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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즐거운 행, 나눔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보살의 즐거운 행, 나눔


『원각경圓覺經』 「보안보살장普眼菩薩章」에, “불자들이여, 제법실상諸法實相은 성품이 청정淸淨해서 일신一身이 청정하면 다신多身이 청정해지고 다신이 청정해지면 시방중생十方衆生의 원각圓覺도 청정하다.”했습니다. 마음이 허망하지 않으면 그가 곧 보살입니다. 몸은 비록 복이 없어 말법시대末法時代에 태어났더라도 그 마음이 고요하여 허망 됨이 없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三世諸佛)이 이르시기를, ‘그대가 행하고 있는 그대로가 보살행菩薩行’이라는 가르침과 같다 하였습니다.
마음이 허망하지 않으면 그를 이름하여 보살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 계실 때인 정법시대正法時代에 살았더라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고 번뇌煩惱가 일어나지 않는 인생을 살았을 텐데, 말법시대末法時代에 태어나서 번뇌의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하는 이들이 이 시대에는 수없이 많을 것이라 합니다.
‘몸은 복 없는 말법시대에 태어 났다하더라도 마음이 고요하여 허망함이 없으면 지금 행하고 있는 일들이 그대로가 보살행’이라는 것 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나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모두 보살행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잘 살아가기 바랍니다.
법당에 모셔져 있는 영가靈駕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와 인연을 맺고 있는 영가들 한 분 한 분의 인연은 떠나보낼 때는 슬픈 마음이었지만, 법당에서 함께 부처님을 만나 뵐 수 있으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얼마나 장엄하십니까. 그러니 법회에 참석해서 영가천도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 일상생활이 모두 보살행인 그 마음으로 함께하시길 원 합니다.


부처님께서 “있는 자가 보시布施하고 시주施主하고 공양供養을 올릴 때, 가난한 이들은 그 모습을 기뻐하면 그 공덕功德은 같다.” 하셨습니다. 우리 속담에는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설俗說이 있습니다.
남이 하는 보시와 시주와 공양에도 시기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자들은 그렇게 살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있는 이가 보시하고 시주하고 공양하는 모습을 보 면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법열法悅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중국의 태허太虛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좋은 환경의 도량에서 훌륭한 스승과 좋은 도반과 어울리며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태허선사는 늘 같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먼저 사람이 되어라.” 먼저 사람이 되어.
태허선사는 모습은 사람이어서 사람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할 때 그 사람은 참 모습을 잃지 않을 것 이라는 가르침 이셨습니다.


『화엄경華嚴經』 「십행품十行品」에,
“이 중생들은 내 복 밭이고 나의 선지식이다. 내가 찾아 나서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몸소 찾아와서 나를 바른 선법에 들게 하는구나.
나는 이와 같이 배우고 닦아 한 중생의 마음도 어기지 않으리라.
내 보시를 받은 중생들은 모두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 평등한 지혜를 가지며 바른 법을 갖추어 널리 선행을 하다가 마침내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열반에 들어 지이다. 만약 한 중생이라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지 않으리라.” 하셨습니다.
세상을 잘 살아가는 사람, 모범적인 사람이면 귀감으로 삼아서 배우고 익히며 나도 그와 같이 잘 사는 모범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 발원 합니다.
세상을 잘못 사는 이를 보면 경계로 삼아 스스로 지혜智慧와 선근善根의 변별력辨別力으로 살면, 세상에 선지식 아닌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열반하신 전 포교원장 무진장 스님 법문 중에,
“오염된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과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버려라.
허공에 버려라. 마치 작은 연못에 오염된 물이 큰 강이나 바다에 들어가면 희석되어 오염된 성분이 사라지듯이 허공과 우주법계는 광대무변하여 얼마나 큰지 우리네 모두의 탐진치 삼독 심과 욕망의 망상을 다 버려도 흔적도 없이 다 정화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고 행동하는 것이 보시布施요, 지계持戒요, 인욕忍辱이요, 정진精進이요, 선정禪定이요, 지혜智慧이다. 보살의 행원行願인 육바라밀六波羅蜜인 닦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보살은 모든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과 미혹을 없애주는 자慈·비悲·희喜·사捨 사무량심四無量心을 가지고 사신다고 합니다.
자무량심慈無量心은 모든 중생에게 즐거움을 베풀어 주는 마음가짐이며, 비무량심悲無量心은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고 고통의 세계로부터 구해내어 깨달음의 해탈락解脫樂을 주려는 마음이며, 희무량심喜無量心은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을 버리고 즐거움을 얻어 법 열케 하려는 마음이니, 사무량심捨無量心은 탐욕이 없음을 근본으로 하여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고 미움에 대한 분별 심을 두지 않는 마음이라 하였습니다.


작년 초부터 세계 각국은 코로나가 전파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사찰에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다녀는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찰에서 코로나 확진으로 전파됐다는 이야기는 그 어느 사찰에서도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다수의 생각이 동일하고 『원각경』의 가르침처럼 모든 실상의 성품이 청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사람이 청정하면 여러 사람이 청정해지고 여러 사람이 청정해지면 시방 세계중생들이 모두 청정해지니 이 국토가 청정해진다는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가슴깊이 새겨 보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십행품」에서도 그래서 불자들이 저의 복 밭이고 선지식이라는 것입니다. 몸소 찾아와서 바른 법에 들게 합니다. 이와 같이 배우고 닦아서 원하는 바에 대한 믿음을 어기지 않으리라 항상 다짐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발원합니다. “내 보시를 받은 이들은 모두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 평등한 지혜를 가지며 바른 법을 갖추어서 널리 선행善行을 하다가 마침내 번뇌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열반涅槃에 들어 지이다.”
“만약 한 중생이라도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지 못한다면 그곳을 나오지 않겠다”고 하신 지장보살地藏菩薩의 대원大願이나, 법장비구法藏比丘의 48대원四十八大願을 성취하신 아미타阿彌陀 부처님 모습에 다가 가면서 우리들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만약 한 중생이라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지 않으리라 하신 이것이 보살의 즐거운 행”입니다.
우리들도 다 함께 간절한 장엄염불 기도정진을 하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