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열 / 수필가너무 뜨거워서 좀처럼 식지 않을 줄 알았던 여름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 몸을 식히며 우리 곁에 온다. 푸른 하늘도 한 자락씩 높아져서 구름이 힘에 겨운 듯 드문드문 보인다. 걸음마다 맥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이 발등을 구른다.
세월은 인간이 소비하는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흐르는 세월이 있어 지나간 시간은 추억으로 그리움으로 남고, 우리는 늘 새로운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세월이 흐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멘트처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는 여름을 흘려보내고 가을을 맞이했다. 또 하나의 세월을 넘겼다고 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고향을 떠나 정겨운 가을 풍경을 잊고 살지만 가을은 그 자체만으로 풍족하다. 초가집 지붕에 뒹구는 호박이 없어도 들녘에 타작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가을은 가을이다.
생각을 넓혀보면 삭막한 도심에서도 넉넉한 가을을 만나게 된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으면 열어 놓은 베란다 창으로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실려 온다. 달빛이 바람을 따라와 베란다에 있는 어린 군자란을 어루만진다. 그러면 유독 어머니의 사투리가 그리워진다.
아파트 마당에도 고추가 점령했다. 햇살에 제 몸을 그슬리려고 벌겋게 누워 있는 고추가 시골 마당 풍경을 연상케 한다. 화단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도 봄보다 몸짓이 덤턱스럽게 컸다. 어느 노인이 심었는지 모르겠지만, 아파트 화단에 외롭게 뿌리를 내린 감나무는 노란 감을 훈장처럼 매달고 있다. 단지 내 슈퍼들도 여느 때보다 과일 상자가 많이 보인다. 추석 대목을 보려고 과일 뿐만 아니라 선물용 상자도 잔뜩 쌓아 놓았다. 보고 있는 내 마음도 풍성해진다.
가을은 풍요로움이다. 들녘은 제 몸보다 큰 살찐 곡식을 매단 벼가 차지한다. 멀리 있는 산중턱의 나무들도 이름 모를 열매를 달고 있다. 거리의 나뭇잎들도 온몸을 뜨겁게 달궈 한껏 자태를 뽐낸다. 밤이면 어둠살도 빨리 두터워지고, 어둠살을 헤집고 다니는 달빛은 더욱 노란색으로 물든다. 잔뜩 살이 오른 달빛은 까치걸음을 종종 거리며 새벽녘까지 노닥거리며 거리를 활보한다.
가을에는 삼라만상이 풍요로운 결실을 맺듯 우리도 충만해진다. 일상에 쫓기다보면 나를 잃어버리고 나를 돌보지 않고 산다. 바쁜 일상에 밀려 가장 소중한 나를 잃어버린다면 그것보다 불행한 일은 없다.
하지만 가을에는 거울 앞에서 얼굴을 보고 옷매무새를 만진다. 다른 계절에는 아침에 거울을 보지만, 가을에는 저녁에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선다. 봄에는 겉모습을 비춰보지만, 가을에는 마음을 비춘다.
마음을 보는 시간은 나를 발견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나를 만나는 시간은 겸허한 반성을 통해 나를 대면(對面)한다. 나를 대면하는 시간은 내면(內面)의 충실을 기할 뿐 아니라, 삶을 창조하고 나를 아름답게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는 나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친구도 나 자신이다. 나를 구할 수 있는 힘도 내 안에 있으며 나를 해칠 수 있는 악도 내 자신이다.
소크라테스도 강조한 것처럼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삶의 근본이다. 나 자신을 알면 분수를 알고 검소한 생활을 한다. 나 자신을 알면 도를 넘지 않고, 거짓 학력 따위의 유혹도 없다. 남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나를 아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나를 알면 겸손해지고 관용과 여유를 가진다.
가을이 여름을 밀고 왔듯이 이 가을도 마지막으로 붉게 타고 나뭇잎을 허무하게 떨어뜨려야 하는 운명에 있다. 산과 나무도 모두 자랑처럼 가지고 있던 숲과 잎을 벗어버려야 한다.
화려한 일생을 마감하는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쓸쓸한 정서를 담는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쓸쓸함만 있단 말인가.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씨를 흩날리는 생명체는 다시 태어나기 위한 자연의 이치다.
그 사나운 폭풍이 있었기에 거목이 큰 것을 알고, 그 뜨거운 여름이 있었기에 선선한 가을을 안다. 지금 가을을 맞이하여 열매를 맺고 그 수확의 기쁨을 뚝뚝 떨어내는 자연의 섭리가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이 스스로 생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광경에 허무와 쓸쓸함을 휘적인다. 하지만 허무의 하강은 봄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기 위한 자연의 본능이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화려하고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내려가야 하는 아픔도 있다. 때로는 그늘이 드리우고 가난과 고통이 따른다. 더욱이 삶이란 기쁨을 주는듯하다가 슬픔이 밀려온다. 순식간에 밀어닥친 가정의 불행, 친구와 헤어짐이 우리의 의지를 흔든다. 절망이 오고 예기치 못한 질병이 우리를 괴롭힌다. 이 모두가 우리를 비틀거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의 끝은 성공이라는 말처럼, 좌절의 늪은 우리를 영원히 가두지 못한다. 슬픔을 딛고 일어나는 아름다운 존재가 인간이다. 실패를 찬란하게 극복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 어느 꽃보다 아름답다.
가을은 우리의 실패와 슬픔조차도 치유할 수 있는 쓸쓸함이 있어 좋다. 텅빈 충만이 삶의 진리를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어 감동적이다.
그래서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자태가 오만하지 않고 천박하지도 않은 가을을 좋아한다. 가을은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청순하고 숭고한 이미지다. 마치 고결한 인격을 지닌 선비의 아내 같은 계절이다.
이 가을에 헐벗은 알몸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나도 맑은 하늘로 뻗어 올라가 삶에 초연한 자세로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다. 맑은 하늘 아래 여백이 많은 나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