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현숙

1. 프란치스코 교황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訪韓으로 한국의 여름이 술렁거렸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의 편에 서겠다는 뜻으로 거리의 성인이었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 프란치스코 교황이 된 그는 교황이 되고 나서 보인 파격적인 행보로도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교황청의 궁전이 아닌 사제들을 위한 숙소에 거처를 마련하고 으리으리한 방탄차가 아닌 일반 승용차를 이용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소박하고 소탈한 교황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에서 위로와 위안을 받은 것은 가톨릭 신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온 나라의 언론 매체들이 방한 일정 내내 프란치스코 교황을 따라다니며 그분의 한 마디, 작은 에피소드, 따뜻한 미소 등을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전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한국 방문에서 한 강론 중에 “순교자들의 모범은 막대한 부유함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줍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한 가운데 불교 신자로서, 불교계에는 저런 분이 없을까 생각한 것은 나뿐이었을까?

물론 불교는 가톨릭과는 체계와 조직이 다르므로 전세계적으로 불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공식적인 한 분의 인물을 꼽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작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틱낫한 스님 같은 분은 불교도가 아니어도 모두 알고 있고 모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는 분이다.

2. 왜 달라이 라마는 안 되나?
그리고, 달라이 라마가 있다. 구체적으로 그분이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조목조목 설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티베트의 승려이며 불교계의 존경받는 분이며 세계적인 영적지도자라는 것 정도는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달라이 라마는 80의 생애를 통틀어 아직까지 한국을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있다. 아니, 달라이 라마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굳이 문제랄 것이 없다. 지금이라도 방한을 하시면 되니까. 그런데 그 이유가, 달라이 라마나 티베트 정부 측에서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한국 방문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 측에서 달라이 라마의 입국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임을 알면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한국 정부 측의 그런 입장이 중국과의 외교 관계, 즉
중국 정부에 대한 눈치 보기임을 알게 된다면 어디 내놓고 공론화하기도 부끄러운 현실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월 불교계에서 ‘달라이 라마 방한 추진위원회’가 꾸려지고 2016년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은 작게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외교적 이유로 세계적 종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불허하는 것은 한국의 자주성에 반하는 일”이라며 그 “원인은 한국 정부의 대외 국제 관계 때문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는 성명을 내고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이루어지기를 발원한 것 역시 반길 만한 일이다.

3. 직접 보고 들은 달라이 라마와 다람살라 이야기
그런 중에 『달라이 라마,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연숙, 참글세상)가 출간된 것 역시 기쁘고 반가운 소식이다. 더구나 한국에서 발간된 백여 종 넘는 많은 달라이 라마 관련 책들이 거의 외국 저자의 번역서임에 반해서, 이 책은 가연숙이라는 필자가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자리하고 있는 다람살라에 거주하며 직접 보고 듣고 전해준 달라이 라마의 말씀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깊고 또 크다.

다람살라에서 수행하며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불교 이야기를 전해주는 청전 스님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의 필자 가연숙은 수행자나 연구자가 아닌 일반인, 그리고 기자로서 듣고 본 달라이 라마와 다람살라 이야기를 한다.

책은 크게 4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는 “달라이 라마, 다람살라”로, 달라이 라마의 법문과 티베트를 이해하기 위한 사전 설명, 배경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달라이 라마 제도가 지닌 속뜻, 티베트 불교의 특징, 질곡을 거쳐 온 티베트의 정치사, 다람살라 임시정부와 민주화의 역사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티베트의 정치적 종교적 대표자인 달라이 라마,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제14대 달라이 라마이다. 속명은 텐진 갸초, 1935년에 태어났으니 우리 나이로 세자면 올해 여든이다. 우리가 일본에게 45년간의 강점기가 있었듯이 티베트는 본래 독립국이었으나 1949년 중국에 의해 강제 침략 당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중국의 지배 아래 있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3월, 티베트 수도 라사에서의 민중 봉기를 기점으로 인도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북인도의 다람살라라는 곳에 망명 정부를 수립했다. 그 망명 정부가 올해로 수립 55주년을 맞았으니 티베트가 중국에게 나라를 빼앗긴 시간은 어언 65년이라는 뜻이 된다.

1부의 내용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은 2011년,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의 정치 지도자의 역할을 스스로 내려놓고 신임 총리에게 모든 것을 이양하는 과정, 즉 티베트의 370년 정교일치사가 자율적으로 해체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초대와 2대 총리를 지낸 삼동 린포체와 3대 현 총리인 롭상 상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람살라 티베트 망명 정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아니라면 쓰기 쉬운 소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4. 5년간의 취재 기록
2부, 3부, 4부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필자가 다람살라에서, 혹은 달라이 라마의 해외 법문 일정을 따라다니며 취재한 법문들을 주제에 맞게 정리한 것이다.
2부는 인류의 화합과 행복을 주제로 설한 달라이 라마의 말씀들을 “평화와 자비”라는 제목으로 묶은 것이다. 여기서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평화입니다. 세계의 평화와 인간의 평화는 사실 동등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비로소 존재하는 하나의 인연과 인연의 화합들이 만들어낸 인류와 자연의 본성은 평화입니다.”(70쪽) “우리는 모든 인간적 삶의 방식에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평등하기 때문입니다.”(73쪽) 이는 스스로 불교를 대표하는 종교인이지만 내 종교를 초월해서, 다른 종교를 믿거나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행복을 향해 함께 가야 한다는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잘 전달해 주는 말이다.

3부의 제목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여기서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인 반야般若와 공空 사상이 잘 설명되어 있다. 석가모니 붓다가 가르치신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공이요, 무아無我요, 연기緣起이다. 이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법어는 다음과 같다. “본질이 있다면 본래 고유의 성질 역시 인과因果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순간 변화하는 도리는 사물에서조차 인과법으로서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 따라서 공성空性 이외에 다른 법은 없습니다. 연기이기에 자성自性은 공합니다.”(143쪽)

4부는 “깨달음의 길”로, 참된 나를 찾는 수행에 관한 법문이다. 특히 『입보리행론』과 『보리도차제론』을 중심으로,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수행에 대해 설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몸을 어찌 다루어야 하는가를 다룬 ‘비로칠법’을 보면, 반가부좌로 눈을 완전히 감지 않은 상태에서 코 끝을 주시하고 곧은 자세로 오른손을 위로 하고 엄지손가락을 가지런히 붙여 선정인을 취하며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턱을 안으로 당기라고 합니다.”(238쪽)

이렇듯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에 대한 도입으로 시작해서, 지관 수행, 바라밀 수행으로 가는 설명들을 책 중간에 곁들여진 인상적인 사진들이 지루하지 않게 도와준다. 대학에서 영상학을 전공하고 영상 관련 분야의 경력을 쌓기도 한 필자의 사진 솜씨 또한 만만치 않다. 달라이 라마와 다람살라에 대한 애정이 담겼기 때문일까? 한 장 한 장의 사진들, 피사체를 바라보는 앵글이 심상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