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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얻고 고통은 피한다












                                                                                       
                                                                                                          달라이 라마 ┃ 티벳 승왕


 이제 본격적으로 불교의 사성제(四聖)에 관해서 생각해 봅시다. 우선 불교에서는 왜 사성제를 그토록 근본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도대체 부처님은 왜 사성제를 가르쳤는가하는 질문이 나올 법합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의 경험들을 사성제와 관련시켜 봅시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찾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본능적인 것이라서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얻고 싶어하며, 그 열망을 충족시킬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하며, 고통을 피할 권리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복을 얻고 고통을 피하려는 열망이 당연한 것이라면, 문제는 과연 어떻게 그 열망을 충족시킬 것인가 입니다.

그런 문제는 바로 사성제에 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성제는 두 쌍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한 쌍의 인과관계는,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아무 것도 없는 무(無)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가져온 원인들과 여러 조건들이 결합해서 만든 결과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쌍의 인과관계는, 우리가 즐기는 행복 역시 그 행복을 가져온 원인들과 여러 조건들이 결합해서 만든 결과라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행복을 느낌에만 한정시키지 않습니다. 고통이 완전히 중지된 상태를 뜻하는‘멸(滅)’은 느낌의 상태가 아닙니다. 그러나‘멸’의 정의는‘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멸’은 다른 말로‘지고한 형태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멸’즉,‘ 진정한 행복’ 은 무(無)에서 생기거나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은 매우 미묘합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멸’은 조건 지어진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멸’이 어떤 원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행과 노력에 의해서‘멸’을 얻습니다. 노력 없이는‘멸’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멸’로 인도하는 수행(道)을‘멸’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성제는 두 쌍의 인과관계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고통의 인과관계와 행복을 얻고 고통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사성제를 가르치는 목적입니다.

고통의 본질을 알고, 그 원인을 제거한다

그런데 왜 고통의 원인은 고통스런 결과를 가져오고, 행복의 원인은 행복한 결과를 가져올까요? 왜 사성제는‘고통’,‘ 고통의 원인’,‘ 고통의 소멸’,‘ 행복’이라는 순서로 놓일까요? 사성제를 설명한 순서는 실제로 사물이 생겨나는 순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성제의 순서는 수행을 시작해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방법과 관련된 것입니다.
 f보성론寶性論g에서 미륵보살이 말씀하길, 병을 치료하는 방법에는 네 단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병을 진찰하고, 병의 원인을 제거해서, 건강한 상태가 되면 치료가 완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알고, 그 원인을 제거해서 고통이 사라진 상태가 되면, 수행이 완성된 것이다.


미륵보살은 이렇게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 비유하면서 사성제에 의거해서 깨달음을 얻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즉 환자가 건강해지려면, 첫 단계로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병을 치료하려는 욕구가 생기지 않습니다. 일단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면, 왜 아프게 되었는지, 병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고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엔,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게 되고, 병을 치료하고 싶어합니다. 단지 희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병의 원인을 알면 치료하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지고, 병의 원인을 알기 때문에 치료할 수 있다는 신뢰와 확신이 생기고 그런 확신이 있기 때문에 약을 먹고 치료를 받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