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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의 꿈과 빛이 서린 처處·인人·서書

한용운의 꿈과 빛이 서린 처處·인人·서書


장소·사람·책으로 재조립한 ‘만해정신’의 결정판



박경희
중도기획 디자인실장


『한용운의 꿈과 빛이 서린 처處·인人·서書』
동국대학교 만해연구소 편찬
222쪽 | 판형_240*320mm
값 50,000원
불광출판사 펴냄


 


우리가 알지 못한 만해 한용운에 관한 이야기
시인·선승·문사·개혁가·독립운동가·자유인으로서
만해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재조명하다!


1925년 여름, 한용운은 강원도 내설악 오세암에 머물며 88편의 시를 완성했다. 이듬해인 1926년 5월 20일, 이 시들은 회동서관에서 『님의 침묵』이라는 한 권의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님의 침묵』은 단순한 서정시집이 아니다. 식민지 시대의 이별과 상실, 민족적 저항의식, 불교적 깨달음과 구원의 세계를 하나의 시적 구조 안에 결합한 연작시집이다. 표제시 「님의 침묵」을 비롯한 88편의 시에는 한용운이 평생 품어 온 사유와 질문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설악산과 금강산의 산사에서 이어 온 수행, 불경과 동서양 고전을 향한 탐구, 불교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개혁의 꿈, 3·1운동과 옥중투쟁, 독립과 자유에 대한 신념, 우리말과 민족의 미래를 향한 고민이 오랜 세월 축적되어 한 권의 시집으로 응결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님의 침묵』은 단지 ‘시인’ 한용운의 작품만은 아니다. 선승이자 사상가, 독립지사이자 자유인으로 살았던 한용운의 생애 전체가 담긴 정신적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입산과 출가, 불교 혁신과 독립운동, 선객으로서의 면모와 문사文士로서의 활동 등을 아우르며 만해의 생애와 사상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이름과 행적은 서로 분리된 이력이 아니다. 인간과 민족의 자유를 향한 열망, 낡은 현실을 바꾸려는 개혁정신, 자신이 깨달은 바를 삶으로 실천하려는 의지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시인 조지훈이 한용운의 진면목을 ‘혁명가와 선승과 시인의 일체화’에서 찾았듯이, 이 책은 어느 하나의 이름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한용운의 전모를 보여 준다.
또한 이 책은 만해 한용운의 삶을 단순히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가 머물렀던 장소(處), 삶과 사상을 주고받은 사람(人), 그가 읽고 쓰고 편찬한 책과 글(書)을 통해 한용운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백담사와 오세암, 건봉사와 금강산, 송광사·범어사·통도사에서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 이르기까지 한용운이 걷고 머물렀던 장소를 따라가며, 그를 가르친 스승과 함께 수행한 도반, 독립과 개혁의 뜻을 나눈 동지들과의 관계를 되살린다. 아울러 『조선불교유신론』, 『불교대전』, 『정선강의 채근담』, 『십현담주해』, 『님의 침묵』, 『경허집』 등 그가 저술하거나 편찬한 책을 통해 사상의 변화와 확장 과정도 살펴본다. 장소와 사람, 책과 글이 서로 연결되면서 만해 한용운의 생애는 보다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재구성된다.
이 책은 『님의 침묵』 간행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특별전을 위해 기획되었지만, 단순히 전시 내용을 소개하는 도록에 머물지 않는다. 한용운의 생애와 사상을 글과 자료, 사진으로 조명한 시각적 평전이자 하나의 ‘한용운 아카이브’에 가깝다. 한용운의 친필 이력서와 서간, 유묵과 원고, 저작 초판본, 『님의 침묵』의 여러 판본, 그가 머물렀던 사찰과 관련 인물의 사진 등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자료를 한자리에 모았다. 기존 연구 성과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사실관계를 비교·검토한 성과도 담았다. 매천 황현을 추모하며 남긴 친필 유묵 「매천선생」과 벽초 홍명희에게 보낸 서간문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의 여러 판본을 서로 대조해 차이점을 밝히고 오류를 바로잡은 점 역시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을 위한 일회성 기념물이 아니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한용운을 깊이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남겨지는 독립적인 기록물이다. 자유롭지 못한 시대에 자유를 말했고, 종교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던 시대에 불교의 개혁과 사회적 실천을 주장했으며, 우리말과 민족문화가 억압받던 시대에 모국어로 사상과 사랑을 노래했다. 또한 독립과 인간의 존엄을 위해 끝내 타협하지 않았던 사람이 한용운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가 한용운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가 과거의 위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삶과 글 속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자유와 평화, 사랑과 저항, 깨달음과 변화를 향한 치열한 고민과 실천의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