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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자아’를 생각해 본다

정태연 순천 삼보선원


불교를 공부하면서 지혜롭게, 있는 그대로를 보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다고 느껴졌다. 어제는 인연 있는 분의 장례식장 방문이 있었고, 나는 그분이 수의를 입는 광경을 보면서 ‘인생이란 무엇인지 허망하여라’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참선하면서 ‘이 뭐꼬’ 화두를 들었는데, 그분이 말없이 누워있음에 ‘평소 보고 듣고 하던 그 주인공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지금껏 내 몸을 ‘나’라고 여겨 전전긍긍하며 좋고 싫은 열등한 의식도 있었지만, 의미 없는 마음이었던 듯싶다. 이 몸뚱이를 늘 끌고 다니면서 업業을 쌓고 사는 이놈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떠나서, 그렇다고 모양 색깔도 없는 듯하나 이는 ‘참 나’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차가 있으면 그는 진실로 주인인 듯, 지금까지 껍데기에 속아서 진정한 나 자신을 잊고 있었는가 싶다. 이러한 나름대로의 각성이 물론 머리로서 자각된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앞으로 나의 삶에 얼마만큼의 기여가 될지는 미지수다.


나는 천성이 여성적이고 남을 의식하는 자의식이 강한 편이어서 세상의 편견, 곧 그 꼴을 보고 우열을 판단하는 사회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사실 그대로의 진제眞諦에 합하기는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습기習氣도 그렇거니와, 주위가 눈 하나인 사람들만 사는 곳에 가면 눈 두 개인 사람이 바보가 된다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갈릴레이 같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 정신개벽이 내 안에서 일어나 줏대 있는 사람이 되기가 쉽지 않을 듯 하여서다.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고, 이제는 옛 공리공론의 성리학에 반反하여 실학이 태동되었듯이, 자신도 이제 못난 생각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보다 건전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마음이다.
돌을 쌓는데 큰 돌 뿐 아니라 작은 돌도 필요하고, 집을 짓는데도 대들보 뿐 아니라 서까래도 있어야 하며, 기와 한 장이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본인도 본인다운 가슴으로 세상에 조화롭게 존재하면 그만이지 왜 사회적인 열등생의 고정관념에 평생 갇혀서 살아가야만 될까? 이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오래 반복되어 온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 불교의 출가정신을 살려 새롭게 거듭나고 싶다.


부처님께서도 당시 인도의 4계급을 부정하셨고 유아독존의 인간 존엄성을 부르짖었는데, 나 또한 불교인답게 전도된 몽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장부다운 여생을 다짐해보고자 한다. 세상 따라 높은 지위와 많이 가진 것, 그리고 멋진 몸 등 허울 좋은 외양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차라리 진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인격, 꼭 있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부처님 제자로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부처님 수기를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군중심리, 이를 탈피하여 부처님 법에 귀의하려 한다. 물론 세상적인 것도 소중하다. 그러나 불법佛法이 더 우선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을 머슴이 아니라 주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내 인생의 선장이 누구인지 그것은 곧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 누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고 비아냥거려도 나는 늘 부끄럽지 않은 자신의 삶의 조건에 감사할 수 있는 인물이고자 한다. 맑게 흐르는 산골 물처럼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그리하여 백조가 된 미운오리새끼처럼 나는 세상의 별과 같이 등대지기의 한
평생을 생각해본다.


언젠가 봄이 와 만물이 생동하듯 내 마음의 모든 것이 활짝 웃고 날갯짓 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