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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김명환
불광출판사 제작부장


일상을 창조적 순간들로 경험하는 기술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소설가 로맹 롤랑은 말했다. “태양이 없을 때 그것을 창조하는 일이 예술가의 역할이다.” 보통의 삶, 개인의 일상에서 창조성을 발휘한다면, 그 또한 예술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새롭게, 자기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 프랑크 베르츠바흐는 무엇이 우리 삶을 창조적이게 하는지, 반복되는 일상에 어떻게 하면 창조적인 힘을 불러올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창조성에 다가서는 길이 삶을 향한 근본적인 통찰에서 시작되며, 따라서 그 첫걸음은 스스로를 향한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가?”
창조적인 사람은 불만을 토대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나간다. 현재 방식에 만족할 수 없어서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자 창조적 활동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현실의 불만이 창조적 활동을 일으키는 동력이 되기보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 안에 숨은 불안과 비관주의적 태도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럽다고 느끼면서도 쉽사리 그것들을 떨쳐내지 못한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거라고,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인생에서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데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에게 세상을 하루아침에 대격변시킬 초인적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인생의 희생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스스로 ‘창조적’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나의 생각이, 하나의 삶이 얼마나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는 우리 삶을 바꾸고, 그로부터 세상을 바꾸어 나갈 가능성이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차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암시하는 대중매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렇게 믿기만 한다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속 편히 지낼 수 있다. 우리는 비관론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을 다소 경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몰락으로부터 구해낼 사람들이다.


내 인생에 획기적인 전환은 절대 오지 않는다
일상은 타율의 왕국이다. 하루 중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가족, 직장 동료, 심지어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에도 삶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끊임없이 무언가 요구되고 그것에 발맞춰 나가야 하는 게 일상의 삶이다. 이러한 일상에 창조성을 불러들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 프랑크 베르츠바흐는 일상을 수행의 일환으로 삼으라고 말하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여러분은 설거지를 할 때 잠시 후 마실 차를 생각하거나, 얼른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가능한 설거지를 빨리 끝내려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그 시간을 살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설거지를 할 때는 설거지가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어야 한다.” _틱낫한


만약 어떤 일이 괴롭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일이 다른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시라도 빨리 그 일을 해치우고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이란 무엇인가? 정말 중요한 일이 있다면 어째서 당장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쓸데없이 커다란 삶의 문제들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지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 볼 것을 권한다. 작고 시시해 보이는 그것들이 바로 우리 삶의 일부이며, 변화는 그 틈새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삶에 부차적인 활동이란 없다
창조적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이 있을 뿐!
자본주의 시대에 창조적으로 산다는 것 역시 물질적 요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다. 부가 창조성을 북돋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난이 창조적 활동에 유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일에 발목 잡히지 않으면서 창조성을 돈벌이에 종속시키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평소 열정을 가지고 있던 일을 직업 삼아 일하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럴 때 삶과 일과 예술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말 그대로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자신이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영역과 직업이 반드시 일치를 이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는 것이 창조성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에 관하여 저자 프랑크 베르츠바흐는 삶과 예술과 일을 하나의 명제로 보았던 독일의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의 예술관을 예로 들며 우리가 창조적 활동과 일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지 설명한다.
창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들
창조성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여태껏 그 어떤 학문도 여기에 대한 답을 명확히 밝혀주지 못했다. 대신 우리가 창조적 인물이라 일컫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몇 가지 생활 방식에서 그 해답을 엿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가 방점을 두는 것은 ‘혼자 있기’와 ‘침묵하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혼자 있기와 침묵이란, 단순히 무리에서 떨어져 지내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의와 집중을 방해하는,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활동을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저자 프랑크 베르츠바흐는 창조란 자기 삶에서 경험한 것, 자기 안에 담긴 무언가를 세상 밖으로 표출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자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려는 노력은 가치 있는 일이며, 이를 위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침묵이 창조적인 생활에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말한다.
삶의 예술이 목표로 하는 것 중 하나는 자기 자신에게 머물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식으로, 항상 지속적으로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언제나 다시금 온전한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즉 혼자 있는 상태를 추구하되 외롭지는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혼자 있기와 침묵하기가 창조성 향상을 위한 내적인 조건이라면, 저자가 강조하는 또 다른 덕목인 ‘연습’은 창조적 생각을 현실로 구현하는 외적 작업이다. 간혹 창조성은 지속적인 연습과 별 관계없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장인들과 예술가들의
삶에서 숱하게 보아왔듯이 연습은 창조성의 전제 조건이자 필수 조건이다. 우리가 흔히 공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창의적 아이디어의 차이는 그것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서서히 열린다.
당연한 진실은, 창조성이란 오랜 세월 연습하여 획득할 수 있는 대가다운 실력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헌신적인 몰두가 창조성을 키운다. 대가다운 실력은 진정한 창조성을 위한 전제 조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수공업의 장인이 누리는 모든 종류의 경제적 독립성의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일상을 창조적 순간들로 경험하려는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과 삶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창조적인 활동과 일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적 헌신이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가치를 지향하는 태도, 창작 수준을 높이기 위한 연습과
노력, 내외적인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 등이 창조성을 향상시키는 동력이라면 그것들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에 끝없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삶,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이야말로 창조적 행위의 원천이다.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우리는 멈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현대는 기술적 도구들의 도움으로 그 어느 시기보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갈수록 우리에겐 시간이 부족하다. 뭘 하든 ‘신속히’, ‘빠르게’를 외치는 사회 분위기와 매사에 완벽함과 행동 욕구를 부추기는 내면의 감독관이 우리를 전혀 멈추지 않는 노동의 세계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단순히 지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모되어버린다. 이는 창조성에 해로울 뿐 아니라 삶 전체에도 독과 같다. 저자 프랑크 베르츠바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도, 잠시도 생각을 멈추지 않는 우리의 정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그는 지친 몸과 마음에 여유를 찾아주는 활동으로, 이미 과학적으로 그 효과가 증명된 종교적 명상과 야외에서 걷기(산행)를 시도해 볼 것을 권한다. 덧붙여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한정된 공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한 간단한 처방을 하나 내려주는데, 그것은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힘들어하는 제자에게 불교의 옛 스승들이 건네었던 말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가서 차나 마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