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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메 우리 어메

이효립
연극인


워~메!
어찌 저리도
밝을꼬 !

휘영청 밝은 달이
버적거리는 사람들 마음에
싸악허니 불을 밝혔구먼 !
허기사, 그래야 숨통이 트일거구만!

고향에서 보는 것은 어느것 하나 안 이쁜것이 없네요
그 전에는 그것은 그 자리에서 이뻤을란가?
저것이 저렇게 이쁜지 몰랐는디…
두고 두고 가슴에 담을라고,
욕심내서 보지 않아도 이제는 저절로 들어오네요.
달빛도, 내 어릴 적 뛰놀던 대밭도, 우리아베골 패인 이마의 주름도,
시커멓게 다 타들어가 숱 검댕이 된 우리 어메 가슴속 까지도,….


유난히 꽂 좋아라 허는 우리 어메 손질에 마당한가득, 족히 칠팔십 가지도… 아마도 더 되어 보이지만, 집에 한번 내려가면 난생 처음 보도 못한 이름 모를 희한한 꽃가지들을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때때 마다 우리집 마당은 꽃잔치가 열린다.

2004년 그리스 희랍비극 축제에 아시아에서 우리나라가 대표로 초청되어 그리스 옆에 있는 싸이프로스라는 곳에 갔던 적이 있었다.
보름 일정에 공연은 하루에 2회 이틀에 4회로 짜여져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일주일 남은 여정의 시간을 거의 호텔근처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아침 일찍 식사로 나오는 샌드위치와, 망고쥬스, 연필과 노트, 그리고 꽃씨를 받을 때 쓰려고 만들어 가지고온 한지 주머니를 가방에 꼼꼼히 챙긴다. 마치 쌩쌩하고 잘익은 과일을 한손에 들고 어떤 맛일까를 기대 하는, 그 설렘으로 호텔문을 나선다.

울긋불긋 원색적인 꽃들의 향연이 나를 유혹 하고 나는 그 이름모를 꽃들을 따라 콧바람을 불면서 그 작열하는 지중에 태양아래 미친듯이 쏘다녔다.
그렇게 얼굴이 꽃들과 함께 새빨게질 때까지 싸돌 아다니며 받아온 씨앗들을 보물처럼 발코니에 한지를 깔고 널어 말린다. 그리곤 괜시리 베시시 베어나 오는 웃음에 덤으로 주워온 이름 모를 과일을 한입 베어 물고 입 안 가득 고이는 과즙의 달콤함, 아~, 눈부시게 맑은 햇살의 평화 그자체이다. 나는 그렇게 동네를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꽃씨 받으러 다니느라 거의 모든 일과를 소진했다. 그래도 고단한 줄을 몰랐다. 아니 오히려 더 신이 났지….
받은 꽃씨를 발코니 볕 잘 드는 곳에 두고 흐뭇하게 바라보며 그것을 받아들고 아이마냥 좋아할 우리 어메를 떠올렸다.
엄마의 지극한 돌봄에도 어느 것은 살았고 어느 것은 싹도 나지 않았다. 기후가 맞지 않거나 토양이 맞지 않은 까닭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 씨앗은 지금도 마당 어디에서 해마다 피었다 진다.
내가 한 번씩 시골집에 갈 적마다, 엄만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서 나에게 이야기하신다.
"야, 야, 이거 봐라! 누가 그러는디, 이것이 음식 헐 때 넣으면 향도 나고 맛도 좋다고 하드라, 그래서 고기 구울 때 넣었더니 고기 냄새가 싹 가시더래니 께, 꽃은 얼메나 이쁜지 아냐?”
“엄마, 그렇게 좋아? 신기해 죽겠어?”라고 물으면,
“그럼, 이것이 얼메나 귀한 것이간디이~ 아마 이런 꽃은 우리나라에서 나밖에 귀경 못했을 것이여.”
아이만양 웃는다. 행복하시단다.
‘딸 잘 둔 덕에 남들은 귀경도 못한 꽃구경을 하니 오죽 좋으냐 말이다.’하시며 말이다.
가끔 한 번씩 들러 손을 볼 때마다 손톱이 다 달아 이제 밭일은 그만 허라고, 자식들 성화가 미안 했던지 올해는 일찍부터 빨갛게 손톱에 꽃물을 들였다, 그러면 갈라진 손톱이 눈에 덜 띤다고 생각하신 모양일게다. 아마도….
소담스럽게 가을을 기다리는 소국을 보니 "국화차가 여자 헌티는 몸을 따숩게 헌다드라" 하시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이 소국을 보니 이제야 그 말의 의중이 무언지…, 손수 당신이 만들어 먹이고 싶어, 그래서 그리도 애를 쓰신 것이다,
우리 에메의 갈라진 손등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그 하늘이 나를 만들었고 지금도 가슴 쓸어내리며 나를 살게 하신다.
퍽퍽하고 버적거리는 내 삶을 앞뒤로 쓸어내리며 나를 살게 하신다.
우리 어메 빛같이 고운 손으로 나를 살게 하신다.
가을볕은 그렇게, 덜 익은 곡식과 풋풋하게 심지를 굳히는 김장거리들을 튼실하게 만드느라 제법 여름 날씨보담도 더 악착스럽다.
온 세상을 빛으로 가득 채운 보름달을 보며 빗낱 같이 성깃성깃하게 흩뿌려진 내 어머니의 흰 꽃핀 머리카락을 보며 진심으로 섬기지 못함에 죄스러움 을, 두 손 모아 자식위해 비시는 손처럼 나도 빌어본다 .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부디,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