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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의 진정한 발전-노스님 복지제도 수립

공종원
언론인


지난 여름, 세계 선차대회에 참석차 중국을 여행하면서 한 가지 인상적인 사실을 목격했다. 천태산의 국청강사(國淸講寺)를 찾아갔을 때였다. 시간이 촉박하여 그토록 규모가 크고 건물시설이 복잡한 구내를 전부 관람할 수 없어 부지런히 사찰의 중심선을 따라 움직이는데 마침 가이드가 한 이층 건물 앞에서 ‘이 건물이 스님들의 양로원입니다.’ 하는 것이다. 바로 관음전에 해당하는 거대한 건물 앞인데 결코 작지 않은 2층 건물이 조촐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중국이 공산화한 후 특히 문화대혁명 기간에 사찰이 공격의 대상이 되어 사찰이 황폐화하고 스님들이 환속소동이 있어서 불교가 남아날 형편이 아니었던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일인데, 그때로부터 2~30년이 지난 이제 중국불교가 만만치 않게 체제를 갖추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준비를 끝낸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에 중국이 개방과 개혁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중국의 경제발전은 놀라운 바가 있어서 이제는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2위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는 소리까지 듣는 상황이다. 그런 국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그들의 역사적 전통과 문화적 기반을 회복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었다. 중국 도처의 사찰들이 엄청난 규모로 재건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일상화된 현상이고, 사찰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스님들을 양성하여 과거 중국불교의 융성을 재현하려는 끈질기고 치밀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중국 불교가 문화대혁명의 와중에서 완전히 고사하고 말아 지금은 중국불교의 수행수준과 연구수준이 아주 미약하여 볼 것이 없다는 식의 관측은 너무 근시안적인 가벼운 인식이라고 할 것이다.
중국불교는 이미 건물 신개축과 환경복원의 단계에만 머물지 않고 스님들의 질적 수준향상에 집중하고 있으며 자료정리와 연구활동을 통해 중국불교전통의 계승에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사회주의 중국이 기독교 등의 서구중심 종교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을 보이면서 전통종교에 속하는 불교와, 도교와, 유교에 대해 친근감을 보이는 정책은 어떤 면에서는 체제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물론 중앙정부와 성정부들이 사찰 재건에 상당한 신경을 쓰는 것은 관광수입 증대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기도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 중에 중국을 대표하는 큰 절의 하나인 국청강사 안에 스님들을 위한 양로원이 마련되고 이것이 대웅보전, 관음전, 사천왕문 등을 하나로 잇는 중심선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시각으로는 대단한 놀라움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경우 절 안에 스님들을 위한 양로시설이 있다는 것도 거의 들은 적이 없는데, 불교가 말살되어 흔적도 남지 않았던 상황에서 이제 겨우 재건되는 상황에 있다는 중국의 사찰에 번듯한 스님들의 양로시설이 사찰의 중심축 가운데 마련되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나라 절 같으면, 요사채 한 귀퉁이나 조그만 뒷방에 노스님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종단의 공식기구에서 활동했거나 주지직 등의 보임을 맡은 경우가 아닌 스님들이 노년에 사찰에서 보호를 받으며 걱정 없이 생을 보낼 수 있으면 이는 현임 주지의 대단한 배려를 느끼게 될 밖에 없다.
노년에 병들고 외로운 삶을 지탱하며 절에서조차 박대 받는 난감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스님들이 젊었을 때 체면불고하고 비리를 저지르며 개인의 주머닛돈을 빼돌린다는 소리가 널리 유포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면구스러운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조계종 총무원이 승가복지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은 승가와 신도들 모두에게 큰 기대를 갖게 한다. 승가복지제도는 막대한 재정이 확보되어야 가능한 만큼 당장 전면적으로 실시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단계별로 대상을 선정해서 하나씩 하나씩 해소해 나가는 노력이 쌓인다면 결코 어렵지도 오래 걸리지도 않으리란 전망이다. 우선 세납 65세 이상 스님들에게 요양비와 치료비를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차츰 대상의 범위를 넓혀 나가는 게 시급하다. 조계종은 이를 위해 국민연금 가입과 건강보험 가입 등으로 활로를 열고 사찰운영 요양시설의 일부를 이용하는 방안도 강구한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조계종단이 기왕의 힘있고 역할이 있는 소임 스님들만이 누리던 복지혜택을 소외되고 힘없는 스님일반에까지 확충할 수 있다면 우리 불교는 참다운 불교발전의 기틀을 놓는 것이 될 것이다.