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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위한 어려움 타개와 분쟁해결⑤

 


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릉봉凌峰과 하옥순夏玉順


1989년부터 타이완 TV방송국에서 방영한 「팔천리 길 구름에 달 가듯이(八千里路雲和月)」라는 프로그램은 타이완에서 처음으로 중국 본토를 소개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매일같이 재방송을 하며 시청률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이 프로그램 제작자인 릉봉 선생은 저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는 홍콩에서 저를 만났을 때, 프로그램에서도 나왔던 ‘게르(몽골의 이동식 전통가옥)’를 제게 선물하겠다고 했습니다. 우산 형태의 건축물로 안에 수십 명이 들어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게르를 기증하고 싶다던 그는 게르가 어떤 모습인지 대중에게 알릴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불광산의 볼거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호의는 저도 잘 알지만, 타이완에 있는 저는 받기가 불편했습니다. 불교도량인 불광산의 어디에 게르를 놓아야 적당할까요? 당시 양안이 이제 막 왕래를 시작할 때라, 우리가 지나치게 중국 본토의 물자를 탐한다는 인식을 타이완 대중에게 심어줄 우려가 있어 저는 완곡하게 그의 호의를 거절했습니다.
또 다른 일화는 타이베이에서 연에계 매니저를 하고 있는 하옥순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매우 많은 스타가수를 배출했고, 자혜 스님의 요청으로 불광대학을 위해 ‘옛 가요 콘서트(老歌唱)’를 열어 모금하였으니, 불광산의 입장에서는 도움을 주는 신도 중 한 사람입니다. 많은 가수들을 초대해 콘서트 봉사를 했던 그는 자신은 한 푼도 갖지 않았고 수입 전부를 불광대학에 기증했는데, 이에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하옥순과 릉봉 두 사람이 다투기 시작했고, 특히 릉봉 선생은 히옥순 선생에게 폭력까지 휘둘렀습니다. 이 행동으로 하옥순 선생은 법원에 고소했고, 두 연예계 인사는 결국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분명 한쪽이 승소하고 한쪽은 패소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쌍방 모두 유명 인사였으니 패소한 쪽은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니겠습니까? 그러나 판결이 어찌 나오든 두 사람의 명성에도 영향을 끼칠 것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릉봉 선생이 먼저 폭력을 행사했고, 하옥순 선생도 이미 고소를 제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 가운데 손해를 보는 사람은 아마 릉봉 선생일 것입니다. 그래서 릉봉 선생도 저를 찾아와 이 사태의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물론 저도 하 선생에게 거듭 손해만 보라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매를 맞기도 하고 모욕도 받은 데다, 그 역시 유명인사인데 순순히 고소를 멈추려 하겠습니까?
이런 일을 제게 처리해 달라 한다면 출가인인 저는 언제나 평화롭게 해결되길 희망합니다. 다행히 하 선생 남매와 가족 모두 저와 인연이 있었던지라 저는 다만 “고소를 취하하십시오!” 라고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법정소송의 변호사 비용이 십만 원(한 약 370만원)이 넘는데, 이미 다 지불한 상태라 그도 이대로 그만두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모든 변호사 비용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릉 선생에게 정중히 사과드리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결국 릉 선생도 저의 의견을 받아들여 쌍방이 타이베이 도량에서 만나 악수하며 화해했습니다. 쌍방 모두 체면을 차렸고 울분도 가라앉혔지만, 그때 저는 그들을 화해시키느라 애쓰고도 십만 원의 화해 비용까지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관리학은 타인이 모두 이익을 얻도록 관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널리 선연을 맺는 것이 중요
하며, 손해를 보더라도 또 이로움을 얻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후에 릉 선생이 유럽을 방문했을 때, 불광산의 비구니가 유럽에서 발전해 나가는 것을 보고 “유럽 화인華人을 위해 찬란한 역사를 써 내려가는 불광산의 비구니! 유럽 각 도량의 출가승 비구니는 혼자 몸으로 여러 가지 일을 감당하며 화인의 신심과 역량을 응집하였습니다. 중화문화를 부흥시키는 것은 정치적 역량이 아닌 불광산의 비구니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유럽에서 중화문화를 널리 알리며 동서문화를 잇는 가교 역할의 중임을 맡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을 TV를 통해 보도했습니다. 이것은 저를 향한 릉 선생 나름의 보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옥순 선생은 그 후에도 불광대학을 위해 콘서트의 수익금을 수차례 기부했고, 끊임없이 불광산의 각종 홍법 사업을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누나 하옥주夏玉珠 씨 역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불광회 샌프란시스코의 회장을 역임하며 불광회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후에 릉봉·하옥순 두 분 모두 불광대학을 도와주며 불교의 전파에 많은 공헌을 하셨으니, 이것도 ‘결연結緣’이란 ‘관리학’의 인과 관계이기도 합니다.


해군 용수用水 문제
가오슝은 남부 지역 군대의 주둔지입니다. 공군은 강산岡山에, 육군은 펑산(鳳山)에 있고, 그 중 해군은 줘잉(左營)에 기지를 건설했습니다. 40여 년간 해군 군함과 부대에서는 매월 3만 톤의 담수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담수가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그때 다슈향(大樹鄕)에 8개의 우물을 파서 군대에서 사용할 담수를 공급했습니다. 초기 군대는 권위적이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1994년 민의가 고개를 들면서 향장鄕長인 황등용黃登勇 선생을 비롯해 다슈향의 많은 사람들이 다슈향의 우물물을 군대에 공급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주민들은 이 8개의 지하수 우물을 없애서 다슈향의 지하수자원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군대에서도 수만 명이 갑자기 마실 물이 없어진다는 것이 무척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해군 측에서도 강제로 민간에 압력을 가할 수도 없고, 어떻게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향민을 설득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쌍방이 똑같이 대치하며 누구도 양보할 뜻이 없는 듯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