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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경작하다

 


정성운
텃밭농부



자연은 힘이 세다
가을이 깊어간다. 자연의 힘은 어찌나 센지 그 운행은 어김이 없다. 밭에도 가을색이 내려앉았다. 더덕은 꽃잎을 떨구었고, 서리태 잎은 바스러지고 있다. 초록으로 출렁였던 밭은 어느덧 갈색으로 바뀌었다.
8월 말에 김장감으로 배추 20포기와 무 10개, 대파와 쪽파와 갓을 심었다. 배추와 무는 벌레 피해가 심하다. 잎마다 숭숭 구멍이 뚫려 있다. 톡토기라는 벌레가 갉아먹은 것이다. 윤기 나는 까만색의 톡토기는 크기가 2mm 남짓한 작은 벌레인데 식욕이 왕성하다. 배추 세 포기는 잎맥만 남아있다. 화학살충제 외에는 대책이 없다. 기온이 더 내려가면 이 벌레는 월동을 위해 땅 속으로 들어간다. 사람이 먹을 만큼은 남겨둔다.
고추와 서리태 사이에 심었던 참깨는 잘 여물었다. 대 굵기가 괭이자루 굵기에 가깝다. 함께 텃밭을 하는 이가 내년 참깨 씨를 내달라고 할 정도다. 참깨는 뒷작업이 까다롭다. 맨 아래 꼬투리가 노르스름하게 변할 즈음에 베어서 보름 정도 말려야 한다. 비를 맞히면 안 된다. 참깨대를 거꾸로 들고 작대기로 톡톡 털면 씨앗이 떨어진다. 멀리 튀지 않도록 조심, 아기 어르듯 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물에 씻어야 하는데, 이때 물 위에 뜬 것들은 쭉정이여서 채로 거둬낸 후 잘 말려야 한다. 작은 씨앗을 골라내는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다. 농부의 땀방울과 뻐근해진 근육의 통증이 더해지지 않았다면 참깨가 저리 고소할까,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가을을 일러 ‘결실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관용구처럼 쓰이는 표현인데, 먹는 것을 대표하는 쌀을 수확하고, 사과 배 감 대추 등 과실류, 더덕과 도라지 등 뿌리작물, 배추 무 파 등의 김장작물을 거둬들이니 가을이 결실의 계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의 전부를 담아내지는 못한다. 농부들은 한겨울의 기간을 제외하고 연중 논과 밭에서 먹거리를 거둬들인다. 3~5월에는 밀과 보리, 시금치와 달래, 6월에는 감자와 마늘, 상추, 7월부터는 고추 참외 수박 가지 호박 오이를 딴다. 한겨울을 빼고는 모두 결실의 계절인 것이다. 더구나 비닐하우스 등 시설을 설치하면 1년 내내 농번기가 된다.
농사에서 가을은 다음 농사를 위해 준비하는 계절이다. 땅을 쉬게 하는 계절이다. 그냥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작물을 키우느라 애쓴 흙을 보양하는 시기이다. 흙 속에 사는 미생물들의 먹이가 되는 유기물을 넣어줘야 한다. 작물의 줄기와 풀, 퇴비는 좋은 유기물이다. 이것들은 겨우내 눈비에 젖어 얼었다 풀리기를 거듭한다. 썩어서 흙이 되려고 바지런을 떠는 것이다. 논밭은 내년에도 작물을 키워내기 위해 겨울의 고요를 만끽하면서 옴짝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도시농업 인구 400만 명
도시농업을 하는 사람들의 수는 2017년 190만 명, 올해엔 4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농림축산식품부는 내다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12명 중에 1명꼴로 도시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시농업을 하는 것일까. 사람에겐 경작본능이 있어서 땅에 무엇인가를 심고 가꾸고 거두는 것을 좋아한다는 설명이 타당해 보인다.
급격하게 도시화되면서 사람들은 땅에서 멀어졌다. 도시화는 땅을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었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다녀도 흙을 밟을 일이 없을 정도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공원과 산을 찾아야 흙과 풀, 나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경작본능과 함께 자연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도시농업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도시농업은 2004년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도시농업위원회를 만들고 상자텃밭 보급, 도시농부학교를 열면서 도시농업 운동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주말을 이용해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로 주말농장이라고 불리었다, 이후 운영 주체와 형태에 따라 공동체텃밭, 학교텃밭 등으로 다양해졌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유휴지와 민간토지를 임대해 시민들에게 분양하는 형태도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다보니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정부의 지원이 시작된 것은 2011년이었다. 이 법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도시농업을 위한 토지·공간의 확보와 기반 조성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도시농업의 활성화에 필요한 시책을 세우고 추진하여야 한다. 각 지자체는 도시농업과, 도시농업지원센터를 두고 도시농업을 지원하고 있다. 도시농업인에게도 부여하는 책무가 있다. 환경친화적인 농법을 사용함으로써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도록 힘써야 하고, 도시농업에 사용되거나 이용된 농자재 등을 안전하게 관리 또는 처리함으로써 생활환경이 오염되지 아니하도록 힘써야 한다.
도시농업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독일은 일찍이 도시농업이 발달했으며, 근대적 의미의 도시농업을 낳은 곳이다. ‘유럽의 도시농업 현황’(이은희)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아르멘가르텐(빈민원)에서 가난한 사람의 식량 자급을 돕기 위해 설치하였는데, 이후 다양한 형태의 도시농업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클라인가르텐(Kleine Garten, 작은 정원)이 독일의 도시농업을 가리킨다. 현재 독일에는 150만 개의 클라인가르텐이 있으며, 500만 명이 참여하고 있다. 농지는 대부분 공공단체인 지역 공동체, 교회 또는 공공 철도청 등에 속해 있다. 개인지주에 속한 것은 10%정도다.


지자체마다 도시농업박람회
클라인가르텐은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도시에서 보다 나은 삶의 질 향상을 제공 ▷소음 저감, 먼지 제거, 녹지 확대, 밀집된 건축공간의 완화, 비오톱과 생물종 보호, 동식물의 네트워크와 기후완화 등 ▷가족들에게는 여가시간 활용: 정원을 돌보며 건강한 채소의 재배, 종자 파종, 성장, 번성과 수확하는 개인적인 체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공간에서의 평형된 삶, 조화로운 인간관계의 요구,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 기회 제공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부족한 놀이터 제공, 놀이와 대화의 장, 자연을 체험하는 장이고 자연적인 관계를 인지, 비오톱의 관찰의 장 ▷직장인들에는 건강한 소일거리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직업적인 스트레스로부터의 휴식 ▷실업자에게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리고 어디엔가 소속되었다는 느낌, 공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을 방지하고, 신선한 채소 제공 시 약간의 보조금을 지급하며 ▷이민자들에는 다른 사회에 익숙해질 수 있는 계기 ▷장애인에는 채소 등의 재배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원예체험의 장 ▷노인들에게는 대화의 장과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동행, 다년간의 성숙된 관계 형성과 제3기의 인생을 정원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 제공. 이 같은 여러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시농업으로 발을 들이는 것이다.
쿠바는 경제난을 이겨내기 위해 도시농업을 지원했다.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지원이 끊어지자 자구책의 하나로 도시농업을 장려했다. 거의 모든 가정이 텃밭을 일구고 있으며, 학교 수업에 도시농업 참여를 포함하고 있다. 그 결과 먹거리의 상당량을 직접 기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자체에서도 이 같은 점에 관심을 기울여 도시농업을 지원하는데, 청소년을 위한 학교 텃밭, 휠체어를 타고 가꾸는 장애인 텃밭, 마을사람들의 만남의 장 등 특화한 도시텃밭들이 있다.
10월엔 여기저기서 도시농업박람회가 열린다. 많은 지자체에서 이즈음에 축제를 연다.(부산의 경우 4월 말) 도시농업을 알리는 자리이며, 도시농업인들이 만나는 장이다. 도시농업에 관심이 있거나 참여하고 싶다면 찾아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