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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고

며칠을 앓았다. 그 고통의 깊이만큼 눈도 깊이 들어갔다. 그 즈음 한 스님이 그 얼굴을 보고는 “요즘 수행을 잘 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병을 앓으면서 깊숙이 들어간 눈에서 오히려 정신의 깊이를 느낀 때문이었을까. 육체의 병고로 인해 정신마저 피폐해져버릴 만큼 폐퇴하지만 않는다면 육신의 병이 오히려 정신을 드높이니, 그리 볼법도 한 일이다.

우리가 하는 인사의 대부분은 ‘안녕하시냐’, ‘건강하시냐’는 것이다. 그만큼 아프지 않고 무탈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아프지 않고 한세상을 살기란 어렵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삶의 자연스런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네 가지 고통’가운데, 이미 ‘탄생’은 어찌할 수 없다하더라도 늙고, 병들고, 죽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보려 저항한다. ‘노병사’는 아무리 막아도 오고야 마는 것이지만, 고통을 혐오하는 인간의 마음은 철리(哲理)를 끝내 거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이 당연한 철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수행뿐 아니라 인생의 깊이가 달라지게 된다.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몸에 병 없기를 바라는데, 보왕삼매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하셨느니라.”
건강하면 건강해서 좋고, 병이 들면 그로써 양약을 삼게 한다. 기어이 오는 철리와 달리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긴요한 약으로 쓰게 한 게 불법(佛法)의 지혜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노병사를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상관없이 그것은 필연코 올 터. 이를 끝내 거부하는 이에게 노병사의 고통에, 심중의 고통이 더해져 지옥고가 될 것이지만, 노병사의 고통을 마음으로 수용하는 자에겐 삶의 약이 되고, 수행이 된다는 금언이다.

그 진리를 받아들여 운문선사의 ‘날마다 좋은 날’이 삶의 당체가 된 젊은 선승을 본 적이 있다. 전남 영암 월출산 상견성암에서였다. 도갑사 뒤쪽으로 30여분 고바위를 올라가 한참을 있다 보니 저 멀리 고갯마루에서 인기척이 났다. 잠시 뒤 한 젊은이가 등짐을 지고 땀을 뻘뻘 흘린 채 암자 마당에 들어섰다. 30대 중후반인 듯하지만 용모는 20대로 보일만큼 젊고, 수줍음에 얼굴 붉어지는 그 표정은 어느 산골의 사춘기 소년 같았다. 쌀과 김치를 구해, 지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오느라 여전히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채 닦기도 전에 방에 들어가 죽비를 두들기며 불전에 절을 했다.
그는 그 암자에 올라온 지가 3개월째라고 했다. 13년 전 출가 직후 도갑사에서 이 외딴 암자에 와보고 언젠가는 이곳에서 수행을 해보리라는 마음씨를 심어 가꾸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깊은 병 때문에 이런 토굴살이를 하긴 어려운 처지였다.

그는 원래 해병대에서 군을 마칠 만큼 건강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대 후 출가해서 병고를 얻었다. 장에 병이 생긴 것이다. 병원에 가도 뚜렷한 병명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번 장이 뒤틀리기 시작하면 방을 기어다녀야 할 정도였다. 그나마 그 정도는 다행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더 극심한 고통이 찾아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어 까무라치곤 했다. 병은 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목디스크로 인해 목을 운신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귀가 울리는 이명현상까지 왔다. 온갖 육신의 장애로 인해 날이면 날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출가수행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수행이었다. 그는 진언수행을 하며 간신히 정신의 추락을 붙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이 담은 암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놓지 않았다. 그런 병약한 마음으로 외딴 암자생활이 부적격했지만, 그 기도심으로 그는 이 암자에서 수행을 시작한 것이다.
홀로 사는 암자에선 특별한 시간표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한두 끼만 먹고, 잠이 오면 어느 때고 잠을 자는데, 하루 3시간 정도였다. 남은 시간은 텃밭을 가꾸거나 암자를 돌보는 시간 외엔 줄곧 앉아 참선을 했다. 참선은 병고에 짓눌려했던 마음을 점차 쉬게 했고, 육신만을 지키려고 안달하던 마음에서 벗어나 병고를 마음에서 감사의 보살로 받아들이자 월출산하 구름의 바다처럼 자비의 바다가 넘실댔다.

그는 참선 뒤 포행 중 산길에서 멧돼지 십여 마리를 만났다. 갑자기 맞부닥친 순간 놀랐지만, 멧돼지가 자신을 놀라게 하기보다는 자신이 오히려 멧돼지 가족들을 더 놀라게 한 것임을 자각하고 이내 마음이 고요해졌다고 한다.
“맞아, 너희들은 늘 가족들끼리 함께 다니지. 미안하다. 가족 산책길에 놀라게 해서.”
그가 누군가를 그처럼 해치거나 두려운 마음을 내기보다는 연민의 마음을 낼 때 멧돼지도 거짓말처럼 조용히 지나갔다.
그런 마음에 신비가 문을 열어준 것일까. 그는 어느 날 참선을 하면서 몰록 시간을 잊었다. 찰라였다. 한마음이 고요하니, 세상이 고요했다. 병고의 먼지가 앉을 자리조차 텅 비었다. 눈을 떠보니 그토록 오랜 세월 그를 족쇄처럼 얽어맸던 위염도 목디스크도 이명이 텅 비어 있었다. 그 찰라에 모든 병고가 온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몸은 가뿐했다. 참선을 하다 언뜻 주위를 살피면 구름이 흘러나고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며 춤추고, 새들이 노래했다. 그 아래 지렁이가 기어가며 꿈틀대는 것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푸릇푸릇 올라오는 새싹 하나에도 눈물이 났다.
그런데도 다행인 것은 고통의 끝에서 행복을 얻은 그가 ‘건강이나 평안에 대한 집착’이 병고보다 더한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이 없어서 불행한 게 아니고, 무엇이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니다”고 했다. 있고 없고를 넘어 감사하고 자족하면서 정진하는 그 마음이 30년 전 이 자리에 앉았던 청화 스님을 닮았다.

30년간 장좌불와(눕지 않음)와 일종식(하루 한 끼 식사)을 했던 청화 스님이 이곳에서 살 때 한 재가거사와 문답이 전해진다.
“스님, 이 외딴 토굴 생활이 외롭지 않으십니까?”
“공부하다 보면 감사한 마음이 끝이 없어서 계속해서 눈물이 납니다. 하도 눈물이 흘러 이렇게 젖은 수건 두 개를 곁에 걸어놓고 공부를 합니다.”
병고에도, 어떤 마장에도 감사하는 그 마음이 보살이요, 부처가 아닌가.



<발문>
홀로 사는 암자에선 특별한 시간표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한두 끼만 먹고, 잠이 오면 어느 때고 잠을 자는데, 하루 3시간 정도였다. 남은 시간은 텃밭을 가꾸거나 암자를 돌보는 시간 외엔 줄곧 앉아 참선을 했다. 참선은 병고에 짓눌려했던 마음을 점차 쉬게 했고, 육신만을 지키려고 안달하던 마음에서 벗어나 병고를 마음에서 감사의 보살로 받아들이자 월출산하 구름의 바다처럼 자비의 바다가 넘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