔서 다 함께 성불하여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