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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천국 만들기

승한 스님
북한산 중흥사


인생의 본질은 뭘까?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없으면, 삶은 형성될 수 없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삶이 되고 역사가 되고 인생이 된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은 어떤가? 대부분 본질을 잃고 산다. ‘이 순간’을 잃어버린 채 과거와 미래만 오가며 분주하게 산다.
인생의 본질을 놓치고 사는 것은 행복의 본질을 놓치고 사는 것과 같다. 있지도 않은 과거를 붙잡고 아옹다옹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붙잡고 근심 걱정하다보니 정작 누리고 살아야 할 현재의 행복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행복하게 사는 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인생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살면 된다. 두 눈 딱 감고 바로 지금 현재만 직시하고, 느끼고, 누리며 살면 된다.
실제로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념만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라. 1초 전은 이미 지나가버렸으니 없고, 1초 후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지 않은가. 또한 아직 1초 후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1초 후는 이미 내 앞에 와 있어버리니, 어저께다 내일이다 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현재도 관념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현재라고 딱 짚는 순간, 현재는 이미 과거로 소멸해버린다. 금강경에서는 이를 가리켜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 과거의 마음도 인식할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인식할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인식할 수 없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답은 더욱 분명해졌다. 인생의 본질은 결국 ‘이 순간’도 아닌 ‘없음’이다.
허면, 지금 바로 현재 내 눈앞에 보이는 사실들은 무엇인가? 오로지 잔상殘像일 뿐이다. 실재로는 없는데 우리들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안이비설이신의眼耳鼻舌身意)’이 있는 것처럼 빚어낸 잔상이고 허상일 뿐이다.
이것이 도통이다. 세상에 ‘있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모든 현상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도통인 것이다. 이 이치를 금강경에선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 모든 현상세계의 존재는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렇게 볼 지니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토록 쉬운 도통을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인생의 본질이 ‘없음’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살기 때문이다. 1초 전은 이미 가버렸으니 없고, 1초 후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고, 1초라고 하는 현재의 순간은 1초라고 하는 그 순간에 이미 지나가버렸으니 도무지 ‘있음’이라고 할 것이 없는데도 우리들은 ‘있음(있는 것 같음)’의 잔상에 홀려 ‘없음’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음 있음 있음’ 하고 아웅다웅하며 아드레날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도통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없음’만 체득하면 된다. 체득이 어렵다면 ‘감’만으로라도 ‘없음’을 느끼고 살면 된다. 인생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그 간단한 이치를 놓치고 살기 때문이다. ‘없음’이 삶의 본질임을 잊은 채 ‘없는’ 과거를 붙잡고 끊임없이 아웅다웅하고, 오지 않아서 아직 ‘없는’ 미래를 붙잡고 끊임없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현재다 하고 딱 짚으려는 순간 이미 과거로 소멸해버려 ‘없는’ 현재에 집착해서 시비분별하며 살다보니 우리네 삶이 무겁고 불행해지는 것이다.
해탈은 신비가 아니다. ‘없음’을 깨달은 마음, 도통한 마음, 그것이 해탈이다. 과거심 미래심 현재심이 없고, 모든 현상세계의 존재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는 것을 깨닫고 느끼는 것, 그래서 그 ‘있음’의 잔상에서 벗어나 ‘쉬면서 멈추고 보는 것’이 해탈이다. 그리하여 그 ‘없음’과 ‘쉼’과 ‘멈춤’의 느낌이 감으로 느껴지면서 그 순간 무엇인가 꽉 붙잡고 있던 마음이 탁 놓아지며 홀가분해지는 마음, 그것이 바로 해탈이고 해탈감이다. 순간순간의 관점을 바로 잡고 순간순간의 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그것이 바로 해탈이고 해탈감인 것이다.
해탈과 해탈감은 누구나 쉽게 맛볼 수 있는 삶의 원료다.
해탈의 시작은 ‘그냥 있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음속으로 ‘그냥 있는다’ 하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1초 동안 그냥 가만히 있어본다. 1초 동안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음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지 않은가. 1초 동안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이미 해탈의 문턱을 넘어선 것이다. 1초 동안 ‘그냥 있는다’가 되었다면 계속해서 그 1초를 연장시켜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있다. ‘지금 현재 여기(here & now)’에 집중하면서 지금 현재 내 몸(눈·코·귀·혀·몸·생각)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을 식주체識主體기능이라고 한다. 이 식주체 기능으로 인해 일어나는 느낌(물질·소리·냄새·맛·촉감·생각)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나도 없고 너(세상)도 없으니(아공법공我空法空)’ 걸림 없이 그냥 깨어 있으면 된다. 쉽게 말해서 원숭이처럼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의 벡터(vector) 놀음을 딱 멈추고 그냥 가만히 편하게 쉬면 되는 것이다.
치통을 생각해보자. 치통이 생기면 견딜 수 없다. 이빨이 아리는 건 물론 머리가 아파 잠도 잘 수 없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치과에 가서 아픈 이빨만 빼버리면 된다. 해탈도 마찬가지다. 원숭이처럼 분주한 마음을 탁 놓아버리고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
기실,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이 해탈-쉼, 멈춤, 그냥 있음 때문이다. 잠이 그것이다. 잠이 없다면 우리 인간뿐 아니라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은 1년도 살지 못하고 스트레스 때문에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가 잠을 자는 것도 그 휴식 공간-그냥 있음의 공간, 멈춤의 공간, 쉼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꿈에 시달린 아침보다 꿈 한 점 없이 숙면을 취한 다음날 아침이 훨씬 상쾌하고 기분도 좋고 하는 일도 잘 되는 건 그 이유다.
여기까지 되었다면 행복의 문턱을 많이 넘어섰다. 이제 이를 계속 지속시키고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사람은 계속 멈추고 쉬면서만 살 순 없다. 뭔가 해야 한다.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선 계속 뭔가 일하고 투자하고 생산하며 살아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지족知足이다. 범사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다. 세상은 99.9999%가 대 긍정이다. 무한 OK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우리는 0.0001%도 안 되는 마이너스적인 것에 걸려 시비분별에 집착하며 아옹다옹하고 산다. 자식이 속을 좀 썩이면 어떤가. 우선 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 개나 일곱 개가 아니고 다섯 개로 태어나줘서 얼마나 감사한가. 또 나쁜 짓거리는 좀 했지만 교도소에 가지 않아서 얼마나 좋고 교도소에는 갔지만 죽지 않았으니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세상 누구도 그 아이를 ‘좋다/나쁘다’고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순 없다. 다만 우리들은 그 아이가 그렇게 괴로움과 고통의 길로 가지 않고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 안내하고 역할 하는 행동과 지켜봄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들 대부분은 그 0.0001%에 걸려 모든 것을 ‘+/-’적 사고로 바라보고 평가하니까 내적으로는 고통이 일어나고 외적으로는 항상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행복의 비결은 이 ‘그냥 있음’과 ‘지족’의 바탕 위에서 세상일을 추구하고 구현해나가는 것이다. 고요하게 그냥 깨어 있다가 범사에 감사하는 대 긍정, 대 지족의 마음으로 일터에 나가 신나고 재미있게 일하는 것이다. 신나고 재미있게 일하니 하는 일 또한 잘 되지 않을 리 없다. 우리가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사는 것은 그 간단한 삶의 방법을 실천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일단 멈추고(쉬고) 그냥 있어봐라. 그 다음에 99.9999% 대 긍정의 마음으로 일터(세상 밖)로 나가 그 지평 위에서 일하고 추구하고 구현하며 인생을 창출해봐라. 이 세 스텝이 조화를 이룰 때 세상은, 나는, 나의 삶은, 해탈천국이 되고, 감사천국이 되고, 행복천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