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호
후애마이(Who am I)연구소 소장 / 여래사 거사림회 총무이사 / Blog.daum.net/hyun-jaeho
▶ 나 세상 살아온 얘기를 소설로 쓰면 몇 권이야 ~
▶ 난 진짜 세상 경험을 많이 했다구 ~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 경험을 많이 했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세상 경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 경험이라는 것이 뭘까요? 아니, 세상이라는 단어의 깊은 뜻과 의미는 뭘까요? 10월호에서는 ‘세상’이라는 단어를 새겨봄으로써 독자 여러분의 삶에 지혜가 가득하게 되시길 서원해 봅니다.
1. 세世라는 글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인간 세世’입니다. 인간을 뜻하는 세는 본디 ‘.’로 표현 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世’로 변형 되었죠. 사람을 뜻하는 한자漢字는 여러 개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 의미가 다르죠. 그런데 ‘세’는 어떤 의미로 사람을 뜻하게 되었을까요?
. = 世 = (열 십十) + (열 십十) + (열 십十) 입니다.
‘열 십十’자가 세 개 모여서 만들어졌으니 30을 뜻합니다. 우리는 한 세대를 30년으로 표현합니다. 사람의 수명이 100년이라 하더라도, 한 평생 동안 사람을 만나고, 일을 꾸미며, 이 사회에 역량을 보탤 수 있는 기간을 30년으로 보는 것이지요. ‘인간 세世’ 말고 ‘대 세世’라고도 하지요. 역시 ‘대’는 한 세대를 뜻하는 것으로서 30을 뜻합니다. 따라서 사람을 뜻하는 다른 한자漢字와 달리 ‘세世’는 인간의 삶, 삶 전체, 부지런히 일하는 삶의 기간 등 사람의 한 평생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2. 세상世上이란?
‘세상世上’이란 한 세상을 살면서(세世) 30년간 (또는 평생)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또는 나머지 삶)을 얹어 놓을 만한 반석(일一)을 만들어 놓았는지 결정된다는 의미라 하겠습니다.
실제로 ‘윗 상上’의 밑에 있는 ‘일一’은 하나를 뜻하는 ‘일’이기는 하나 광의적 의미에서는 ‘모은다’라는 의미와 모여서 쌓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세상世上’에 사용된 상上은 그렇게 평생 쌓아온 결과 위에서, 그렇게 평생 모은 결과를 바탕으로 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모은다는 의미가 결코 ‘재물’이 아니라는 것에 대하여 명심하여야 합니다.
예컨대 재물을 모으기 위해 재물과 돈을 곁에 두고 싸우는 형상을 나타낸 한자漢字가 있습니다.
바로 ‘천할 천賤’입니다.
천할 천賤 = 재물 패貝 + 창 과戈 + 창 과戈
창이 두 개 모여 잘잘못을 가리며 재물을 차지하려는 형상. 그것이 세속의 실태이며 천하디 천한 행동이라 꾸짖는 한자가 바로 ‘천할 천賤’ 인 것입니다.
이렇듯 철학이 있는 한자가 재물을 반석이라 할 리 없지 않습니까? 평생 모았다는 것은 ‘덕德’인 것입니다. 얼마나 한평생 덕(특히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는 음덕陰德)을 쌓았는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世上’은 개인의 삶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단어이겠습니다.
3. 세상世相이란?
세상世相이란? 다수의 세상世上이 모여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이름하여 세태世態이지요. 사람들의 삶(세世)이 서로(상相) 모여 만든 결과가 바로 세상世相입니다. ‘상相’은 ‘서로 마주한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뒤엉키다, 구겨지다, 이끌다 등의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둘 이상 모여서 누군가 양보하거나, 이끌거나 그렇지 못해서 구겨진 모습 등을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라는 의미에서의 세상世相이 그것입니다. 따라서 앞서 설명된 세상世上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세상世上이 주관적이라면 세상世相은 객관적인 것이요, 세상世上이 개인의 결과를 뜻한다면 세상世相은 그러한 개인들의 집합체를 뜻합니다.
4. 세상世上과 세상世相은 어떤 관계일까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世上을 바탕으로 세상世相에 나갔을 때 세상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역량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자신의 세상世上을 만들고, 다시 그렇게 재 구성된 자신의 세상世上을 바탕으로 세상世相에 다시 나가는 반복된 삶을 뜻하는 것이 세상世上과 세상世相인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두 가지 있습니다.
세상世上 그리고 세상世相
① 자신의 세상世上을 만드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② 세상世相과 어우러지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모르는 것
결국 그 두 가지를 다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삶이 곤궁해지고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결국 모든 종교와 경전에서는 이 두 가지를 가르치려고 수많은 가르침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르침을 들어도 알아듣기는 하지만 실천은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많은 경전에서 ①번은 ①번대로, ②번은 ②번대로 셀 수 없이 많은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고,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 것은 선행善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교에 심취하면 이내 선禪을 중요시하고 선禪 문답과 선교禪敎를 고려하고, 그것을 배우려 책을 들추어 보곤 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상我相과 의업意業만 가중 될 뿐입니다. 왜? 본질을 외면하고 피상적 결과를 추종하기 때문인 것이죠.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외면 했기에 헤어져야 할 번뇌를 오히려 벗 삼아 지내는 것일까요?
바로 선善입니다. 선禪이 아닌 선善 말입니다.
선善이라는 근기를 가슴에 담고, 선행善行을 실천하고, 선행善行을 입에 달고 사는 삶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①번과 ②번을 모두 해결하고 배울 수 있는 참다운 근기를 만들어 줍니다.
지난 9월호에 ‘근기根機’에 대한 설명을 보셨는지요? 선행善行은 바로 우리들에게 그러한 맑은 근기를 선사해 줍니다. 맑은 근기를 갖게 되면, 그 무엇도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거창하게 불성을 찾는다거나, 수련을 한다거나 하는 어려운 말로 불교를 복잡하게 볼 필요도 없습니다. 선善한 마음으로 삶을 살다 보면 자연스레 업장도 녹아내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부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먼저 알아봅니다. 그 즈음에는 자신의 세상世上도 아름다워졌을 것이고 세상世相살이에도 거침이 없는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5. 어디 한번, 경전을 통해 증명해 볼까요?
무덕지인 불의불계 불호삼업 방일나태 경만타인 교량시비 이위근본
無德之人
依佛戒
護三業 放逸懶怠 輕慢他人 較量是非 而爲根本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삼업(신구의)을 고려하지 않는다.
함부로 놀아 게을리 지내며, 남을 깔보아 따지고 시비하는 것을 일삼고 있다.…
- 『선가귀감』 중에서 -
타인에게 덕을 베풀지 않는 이러한 삶은 결국 자신의 반석(일一)을 좁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결국 넓디 넓은 이 세상世相에 발붙일 곳 하나 없는 신세를 만들게 됩니다. 가끔 어느 곳에서도 자리를 못 잡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곤 합니다.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평소에 노력을 하지 않아 구르는 재주 하나 없던지, 아니면 사고방식의 문제로 인하여 아이들 표현대로 왕따를 당하기 일수인 사람인 것이지요. 결국 자신의 반석을 만들지 못한 사람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이 이생에도 다음 생에도 나를 해치지 못하는데 무엇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가? …
- 『입보리행론』 중에서 -
자기 자신의 세상世上 만들기도 바쁘고 어려운데, 남을 미워할 새가 있나요? 무슨 이유로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을 훑어보며 마음속으로 흉을 본단 말입니까?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를 눈감지 못하고 크게 확대하여 그 사람의 인간성까지 비하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요? 멀쩡한 머리 속을 그런 사사롭고 그릇됨으로 가득 채워 스스로 번뇌의 불길을 만드는 이유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요? 중생들은 어느새 알 수 없는 습관에 사로잡혀 자신의 그러한 흉허물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중생인 것입니다. 아니 중생도 아닌 중생중생 인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을 존중하고 따뜻하게 대하면 모두를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지만 번뇌에 의하면 할수록 나중에 오는 것은 고통으로 인한 피해뿐이네. …
- 『입보리행론』 중에서 -
세상世相살이가 무엇입니까? 그저 하심下心입니다.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설혹 마음에 안 들어도) 그저 입다물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작은 자존심에 내뱉은 한 마디가 화근이 되어 세상世相살이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상대가 옳다고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면 세상世相살이는 더욱 활짝 필 것입니다. 인생은 화복동문禍福同門입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면 필경 그 생각은 내게 복福 또는 화禍를 가져올 것입니다. 화복禍福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하는 이 생각, 내가 하는 이 행동, 내가 하는 이 말 한마디가 내게 화를 가져올지, 내게 복을 가져올지 반드시 생각한 후에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여야 합니다. 생각없이 한 행동, 말 그리고 생각은 반드시 번뇌와 고통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 역시 자신의 반석을 좁힐뿐더러 세상살이 어려워짐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자제력을 갖게 되면 얼굴엔 언제나 미소를 띠고, 찡그린 표정과 화난 표정을 버리며,
온 세상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친구가 되라.…
- 『입보리행론』 중에서 -
(설혹 마음에 안 들어도) 그저 입 다물고 웃음 지어 줄 수 있는 자제력을 발휘 한다면, (아니 솔직히 발휘 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건만 하지 않는 것이죠) 일단 올바른 세상世相살이 방법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처음에 어려울 수 있으나, 어렵게라도 습관화 되면 평온해 지는 삶을 단박에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세상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온화하게 바뀌어 있음을 알아챌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마다 우리가 부처님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이들 중생들 덕분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자비심으로 바라보십시오.…
- 『입보리행론』 중에서 -
부처님 말씀에 세상 모든 사람이 부처라 했습니다. 나도 부처, 우리 모두 부처, 그래서 나온 말이 인욕忍辱바라밀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부처인데, 어떤 사람이 내게 욕을 보였다면, 우리는 생각하여야 합니다. ‘오죽하면 부처가 내게 욕을 했을까?’ 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바라밀정신입니다. 바라밀이 무엇입니까? 고통 없이 번뇌에서 벗어나 피안의 길로 건너간다는 의미 아닙니까? 그러니 인내하고 참는 인욕은 더 없이 좋은 바라밀수행이라 하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세상世上의 반석은 나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넓혀주기도 합니다. 나 혼자 만들어가는 반석보다 훨씬 빨리 만들 수 있지요.
어떡하면 남들이 내 반석을 크게 만들어 줄까요? 매우 간단합니다.
그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하세요.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도 무조건 인사하세요.
회사에서 방금 전 인사한 사람을 만나면 또 인사하세요.
누군가 야릇한 행동을 한다고 흉보지 마시고 사연이 있을 것이니 좋게 보세요.
누군가 잘 되면 함께 기뻐하세요. 마치 내 일이 잘 된 것처럼 말입니다.
누군가 어려워지면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 보세요.
식사 중 식탁에 음식물을 떨어트리게 되면 버리지 말고 주워서 드셔보세요.
(우리 몸 속은 식탁의 오염도 보다 아마 2,000배는 더 더럽거든요.)
그런 당신의 모습을 누군가 보면 모두 다 마음속으로 칭찬할 거예요.
두 사람이 본다면 두 사람 만큼, 1,000사람이 본다면 1,000사람 만큼.
그러니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선행을 보여주세요.
선행은 어렵지 않습니다. 경제적 부담도 없습니다.
열거한 것처럼 다른 이에게 웃음만 선사해도 선행善行이거든요.
자비慈悲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런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과 만나고 접하는 그 마음이 자비의
시초인 것입니다. 그것이 선행善行이고 그것이 바로 당신의 반석을 넓게 만들어 줄 것이며, 세상世相살이를 영화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6. 결국 세상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世相은 한 개입니다. 하지만 하나뿐인 그 세상世相을 이루는 세상世上은 인구 수만큼인 것입니다. 당신에게 당신만의 세상이 있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들만의 세상世上을 각각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나의 세상世上을 인정해 주지 않거나 무시하면 기분이 어떨까요?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세상世上을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합니다. 단지 자신의 세상世上과 맞지 않아서,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보다 잘난 것 같아서 등등, 각자의 특성에 맞게 잘 짜인 각자의 세상世上을 어떤 명분으로든 당신은 의심하고 경멸하고 미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한때 유행했던 말이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두고 생각을 비슷하거나 같게 하면 서로 맞장구 치며 “우린 코드가 맞아!” 이 말은 아마도 두 사람의 세상世上이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비슷하다고 좋아하고, 틀린다고 싫어하는 것은 갓난아이 같은 직설적 마음 아닐까요?
사회에 기여하여야 할 한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한 세대를 말하는 30년의 삶을 살고 있는)는 그렇게 갓난아이처럼 좋으면 깔깔거리고, 싫으면 찡그려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하나뿐인 자신 만의 세상世上을 그렇게 얼룩지게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반야심경에서도 말합니다. 그 불길 속에서 그만 고생하고 어서어서 이곳으로 피안의 곳으로
건너오라고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 아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외칠 뿐,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허덕입니다. 자신의 세상世上관리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입으로 지은 죄를 씻어내겠다는 일념으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외치지만 그런다고 입이 깨끗해지지는 않습니다.
기왕이면 그 뜻을 바로 알고 가슴 깊이 새기어, 마음속의 자신에게 멋진 세상世上을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이행하는 불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성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