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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相’을 통한 불교 공부

현재호
후애마이(Who am I)연구소 소장
어떤 문제이든 ‘선행’이라는 처방전이 특효약입니다.(cafe.daum.net/sun-order)


『금강경』에서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 중 ‘너의 생각은 어떠한가?’라고 물을 때 ‘어의운하於意云何’라는 관용구가 사용됩니다.  
『금강경』에서 ‘어의운하’는 30번 사용되며, 한글 번역본에서는 ‘생각’을 묻는 ‘어의운하’를 포함하여 ‘생각’이라는 단어는 128번 사용됩니다. 즉 어의운하 이외 생각이라고 번역되는 것이 더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한자漢子를 ‘생각’이라고 번역 했을까요? 몇몇 예만 함께 보시죠.


於意云何어의운하 : 어떻게 생각하는가? / 어떤 뜻으로 알고 있는가?
作是念작시념 : 생각하기를~ / 그렇게 생각한다.
사용 예 :
不作是念부작시념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若作是念약작시념 :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爲着위착 : ~으로 생각한 것.
사용 예 :
卽爲着즉위착 : 어떤 형상과 함께 (着 이하~ )로 생각하다.


相상 : ~으로 각인된 생각 / 마음에 새긴 모양, 즉 생각
사용 예:
我相아상 : 나라는 생각
人相인상 : 남이라는 생각
衆生相중생상 : 중생이라는 생각
壽者相수자상 : 오래 산다는 생각


보신 바와 같이 각각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자漢子들이 ‘생각’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번역 되었습니다. ‘생각’이라고 번역 된 것마다 독자들이 알아서 그 뜻을 새길 수도 있겠으나 불교철학의 깊이가 각기 다른 범부들이 쉽게 그 의미를 새길 것이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이라는 단어를 『금강경』에서는 왜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한 것일까요?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意의 : 의미와 뜻을 생각하는 것
念념 : 어떠할 것이라고 (이전부터) 생각하는 것
着착 : 그렇다 또는 그럴 것이라고 (의례히) 생각하는 것
相상 : 마음에 새겨진, 각인되어 (굳게) 그렇다고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것
 
‘생각’이라는 단어에 있어서 심리학을 다루는 전문서적 등에서는 보다 깊이 있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세부적인 분류를 하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는 여기서 보시는 바(意念着相)와 같이 의식에서 마음에 이르기까지 전반에 거쳐 고려하는 (거의) 모든 것을 ‘생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중에서 ‘상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사람은 아상我相에 젖어 살아~”
“저 사람은 상相이 너무 높아~”
“상相을 내려 놔야 할 텐데 잘 안 되네~”
짧은 지면이지만 상相에 대하여 함께 풀어 보시죠!


1. 『금강경』에서의 상相
『금강경』에서 부처님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을까? 발심한 보살의 진정한 수행 방법을 여쭈는 ‘수보리’ 존자에게 부처님은 ‘상相’을 세우지 말라고 답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相’은 팔리어 산냐(sanna)의 해석으로써 최초의 삼장법사三藏法師인 구마라습의 번역입니다. 산냐를 ‘상想’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현장법사의 번역본이 그러합니다. 현존하는 경전의 대부분은 구마라습의 번역본이기에 우리가 공부하는 『금강경』 역시 구마라습의 역작입니다.
동일한 ‘산냐(sanna)’를 相 또는 想으로 구분된 원인과 해설은 지면상 간단히 하겠습니다.
우리가 ‘꽃’을 보고 ‘꽃’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이전에 처음으로 ‘꽃’을 보았을 때, 그러한 모양과 형태는 ‘꽃’이라고 배웠으며, 그렇게 ‘뇌’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같거나 비슷한 모양은 모두 ‘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저렇게 생긴 것은 모두 꽃이야.”라고 각인되어 있는 생각이 ‘상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상相이 인식認識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면 상想은 오온五蘊을 기반으로 생각과 마음에 새겨진 인지人智에 해당될 수 있겠습니다. 상相과 상想의 다름으로 인하여 『금강경』이 다르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 만큼 깊이 있는 이론을 다뤄야 하는 내용이기에 여기서는 이 정도로 마무리 합니다.
단, 그 의미와 해석을 어떻게 하더라도 피상적 의미는 같습니다. 즉 본인이 생각하는 무언가에 집착하여 눈앞에 벌어진 현상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하거나, 벌어진 일에 대한 본질을 다르게 파악하는 실수를 하면 안 되므로 고착固着된 생각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直視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相, 想)에 젖거나 상(相, 想)이 높다는 것은 자신의 기준을 의미 없이 추켜세우거나 그것이 맞는다는 주장을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하는 미련한 행동이므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 말 것이며 자신을 내세우려는 아상我相을 버리고, (자신의 각인된 지식을 바탕으로) 예컨대 이분법二分法적인 논리로써 옳고 그름, 길고 짧음 등 모양과 형태의 절대적 기준을 버려야 여여如如함이 찾아온다(래來)는 의미로 정돈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금강경』에서는 ‘이일체제상즉명제불離一切諸相卽名諸佛’이라 하였습니다. 즉 ‘일체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제대로 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수용전념치료’ 기법의 ‘인지적 융합’
ACT(Acceptance Commitment Therapy)라고 하는 이 기법은 불교 명상기법을 기반으로 발전된 매우 유용한 인지기반의 치료 기법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인지적 융합’입니다. 즉 ‘꽃’의 모양과 ‘꽃’이라는 단어를 동반 기억하는 행위 또는 그렇게 기억하는 인간의 뇌 역할을 ‘인지적 융합’이라고 합니다.
간단한 예로써,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기둥’을 A, B가 각각 다른 방향에서 보았을 때, A는 ‘직사각형’으로 인지하고, B는 ‘원’으로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사물을 보고 그 형태를 자신이 아는 기준(직사각형, 원 등)으로 엮어서 기억하는 형태를 ‘인지적 융합’이라고 합니다. 그림의 예는 동일한 ‘원기둥’을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인지하여 자신의 뇌 속에 ‘융합’시킨 사례입니다.
결국, A와 B가 원기둥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는 언쟁言爭을 피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러한 분쟁의 해결점은 A, B 중에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융합되어) 고착화 된 기억을 잠시 멈추고 ‘상대의 관점은 다를 수 있으니 이야기를 들어보자’라고 생각하고 귀를 열어야 해결될 것입니다. 잠시의 양보가 본인의 그릇된 ‘인지적 융합’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지요.
ACT(수용전념치료)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융합된 결과를 목적에 따라 버리거나 변경 또는 수정하는 행위를 ‘인지적 탈융합’이라고 합니다. 즉 자신의 융합된 기억을 풀어 버리는 것이지요.
이는 『금강경』에서 말하는 ‘상을 버리면 여유로워진다.’는 말과 꼭 같습니다.


3. 사리분별事理分別
자신이 아는 기준 또는 조건대로 일을 처리하는 대경(對境, 맞대응하여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사事’이며, 고심하여 이치에 맞는 방법을 찾아 대응하는 것이 ‘리理’이겠습니다. 그러한 두 가지 방법 중 어떤 방법이 옳은지 생각하는 것이 ‘사리분별’입니다. 보통의 경우 ‘사事’로써 대작하는 경우는 자신의 아상我相을 버리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상相을 버렸다면 자연스럽게 이치에 맞는 행동을 했겠지요.
대부분의 경우 이치에 맞게 대응하는 편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며, 우리를 풍족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이치는 진리眞理 맞죠?
성경에서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또한, 진리에 입각한 행동을 한다면 여유롭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4. 자유롭고 여여如如한 삶이란?
금강경에서 상을 버리라는 것
ACT에서 자신의 작은 지식으로 일을 꿰어 맞추지 말라는 것
성경에서 진리에 입각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


슬기로운 삶이 무엇인지 자각하는 지금입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 했을 때 (예컨대 ‘화’가 날 때) 자신의 마음에서 ‘상相’이 일어남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상대가 비위 거슬리는 행동을 할 때, 자신의 기준을 세워 반격을 합니다. 이때 자신의 기준이 ‘상相’이며 반격이 ‘대경對境적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즉 이 경우 사리분별에서 ‘사’를 선택한 것이지요. 이 경우 여여한 결과를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함은 ‘상相’이 높아서 이겠지요? 이제 ‘상相’을 버려야 할 때 같습니다.
Hyun-jaeh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