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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가 요구하는 평온의 통찰력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동남아시아 불자 연합과 달라이라마의 지속적인 인연이 10년 차가 되었다. 전 세계 69개국에서 외국인이 이번 법회에 동참했으며 연일 7천여 명에 이르는 이들이 법회에 동참했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4)는 9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인도 티베트 망명정부가 수립된 다람살라, 겔룩빠 산하 남걀사원 쭉라캉에서 법회를 열며 세상의 다양한 종교와 철학 사상의 근본 가르침은 바로 사랑과 자비임을 강조하였다. 태국의 승려들은 빠알리어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개송으로 법회의 시작을 알렸으며 중국어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것으로 대승불교와의 화합을 다짐했다.


제 주변에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많은 그리스도인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랑과 연민의 실천에 대해 진지합니다. 1964년도로 기억을 합니다. 제가 해외 공개설법으로 방문한 태국에서 상하라자(Sangharaja)를 만났을 때입니다. 우리는 당시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는지를 언급을 했었지요. 반면 불교 승려들은 사회와 연대하여 공론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당시에는 불교 승려라면 마을과 사회에서 떨어져 고립된 상태로 살며 수행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지던 때입니다.


얼마 전에는 인도 망가로르 지역에서 열린 가톨릭 교육자 연합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무릎을 치며 감동을 하였습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교육 지원과 체계에 기여 하는 바가 실제로 엄청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저는 또한 그들이 강조하는 사람들을 섬긴다는 것이 종교인의 사명과 같음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종교가 없는 이들을 본인들의 종교로 포섭시키거나 타 종교를 신앙하는 이들을 지능적 수법으로 개종시켜 본인의 종교에 귀의하도록 하는 경우는 부정적으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종교는 방편적 수단입니다. 다양한 인류가 지닌 차이와 차별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화합하도록 하는데 종교는 장려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태생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근간으로 합니다. 종교는 인간의 안위와 필요를 위해 사상적으로 정립되고 신앙이 되었기에 그 목적 역시 사랑과 자비를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제가 히말라야의 설산 왕국에 고립되어 살았을 때는 영성과 전통 사이의 이해관계에 대한 필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망명 이후 60년이 흘러 현재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패턴을 봅시다. 물질적인 개발에 치중할수록 인간은 서로를 소외시켜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마치 기계의 일부처럼 기능적인 존재적 부분이 시대가 요구하는 평온의 통찰력으로 인식되어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20세기 말부터 현대 과학자들이 신경 가소성 가설로서 증명하고 있는 인간의 인식과 무의식의 영역은 인간의 뇌가 의식의 영역을 얼마나 무경계로 확장시킬 수 있는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중국과 함께 고대 문명지 인더스를 근간으로 발전한 고대 인도 철학에서는 마음을 다하는 헌신의 가치를 정립해 왔습니다. 비폭력, 연민, 카루나를 통한 평온의 통찰력은 사마타와 비파사나라고 하는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통찰하는 지혜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작용에 대한 심층적 연구는 지식이 보고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몸과 마음의 조합된 주체로서 기능하고 삶을 구현하는 하나의 영구적이고 자율적인 자아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시대의 사상적 이데올로기를 딛고 요구와 필요에 의해 생겨난 불교는 인도를 기점으로 스리랑카 태국 버마 및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까지 다양한 지역으로 폭넓게 전법이 되었습니다. 북방으로는 중국에 도착했고 그 곳에서 한국 일본 베트남으로 이동했으며 별도의 경로를 통해 티베트와 몽골로 이동했습니다. 그 가운데 중국에서 구법을 하여 나란다 승원에서 수학한 현장법사는 북동아시아의 대승불교를 정립하였습니다. 티베트불교는 어떻게 정립이 되었을까요. 티베트의 조캉사원에 모셔진 조우 붓다는 송첸캄포 법왕이 중국의 공주를 왕비로 모시면서 조성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 티송데첸 법왕은 나란다 승원의 학장 산타락시타를 모셔 티베트불교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불교는 전법이 되었습니다.


석가모니 붓다는 초전 법륜을 통해 세 가지를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문 사 수를 통한 윤리와 집중 그리고 지혜이며 이타심을 그 근간에 둡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빠알리와 산스크리트어의 두 가지 방식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현실에서 구현하는 방도에 있어서 보살도가 체계적으로 논의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반야심경은 그러한 보살도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붓다의 두 번째 설법에 해당하는 중전 법륜에서 공성이 논해집니다. 비로소 견분과 상분의 명확함이 규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삼전 법륜은 해심밀경을 통해 여래장과 정광명을 분석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번에 함께 논의하고자 하는 보성론에 담겨 있습니다.


불교를 수행하는 우리는 잘 압니다. 변화하는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집착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길을 찾고자 합니다. 무지의 실체를 명확히 보고 나라고 하는 몸과 마음의 작용을 헤아립니다. 독립된 자아라고 착각하고 영원하리라 착각하는 나를 보다 확장해 공공의 업으로 회향하고자 보살심을 일으킵니다.


지금 우리는 마치 금을 자르고 태우고 또한 문질러 보듯이 의문을 들어 그동안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고착된 관념들을 환기해야 하는 때에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 역시 의심을 일으켜 보고 나름의 지식의 잣대로 해석하면서 올바른 진실을 규명해 보도록 하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부합하는 현명한 불자의 수행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