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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화의 방향성
김호귀 / 동국대 선학과 교수

1. 현대사회의 진단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하여 참으로 다양하고 개성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몇 가지 특징으로는 첫째는 인공화로서 고도한 기술의 발달과 도시화와 인공이동 및 인공억제 그리고 개성과 인간성의 중시 및 에너지 확보와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의 급변 및 교통의 고속화 등을 들 수 있다. 둘째는 정보화 사회로서 정보기관의 보급과 생활문화의 급변 및 노동형태의 변화와 노동환경의 기계화 그리고 교육관련 제도 증대와 교육의 질적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셋째는 고령화로서 가족제도의 변동 및 의료혜택의 변용과 생활보호혜택의 충족 그리고 평생교육과 교육기회의 확충 및 노인복지의 관심과 지역공동의 대책 등을 들 수 있다. 넷째는 국제화로서 외국의 문화 이해와 문화의 공유 및 한국전통문화의 이해와 빈번한 교류로 인한 사유의 보편화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불교의 구제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전법과 포교 및 불교 본래의 정신에 충실한 활동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곧 불교에서 말하는 구제의 이념을 보다 확실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곧 현세이익에 해당하는 개별적인 고뇌의 극복과 일시적인 악의 제거를 무시할 수가 없다. 이에 따라서 교화구제 곧 현세에 직면한 문제 가운데 해결 불능한 문제를 영원히 전인격적으로 해결하여 자기실현 및 자기통찰의 심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불교의 구제행위라는 것은 현세를 부정적으로 보는 욕망과 감정으로부터의 탈각 곧 금욕정진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행위는 자칫 예토를 멀리하고 정토만을 추구하려는 중생심의 입장에서 보면 수행을 복덕의 개념이라는 일방적인 방향으로 간주하려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서 현세긍정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조화의 회복 곧 불행과 고뇌를 치유 및 개인적인 운명의 개선과 이상향에 대한 조화로운 관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종교가 지향하는 현세의 행복에 대한 기본적인 요건이기 때문이다.


2. 교화의 근본성격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 수행의 종교라는 이미지가 강하여 수행체험을 중시하는 종교로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특히 출가수행자의 경우 엄격하게 난행고행을 인내하여 신비체험을 경험했다는 일화가 대중매체 및 서적을 통하여 널리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수행의 종교라는 이미지는 달리 개인의 종교라는 말로도 이해되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수행에 의한 신비체험으로 그 공덕에 감화된 사람들도 실로 많다. 그러나 개인적인 수행체험은 일반의 대중들과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결코 개인의 체험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만약 이러한 개인적인 수행체험자만을 불교인이라 부른다면 그 이외의 사람들은 불교인이 아니라는 말이 되어버리고 만다.

오히려 이 수행체험을 끝낸 자가 그 이후 어떻게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를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수행을 통하여 체득된 발상은 사회에 대한 하나의 안목이기도 하므로 개인적인 것으로서의 종교가 나아가서 대중과 관련된 종교의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과 대중이 상즉하지 않으면 숭고한 종교성이 완전한 형태를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보아도 불교가 사회성을 지니지 않았다면 오늘날까지 이와 같은 모습으로 유지 내지 발전할 수가 없었다. 이런 점에서 불교가 적극적으로 사회성을 발휘해 온 점이야말로 그 진가가 크게 개화하였고 또 앞으로의 발전에도 관련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포교의 개념은 단순한 종교의 전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다 널리 바라보면 교화라는 말속에 잘 나타나 있다. 교화는 교도화익(敎導化益)으로서 사람들을 가르쳐 이끌어 올바른 길로 향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사람들을 가르쳐 이끌어 감화시키고 선한 길로 귀착시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가령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말은 바로 그와 같은 정신을 잘 구현한 말이다.

이 말의 뜻이 만약 불교가 수행을 앞세우고 전법에는 그다지 무관심하다면 개인적인 체험에 기반을 두어 어디까지나 수행을 완성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을 교화한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행이라는 것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가 타인을 위해 힘쓰지만 결국은 자기의 완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곧 향상적으로는 자리에 해당하는 수행자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고 향하적으로는 이타에 해당하는 중생구제로 고통을 감수하는 소위 교화와 구제를 실천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곧 타인과의 관계에 의한 자기완성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자리이타의 보살행을 실천함으로써 자기완성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3. 교화의 방식
그 대표적인 실천개념으로는 사무량심(四無量心)과 사섭법(四攝法 곧 四攝事)이 있다. 사무량심은 네 가지로서 이타의 마음을 말한다. 곧 사무량심이란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과 타인의 고통을 없애 주는 것과 타인의 즐거움을 더불어 기뻐하는 것과 희비고락 등을 초월하여 평정한 마음을 지니는 것을 말한다. 나아가서 사섭법은 타인을 불도에 끌어들여 제도하기 위한 네 가지의 방법이다. 곧 사람들에게 자비심 가득한 마음으로 접하면서 재물이나 석존의 가르침을 잘 베풀어주는 것과 사람들을 접할 때 항상 온화하고 우아한 말을 하는 것과 항상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몸으로 보여주고 말로 표현하며 마음으로 생각하여 실천하는 것과 상대방과 항상 같은 입장에서 서서 자타의 구별이 없이 일심동체의 상태에서 상대방에 다가가 협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사실단(四悉壇)으로서 불교에서 교화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세계실단은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취미와 욕구 및 취향을 잘 파악하여 그들의 관심을 이끄는 행위이다. 컴퓨터를 좋아하는 경우는 컴퓨터를 통해서 마음을 나누고 등산을 좋아하면 더불어 등산하면서 관심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대치실단은 세계실단을 통해서 임의로워진 사람들을 행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고민을 상담하고 그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면서 점차 그들에게 이익이 되고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켜 나아간다.

일반적인 학업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방법을 알려주고 보다 향상적인 수준이 되도록 북돋아주며, 널리 친구문제로 마음 쓰는 사람에게는 친구를 대하는 방법과 친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면서 더불어 생활하는 중요성을 터득하게 한다. 각각위인실단은 보다 심화된 방법으로서 상대방의 개별적인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보다 섬세한 마음의 문제까지 신경을 써서 보호하고 이끌어주며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일종의 개별적인 맞춤식 문제해결법이다.

개인의 가족관계라든가 사업문제 및 타인에게 말 못하는 고민을 함께 생각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상호간의 부조와 이익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개인적인 신뢰관계를 형성하여 사람과 사람으로서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것이다. 이로써 제일의실단에서는 본격적으로 불법을 알려주고 일깨워주어 함께 불교의 신행생활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미 다져진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적인 면모를 최대한 활용하여 불교적인 생활방식을 직접 터득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비로소 자리이타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이념이 실천되기에 이른다. 나아가서 여법하게 불자로서의 출발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뿌듯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의 종교적인 전파의 모습은 참으로 복잡하다. 더구나 자파의 종교적인 신념만을 앞세운 무차별적이고 공격적인 종교의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그것은 실로 종교전쟁의 또다른 모습일 뿐이다. 종교는 전쟁이 아니다. 본래 상생의 정신에 바탕 한 인류의 정신문화로서 휴머니즘의 표현으로 출발하였다. 그런데도 현금의 작태는 일방적이고 도그마적인 모습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행여나 불교의 모습은 그렇게 닮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