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수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불교가 수행의 종교라는 점은 세상이 모두 알고 있다. 어떻게 수행하는가? 수행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나라가 대승불교의 전통에 있으니 먼저 대승의 수행법을 알아보자. 이 경우 가장 많이 활용하는 불전佛典이 『대승기신론』이다. 이 책은 대승불교의 요점을 간추린 이론 서적이다. 이 책에서는 ‘네 가지 믿음’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수행’을 제시하고 있다.
‘네 가지 믿음’이란, 첫째 진여 즉 진리에 대한 믿음, 둘째 부처님에 대한 믿음, 셋째 팔만대장경에 대한 믿음, 넷째 승단에 대한 믿음이다. 초기불교에서 불·법·승 3보寶에 대한 믿음을 제시하는 것과는 비교되게, 대승에서는 진여(眞如 있는 그대로의 세계의 실상)에 대한 믿음을 첫 손가락으로 꼽는다. 이것이 대승의 특징이다. 진여는 불·법·승 3보寶의 원천이다.
‘다섯 가지 수행’이란, 보시-지계-인욕-정진-지관이다. 6바라밀에 나오는 ‘지혜’와 ‘선정’을 합하여 ‘지관’으로 줄였다. 이것이 대승불자들의 수행의 골격이다. 이하에는 『대승기신론』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1.
어떻게 보시를 수행하는가?
만약 와서 구하고 찾는 모든 사람을 보거든 가지고 있는 재물을 힘닿는 대로 베풀어줌으로써 내 자신은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버려 상대방을 기쁘게 한다. 만약 액난·공포·위협·핍박을 받는 사람을 보거든 자기의 능력에 따라 그들의 두려움을 없애준다. 만약 중생이 와서 법을 구하는 이가 있으면 자기가 아는 대로 방편으로 설하되 명예나 이익이나 공경받기를 탐내어서는 안 된다. 오직 자리와 이타만을 생각하여 깨달음으로 회향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2.
어떻게 지계를 수행하는가?
이른바 살생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으며, 이간하는 말을 하지 않고,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고, 꾸미는 말을 하지 않으며, 탐냄·질투·속임·아첨·성냄·사견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만약 출가한 자라면 번뇌를 꺾어 굴복시키기 위한 까닭에 마땅히 시끄러운 장소를 멀리 여의고 항상 고요한 데에 살면서, 욕심을 줄여 만족할 줄 알아 금욕수행을 하며, 심지어는 아주 작은 죄를 짓더라도 마음에 두려움을 내어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며, 여래께서 금지하신 계율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른 사람들이) 눈살 찌푸리거나 나무람을 듣지 않도록 단도리해서 중생들이 망령되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3.
어떻게 인욕을 수행하는가?
이른바 마땅히 타인의 괴롭힘을 참아서 마음에 보복할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익과 손해, 수치와 명예, 칭찬과 비난, 괴로움과 즐거움 등의 법을 참고 견디기 때문이다.
4.
어떻게 정진을 수행하는가?
이른바 모든 착한 일에 대하여 마음속에 게으르거나 주저함이 없어서 마음먹은 것이 굳세고 강하여 겁약을 멀리 물리친다. 마땅히 과거의 먼 옛날부터 헛되이 몸과 마음으로 모든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래서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서 자리·이타하여 빨리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을 닦았으나, 전생으로부터 무거운 죄와 못된 업의 장애가 많이 있기 때문에, 삿된 마군과 여러 귀신에게 괴롭힘을 받거나 어지럽힘을 당하며, 혹은 세간의 일 때문에 여러 가지로 얽매여, 혹은 병이 들어 괴로움을 당한다. 이러한 여러 장애들이 있기 때문에 마땅히 용맹스럽게 정진하여 밤낮 여섯 번에 걸쳐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성심으로 참회하며 권청勸請하고 수희隨喜하며 보리에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않아 모든 장애를 벗어나게 되어 선근이 증장하기 때문이다.
5.
어떻게 지관을 수행해야 하는가?
‘지止’란 모든 경계상을 중지하는 것이니 사마타(奢摩他觀)의 내용을 따르기 때문이다. ‘관觀’이란 인연에 따라 생성 소멸하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것을 말하는 데 위빠사나관(毘鉢舍那觀)의 내용을 따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따르는가? 위의 (지와 관의) 두 내용을 점차적으로 닦아 익히되 이 둘을 따로 분리시켜 수행하지 않으면 둘이 다 나타나기 때문이다.
만약 지止를 수행하려는 사람은 고요한 거처를 마련하고 단정히 앉아서 마음을 바르게 하되, 숨 쉬기에 의지하지 말고, 어떤 모양이나 색깔에 의지하지도 말며, 허공을 의지하지도 말고, 지地·수水·화火·풍風에 의지하지도 말며, 나아가 눈으로 보거나·귀로 듣거나·피부로 느끼거나·마음으로 인식하는 것에 의지해도 안 된다. 일체의 모든 이미지를 생각나는 대로 없애고 또한
없앤다는 생각마저도 없애야 한다. 모든 법法은 본래 이미지가 없기 때문에 사유 활동에 의해서 생성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마음이 일어나는 대로 내맡겨 마음 밖의 경계를 따라 가게 놔두었다가 그런 뒤에 마음을 내어서 마음을 제거해서도 안 된다. 마음이 만약 흩어져 나간다면 곧 거두어 와서 마음을 가다듬어야(正念) 한다. 바깥 경계란 다만 마음이 구성한 것이어서 실체가 없다고 인식하는 것이 그게 바로 마음 가다듬는(正念) 것이다. 한편 이 마음도 자상自相이 없어서 어느 순간에도 잡을 수가 없다.
다시 만약 사람이 오직 지止만을 닦으면 곧 마음이 가라앉아서 혹은 게으름을 일으켜 이런 저런 선행을 닦기를 좋아하지 않아 대비심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관觀을 닦는 것이다.
관을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모든 세간의 유위有爲 법은 오래 머물지 않고 잠깐 동안에 변하여 없어지며, 모든 마음의 작용이 순간순간 생성하였다가는 소멸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괴로움[苦]이라는 사실을 관觀해야 하며, 과거에 생각한 모든 법이 어슴푸레하여 꿈처럼
실체가 없는 사실을 관觀해야 하며, 현재 생각하는 모든 법은 번개처럼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관觀해야 하며, 미래에 생각할 모든 법도 마치 구름 같아서 갑자기 일어나는 것임을 관觀해야 하며, 세간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의 육신이란 모두 다 깨끗하지 못하고 갖가지로 오염되어 있어서 아낄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관觀해야 한다.
이러하니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즉, 모든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모두 무명에 의해 훈습되었기 때문에 마음에 생멸하는 번뇌가 있어서 이미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모두 받았다. 현재에도 곧 한량없는 핍박이 있으며, 미래에 받을 고통도 일정하지 않아 떨쳐버리기 어려운데도 그런 줄을 모르니 중생이란 이렇게 매우 가련하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곧 용맹스럽게 다음과 같이 큰 서원을 세워야 한다.
즉, 원컨대 내 마음 속에 분별하는 것을 없애어 시방 세계의 모든 곳에 널리 모든 선한 공덕을 수행케 하며, 미래가 다하도록 한량없는 방편으로 고뇌하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여 그들에게 열반의 으뜸가는 즐거움 얻도록 하리라. 이러한 서원을 세우기 때문에 언제 어느 곳에서나 각종 선행을 자기의 능력에 따라 실천하기를 버리지 않고 마음에 게으름이 없게 하되 다만 좌선하여 지止 수행에 전념하는 시간 빼고는 말이다. 그 외의 시간에는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관찰(觀)해야 한다.
이상은 『대승기신론』의 저자가 대승 경전에 소개되는 다양한 수행방법을 요점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세존께서 평생 말씀하신 ‘8정도’의 범위에 들어간다. ‘8정도’를 대승 시대에 맞게 활용한 것이다. 대승에서 강조되는 ‘보시’나 ‘서원’도 결국은 ‘8정도’를 설하시는 아함부나 니까야의 다양한 말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불교는 수행의 종교이다. 제사를 비롯한 각종 의례 의식은 그 다음이다. ‘기도한다’고 말들 하는데, 이때의 ‘기도’는 수행을 말한다. 절은 수행하는 또는 수행을 점검하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