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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연을 함께 이어가는 불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마음이 편안하면 세상은 넉넉해집니다. 그러나 마음이 불편하면 세상은 온통 혼란스럽고 번다합니다. 그래서 보리심菩提心을 잃지 않는 삶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이요. 번뇌煩惱가 일어나면 어디에 살아도 괴롭고 불편한 세상입니다.


오늘은 불현 듯 달력을 한 장씩 넘기다가 하루하루의 일정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일 년은 춘하추동春夏秋冬 4계절인데, 구분해 보면 24절기입니다. 절기는 보름 간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봄은 춘분春分이요, 여름은 하지夏至이며 가을은 추분秋分이고 겨울은 동지冬至입니다. 어제가 추분이었으니, 금년에도 벌써 가을입니다. 조석으로 창문을 열어 놓으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이미 처서處暑와 백로白露를 지나면서 가을이 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면 겨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금년에는 사계절이 느낄 새 없는 시간 속에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봄인가 싶으면 가을이고, 겨울이 되어버리는 세월의 늪 속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시간인데, 청년기에 더디게 가던 그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고 있는 것일까요.


모두다 마음에서 시작되어진 시간들이 그냥 그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출요경』에 “낮과 밤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세월의 빠르기는 번개와 같으니 사람의 목숨 빠르기도 그러하다” 하였습니다.


보조국사는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침몰된 여객선 세월호의 희생자가 되어 숨죽이고 있을 것인가요. 오천년 역사 속에 우리 선조들은 강대국 사이에서도 백의민족의 혼과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백성입니다. 이젠 힘차게 일어나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인천에서는 아시안게임으로 봉송되어 온 성화가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생명력 있는 삶이 되어 24시간 쉬지 않고 타오르는 불꽃처럼 힘차게 살았으면 좋겠고, 폐막식 날 ‘휙!’ 하고 꺼지는 불꽃이 되어서 끝맺음을 잘 가졌으면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잠자듯,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근심 걱정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은, 번뇌 없는 인생이라 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땐 천년을 살 것처럼 힘차 게 일어나고 저녁에 누울 때는 ‘오늘밤이 마지막 밤이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분명히 해 두지 않으면, 훗날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후회한들,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이며 무익한 인생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이라 하였습니다. 부모형제 처자권속의 인연은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다독거리는 연민의 정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루에 40여 명이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타고난 목숨보다 먼저 가는 것입니다. 젊음과 건강과 목숨이 쉽게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다가다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수없는 인연因緣들이 숙성되어서 발현된 생명生命입니다. 모든 종교가 자살에 대해서 경계하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생사生死가 일여一如라고 하는 불교佛敎에서는 생명을 앞당겨서 세상 떠나가는 문제를 수없이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삶을 잘 살고 난 뒤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떠나서 극락세계極樂世界나 천당天堂에 태어날 수 있는 복력福力을 준비해놓았다면 문제될 것 없습니다. 그러나 나고 죽는 문제를 가난한 시절, 계획도 없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고생하던 우리네 어른들처럼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았다면 생사가 둘이 아니니 언제든지 사바세계를 떠나도 되겠지만, 본전치기도 못한 인생을 살아놓고 앞당겨서 세상을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보다도 못한 세상으로 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일찍 떠나가고 싶으면 잘 살아야 합니다. 인과를 믿고 지혜로운 이는 함부로 세상을 마감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열심히 살면 그곳이 극락정토이기 때문입니다.


윤달이 되면 사찰마다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를 지냅니다. 3년마다 한번 씩 윤달에 예수재를 지내는 것은 평상심으로 수행정진 하라는 것을 일깨우기 위한 방편입니다. 이를 통해서 날마다 불교적인 삶이 필요합니다.


옥불탁玉不琢이면 불성기不成器요 인불학人不學이면 부지도야不知道也입니다, 아무리 좋은 옥석도 갈고 다듬지 않으면 옥의 모습을 드러 낼 수가 없고, 아무리 사람이라도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하면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형상을 했으나 인간답지 못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자들은 생전에 미리 닦는 재를 올리고 있는데,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에 동참하여 그 공덕이 세상의 모범이 되기를 바랍니다.


구룡산 자락에서 천막법당을 친지도 벌써 30년이 되었습니다. 그 3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다보니, 마치 부엌에서 부침개 하나 부치는 시간에 불과 했습니다. 30년은 부침개 한판 뒤집다가 놓는 시간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찰라지간刹那之間이라고 표현한 모양입니다. 그런 시간들을 견줘보면 1천년, 2천년, 3천년이라는 시간도 결코 길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인생도 그러합니다. 각자의 삶을 불판 위에 올려놓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적당한 온도에서 구우면 맛이 있을 음식이었는데, 구워지기도 전에 뒤집고, 새까맣게 탈 때까지 내버려 두면 먹을 수 없게 됩니다.


한 여인이 눈이 짓물러서 실명할 위기에 처해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연유를 묻습니다.
그 여인이 하는 말이, 아들이 둘 있는데 큰아들은 짚신 장사이고 작은아들은 우비장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궂은 날은 큰아들 짚신 걱정이고 좋은날은 작은아들 우비 안 팔릴까봐
걱정, 노심초사 마음 조이며 살아왔다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네 어버이의 근심과 걱정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르십니다.
“날이 좋은 날은 큰아들 짚신 잘 팔릴 걸 생각하고 비 오는 날은 작은아들 우비 잘 팔리겠다고 생각하면 날마다 기쁘고 즐거울 것인데 어찌 해서 부정적인 생각으로 목을 매느냐?”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 날이 좋은 날은 짚신 잘 팔릴 것을 생각하고, 비 오는 날은 우비 잘 팔릴 것을 생각하더니 며칠 만에 짓무른 눈이 싹 나았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삶도 그러하여 생각여하에 있음을 비추어 보았으면 합니다.
믿음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마음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듭니다. 한 제자가 부처님께 여쭙니다.


“부처님! 의심은 어떤 것을 의심이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개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 의심이니라.”


‘나는 너를 의심 안 해’ 말하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래如來는 진어자眞語者, 실어자實語者, 여어자如語者, 불광어자不.語者, 불이어자不異語者의
삶을 살면 따로 참말이니 정말이니 하는 수식어가 필요 없습니다. 믿음은 긍정적인 삶의 보리심을 일으키고, 의심은 부정적인 삶의 삼독심三毒心인 번뇌煩惱를 일으킨다는 것을 잃어버리지 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른쪽 귀로 듣고 왼쪽 귀로 흘리며 사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좋은 도량에서 좋은 도반道伴과 함께 탁마琢磨하며 지낼 수 있다는 것은 말법시대末法時代에 큰 복福을 지닌 불자인 것을 전하고자 합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